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삼은 나와 15년을 살았던 고양이다. 작고 약하게 태어나 어미에게 버려졌지만 동네 가게의 봉지 빵을 훔쳐먹으며 버티다 구조됐고, 묘생(猫生)으로는 스무 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해삼과 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5인 3묘의 대가족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2인 2묘, 그리고 지금은 2인 1묘 가족이 되었다.
해삼은 작고 동그랗지만 용맹했다. 어느 날은 열린 현관문으로 길고양이가 집 안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고양이들이 혼비백산해 몸을 숨기는 동안 혼자 맞서 싸워 내쫓았다. 하지만 노환에는 장사가 없어서, 마지막 몇 년은 아침저녁으로 수액을 맞고, 사람이 억지로 먹이는 많은 약을 견디며 지냈다. 말년의 해삼은 몸이 아파서인지,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고 얼러주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해삼의 병세가 깊어진 재작년 어느 여름 오후,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종일 해삼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일정을 바꿔 연차를 냈다. 거실에 있던 해삼 자리를 들어 침대로 옮기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가냘픈 몸을 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이 되어 여느 때처럼 동거인이 퇴근해 돌아왔고, 함께 저녁을 먹은 뒤에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침대 가운데 해삼을 두고 양옆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해삼은 우리 사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불과 몇 분 전에야 알아챘다. 해삼이 덜 무서워하도록 안아주고 계속 쓰다듬으며, 한 사람씩 작별의 말을 건넸다. 소식을 듣고 해삼을 함께 키웠던 동생들이 달려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해삼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좀 더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말고는 더 바랄 것이 없는 마지막이었다.
나의 마지막 순간도 해삼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같이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병원이 아닌 우리 집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그러나 해삼이 가고 비혈연 2인 1묘 가족이 된 우리가 서로를 마지막까지 무사히 돌보고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의 저자 캔디는, 10년을 함께한 동성 파트너의 말기암 소식을 듣는다. 지금 의료체계 안에서 돌볼 권리, 마지막을 함께할 권리는 혈연과 혼인으로 구성된 ‘법적 가족’에게만 허용된다. 그는 파트너의 돌봄과 임종, 장례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행히 캔디는 파트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지만, 파트너 어머니와 간호사의 ‘호의’ 덕분이었으며 “행복했고 사랑한다”는 작별 인사는 어머니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가족의 ‘보호자가 되지 못할까 봐’ ‘내가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모든 ‘법 밖의 가족’들이 가지는 불안의 언어다. 동성 동반자뿐 아니라 동거, 독거, 비혼 등 다양한 비혈연 가족들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한 일은 그저 옆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바로 그 ‘옆에 있음’을 위해 제도 밖에서 다른 길을 찾고, 설득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불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픈 파트너를 돌보는 저자를 친구들이 돌아가며 돌본다. 장례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주변을 설득하고, 새로운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법이 인정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지탱한다. 이때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새로운 돌봄의 방법을 만들어 내는 진취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이미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혈연이나 입양, 혼인으로만 제한해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아 가족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늙어도 익숙한 환경에서 돌봄을 받는 것, 즉 ‘내 집에서 나이 들기’ 조건을 위해 다양한 생활동반자 제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선은 비혈연 생활동반자에게 의료법상 보호자 개념을 적용하고, 장례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직장에서 돌봄 휴가의 범위를 넓혀보는 방안을 제시했다. 누구나 아프고 죽는다.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가족형태와 돌봄이 차별 없이 받아들여지기를, 그 방법을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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