
나는 얼마 전까지 대기업(X사)에 다녔던 30대 동성애자다. 퀴어로서, 사회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기업문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것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대기업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 루트를 착실하게 밟아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멸균처리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시스젠더·이성애자 중심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과 임신·출산·육아는 자연스럽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물론 한국 사회의 많은 곳에서 그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공고하다. 그럼에도 X사에서의 많은 관계와 대화들은 자본주의적 욕망과 맞물려 부부관계, 시월드, 자녀교육, 모부성보호제도의 전략적 사용 등 결혼과 정상 가족에 더더욱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좋은 동반자를 만나서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적당한 집, 적당한 차, 적당한 자녀교육 등을 구매할 중산층으로서의 여력. 이를 가능하게 하는 안정적 고정 수입과 재테크, 은행·사내 대출. 적어도 이러한 목표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지루하고 고된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다. 그 세계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에게 결혼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대체로 ‘사람 좋은’ 구성원들이 많았지만, 그렇기에 남에게 관심이 많고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내게도 여러 질문이 쏟아졌고, 답은 항상 비슷했다.
“여자친구 있어?”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애인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둘 다 일 욕심이 많아서 늦게 할 생각입니다.”
“남자도 어릴 때 낳아야 육아가 편하니깐 결혼은 무조건 빨리해야 해.” “네.” (그러니까 모두의 결혼 후원해 주세요)
‘연결과 단절 사이’ 퀴어 직장인의 일상적 스트레스
문제는 나 역시 좋은 동료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고,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연결은 서로의 삶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인데, 내게 ‘사랑과 연애’는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이를 숨긴 채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는 비단 내가 다녔던 기업에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혹시나 애인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성별을 바꿔 말하다가 실수로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그래서 많은 퀴어들은 애초에 본인의 사적 이야기를 아예 오픈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거짓말로 점철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만났던 다른 회사의 게이들은 동료들이 소개팅을 시켜줄 때, 관계가 틀어지거나 의심받을까봐 억지로 소개팅에 나가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이처럼 나를 철저히 숨겨야만 하는 공간에서 나날을 버텨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극소수의 친한 동료들에게는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극히 개별적인 관계에서만 공유될 뿐, 나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X사는 구성원 간 융화와 네트워킹을 중시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연애·결혼·가족관계는 사적 정보임에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칼퇴’와 회식 불참에 대한 양해부터 커리어와 삶의 기반에 대한 진지한 논의까지 고려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애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오픈되지 않으면 철저히 사적 영역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존경하던 팀장님께 퇴사면담을 하며 용기 내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색하며 “너의 정체성은 존중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이 수용되는 공간이 아니니깐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라고 답했다. 나를 걱정하는 조언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 삶의 중요한 요소로서 나의 사랑이 공적 차원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감각은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아팠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동성 파트너에 대해 사내복지제도를 신청하기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당시 애인이 있었으니 만약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일반적으로 혼인신고·동거·결혼식을 통칭하나 동성관계의 경우 동거와 결혼식)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왕 대기업을 다니는 김에 ‘뽕 뽑기’의 일환으로 여러 제도에 도전하고 선례를 남겨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경조휴가, 수당, 가족건강검진, 자녀 학자금 지원 등과 같은 사내복지제도는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X사의 ‘본인 결혼식 휴가’를 예로 들자면 부여 요건으로 그저 청첩장을 요구할 뿐, 명백하게 ‘법률혼’으로 한정하지 않았었다. 최근 이성애자 부부들도 여러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정대로만 해석한다면 동성커플도 결혼식을 할 때 해당 제도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걸 신청한다면? 일단 담당자는 물론이고 상급자들은 내가 퀴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논의 과정에서 “떼쓴다고 해주면 계속 더 달라고 한다” 혹은 “네가 감히 소동을 만들어?”와 같은 부정적 평판을 공유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결국 휴가와 수당을 받아내더라도 일주일간 결혼휴가를 즐기러 가는데, 동료들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사 초대한다고 한들 그들이 과연 결혼식에 올까? 고작 돈 몇 푼과 휴가 며칠로 회사 생활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을 감수할 용감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용기’로 ‘연대’를 만들기
3년간 퀴어동네 활동을 하며, 퀴어 직장인의 정신건강 저해 요소, 직장내 커밍아웃과 투쟁의 필요성을 배웠다. 그러나 정작 자본주의 이윤논리가 극대화된 사기업에 들어가 보니, 그러한 깨달음과 별개로 일단 내 자리를 지키는 것부터 수없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회사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먹고사니즘, 나를 둘러싼 현실적 고민들이 많은 것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주변 동료들의 여론, 빡빡한 근태관리, 쏟아지는 업무들의 촉박한 납기일, 상사의 심기 경호,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가해지는 압박 분위기, 평가와 성과급 제도, 철저히 수직적인 업무상 지휘명령 관계. 내 사상이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파편화된 개인은 자기합리화하고 침묵해야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결국 이를 극복하려면 나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야만 한다. 내가 결혼휴가를 신청할 때 지지해 줄 수 있는 동료나 상급자가 있다면? 당사자와 연대자의 모임을 조직해 사내에 깃발을 꽂는다면? 이를 시작으로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에, 회사에 목소리를 관철할 수 있다면?
내 편을 만드는 것은 상대의 고민에 진지하게 응답하면서 내 삶도 공유하고, 서로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덜어주며,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관계를 조직하는 것이다. 비록 X사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지만, 이 경험을 토대로 어느 직장에 있든 옆자리 동료와 서로의 용기가 돼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다짐해 본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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