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의 사실혼 관계 인정받기

칼럼

▲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2024년 7월 대법원은 동성 부부의 국민건강보험 직장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동성 동반자에게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는 판단이었다. 동성 동반자의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달 28일 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배우자 피부양자 자격 취득 건수는 지난해 6건, 올해 8월 말 기준 12건 등 모두 18건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현재 동성 배우자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10명에 불과하다.

판결 이후에도 직장피부양자 인원이 10명에 그친 것은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회사에 이를 알릴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인사팀이나 총무팀을 통해 피부양자 등록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인이 직접 동성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등록하더라도 급여 지급을 위한 4대 보험 관리나 연말정산 과정에서 직장피부양자 신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즉, 회사 내 공개 커밍아웃이 가능한 ‘퀴어친화적’ 조직문화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문화를 가진 회사는 아직 드물다.

직장피부양자로 등록된 뒤에도 문제가 이어진다. 건보공단은 지역별로 ‘자격관리 심의위원회’를 열어 매년 피부양자 자격 취득의 적정성을 심사한다. 이 과정에서 생활공동체 관계 성립일을 명시한 공증서류, 내국인 2인의 인우보증서, 혼인관계증명서와 신분증, 동성 동반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증빙자료는 결혼, 재산, 생활비 등 항목으로 구분돼 있으며, 하객 5명 이상의 결혼식 사진이나 청첩장, 공동명의 계좌, 부동산등기부등본 또는 임대차계약서 등을 택해 제출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요구하는 이런 서류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에게 요구되는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단순 동거와 사실혼 관계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은 ‘사회적 인정’이다. 그러나 많은 동성 부부가 벽장 속에 숨어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친구나 가족 등에게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을 경우 사실혼이 아닌 단순 동거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동성 부부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오히려 관계의 단절이나 차별의 위험을 감수하고 커밍아웃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공단이 주장했던 것처럼 한 달에 수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지역가입자로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사회보험은 건강보험 외에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산재보험 등이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유족연금은 생계를 같이하던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그 권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연금법 3조2항은 수급권자 대상에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도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이므로 같은 기준으로 가야 한다”고 밝힌 만큼, 동성 부부의 4대 보험 적용은 건강보험공단의 사실혼 관계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부부에게 요구되는 서류를 동일하게 동성 부부에게 일괄 요구하기보다, 동성 부부의 관계적 특성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사실혼 인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이러한 제도 개선은 단순히 행정 절차의 정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커밍아웃해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는 인원 수가 보여주듯, 법과 제도의 보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칼럼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