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다 갑작스레 그치기가 예측할 수 없이 반복되던 회색의 어느 날. 무지갯빛 우산 사이로 “사랑이 이겼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7월18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다시 말해 대법원 판결을 통해 동성 동반자의 권리가 최초로 인정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2017년부터 동거를 시작해 2019년 결혼한 동성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면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해 2020년 2월 다른 한 사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자격을 취득했다. 그해 10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은 피부양자 등록이 ‘착오 처리’였다며 피부양자 자격을 소급해 상실시키고 지역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변경했다. 이유는 ‘피부양자 인정요건 미충족’, 즉 동성 부부(동반자)는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는 ‘사실상 혼인 관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부부는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등을 납입하라는 공단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2년 1심은 부부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 중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자면, 두 사람의 성별이 같기에 사실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부는 항소했고 2심이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재판부는 공단의 처분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자의적 차별”에 해당한다며 1심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공단이 불복해 상고심이 이어졌다.
그리고 7월18일, 대법원이 두 사람은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반자고,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해 마침내 두 사람의 결합이 제도적으로 인정됐다.
판결문에서 전원합의체 판단 이유와 다수의견도 좋았지만, 다수의견에 대한 김상환 대법관과 오경미 대법관의 보충의견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울린 문장에 밑줄을 그으라면 거의 전부에 그었을 것 같다. 내용 전체를 소개하고 싶지만, 보충의견의 마지막 부분만 옮긴다. 보충의견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인용하며 천사 미하일이 지상에서 인간으로 있는 동안 만난 쌍둥이 자매를 예시로 들었다. 쌍둥이 자매가 각기 성적 지향에 따라 한 사람은 이성 동반자를, 한 사람은 동성 동반자를 선택했다. 그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은 천사 미하일의 눈에는 자신을 거둬 준 세묜 부부의 가정공동체나 쌍둥이 자매가 각기 이룬 동반자 관계 모두 애정을 바탕으로 한 가정공동체로서 보호 가치가 다르지 않게 보일 것이라고 두 대법관은 설명했다.
신이 천사 미하엘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중 마지막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대법원이 인정한 것은 서로를 살게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단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 보게 하고, 아끼고 보살피게 하며, 결국 서로를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보충의견이 밝혔듯, 천사 미하엘의 눈에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하는 이들의 성별이 같은지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감히 어떤 사랑은 인정하고 어떤 사랑은 배제하겠다고 하면 천사 미하엘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며 탄식할 것이다. 편견과 차별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랑’을, 결합을 결단하게 한 ‘사랑’을,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을 차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한 착각이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공적으로도 평등해야만 한다.
김용민·소성욱 부부의 승리를 온 마음 다해 축하한다. 승소 소식을 듣고 “해냈다”라고 소리 낼 만큼 기뻤다. 두 사람의 도전 덕분에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같이 사는 사람의 눈에도, 생판 모르는 타인의 눈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비치는 세상이 곧 올 거라는 희망이 샘솟는다. 더불어 이번 판결이 있기까지 가까이 또는 멀리에서, 보이지 않는 곳과 보이는 곳에서 응원과 힘을 보태 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 탄원을 보내고, 재판을 방청하고, 유튜브 선고 생중계를 시청하며 실시간 채팅방에 무지개 깃발 물결을 일으킨 모든 사람이 사랑이 이기는 결과를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간을 만날 때면 평등한 세상이 생각보다 멀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 판결로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한 발을 또 내디딘다. 걸음마다 사랑으로,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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