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에 다정함이 깃들기를

칼럼

▲ 타리 퀴어동네 운영위원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던 때, 프리랜서 요가강사로 여의도에서 새벽 수업을 하고 있었다. 계엄령이 해제되고 3시간 뒤, 국회가 내려다보이는 건물로 출근했다. 보통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시간은 오전 8시 반, 그러니깐 직장인 평균 출근 시간이 내겐 퇴근 시간이었다. 새벽 수업을 하는 내내 여의도역 긴 레일을 혼자만 반대로 걸었다. 그 감각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고, 계엄령이 있었던 날은 유독 이상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이곳에서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출근을 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의도에는 금융권 회사가 많았고, 아마도 지금 출근하는 사람 중 많은 수가 금융업계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출근을 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자본’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된 날조차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러 나왔다는 게,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게 새삼스레 놀라웠다.

만약에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다정함’을 위해 일한다면 어떨까. ‘다정함’을 생산하고, 널리 유통하고, 파생되는 소소한 가치까지 활용한다면 어떨까. 돈이 많은 사람을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을 존경하는 세상이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아주 조금은 세상이 살만해질 것 같았다. 더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한, 그러니까 모두가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단 내 타인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까지도 사랑하게 됐다. 이 확장된 가족 개념은 과거 우리 종의 성공에 이바지했으며, 미래도 아주 희망적이다. 인구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써야할수록, 우리 종이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신뢰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야 한다.” – 브라이언 베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과 버네사는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우리 종이 살아남아 번성한 이유를 다정함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나와 같은 인간(집단 내 타인)이라는 감각을 느끼며, 그로부터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나와 다른 인간, 특히 나 또는 내가 아끼는 무리에게 위협이 될 것 같은 집단에 대해선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다. 타인에게 공감이 일어나던 뇌신경작용을 스위치 끄듯이 꺼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동시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책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힘든 일을 겪은 친구를 위로하고, 길 가다 넘어진 사람에게 괜찮은지 묻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친구가 겪은 일이 나로 인한 일일 때, 길 가다 넘어진 사람이 술에 취한 노숙자일 때처럼 나에게 해를 가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면 그 위로와 친절은 어려워진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구별하고, 차별하며, 타인에 비해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증명하도록 강요한다. 누구든지, 언제라도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감각을 심어주고 끊임없이 타인을 의심하게 한다. 공감과 연민의 대상을 좁히고, 공감과 연민이 작용하는 신경회로의 스위치를 차단하려고 한다. 서로에게 다정해지기보다는 잔인해지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할 수 있으며, 공장에서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비인간동물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들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쓸 수 있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앨라이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깐 자본주의가 우리의 속성을 바꾸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잔인함이 우리의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12월 31일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준비하기 적당한 때이다. 마음 안에 다정함을 심는다. 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보았을 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잔인함을 맞닥뜨렸을 때, 다시 돌아올 곳으로 다정함을 두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의 마음에도 다정함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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