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전 수상할 때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에둘러 말했다. 그때 했어야 했던 말을 지금 하겠다.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다. 그 한 단어를 말하면 채팅방이 뒤집어질 것이고, 부모님이 저를 부끄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원하게 말하겠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가 만든 앨범이 올해의 일렉트로닉 앨범이다. 트랜스젠더 여러분, 울지 마시고, 자살하지 마시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고,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말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일렉트로닉 음반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수상소감이다. 평소 음악을 잘 듣지 않는 나는 사실 수상소감보다도 이에 대한 SNS상의 반응을 더 먼저 접했다. “그래도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거나 “예쁘게 꾸미고 화장하고 치마 입는 행위가 성별을 결정하는 게 아닌데, 왜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냐”는 반응들. 정작 시상식 영상 속 키라라는 화장도 하지 않고 치마도 입지 않았는데도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동성애자 남성과도 연대할 수 있냐,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이 맞냐, 성소수자 문제 섞지 말고 ‘여성’ 문제를 일단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 편을 갈라서 어느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인지 갑론을박하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대판 싸우고 난 뒤에는, 어느 누구도 성소수자 문제를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여성’의 적일까. 애초에 여성이란 무엇이고 남성이란 무엇일까. 살면서 몇 번 거쳤던 ‘숏컷’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내가 숏컷을 했다고 해서 딱히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여성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대부분 아들, 남학생, 남자친구로 불렸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데도, 머리 짧고 화장하지 않은 여성보다는 그저 덜 자란 남성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전형적인 ‘여성적’ 꾸밈을 한들, 그것이 트랜스젠더 여성 개인을 탓할 수 있는 문제일까. 소위 ‘여성스럽게’ 보이면 고정관념을 답습한다고 비난받고, ‘여성스럽지’ 않으면 ‘어딜 봐서 여성이냐’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개인적인 실천의 합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우리를 억압하는 공통의 체제에 맞서 같이 싸움으로써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의 성산업은 물론이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광고 산업 등 성 역할을 공고히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수많은 ‘성산업’이 건재하다면, 아무리 그래도 여성은 가정에서 출산하고 돌봄을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는 가족제도가 건재하다면, 이를 유지할 이해관계가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여성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도 마찬가지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65%가 넘는 트랜스젠더가 ‘최근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의 비율도 절반을 넘는다. 2017년 발표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따르면 성인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실제로 자살에 이르는 이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 인터뷰에서 키라라는 9년 전 수상소감이 방청석에 앉아 있던 친구를 향한 말이었지만 그 친구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옛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트랜스젠더 친구들 중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여성’의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 아닌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득을 보는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울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용기 있는 이들과 서로 손을 잡고 우리 모두를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급진적인 연대, 급진적인 정치를 꿈꾼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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