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다

칼럼

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레드와 블루, 두 여성은 시간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레드와 블루는 서로의 가장 성가신 적이다. 때로는 이기고, 수없이 진다. 어느새 작전의 승부는 뒷전이 된다. 대체 너는 날 어떻게 패배시키는가. 레드와 블루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골몰한다.

레드와 블루의 사랑은 위험하다. 두 여성이 속한 집단인 에이전시와 가든은 시간선을 꼬고, 풀고, 땋는다. 시간을 쟁취해 이 세상을 철저히 굴복시키기 위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치밀한 지배와 통제, 엄격한 규율과 필요로 인해 만들어지고 자의로 인해 집행되는 법이 가득할 것이다. 엄격한 질서에 자유와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레드와 블루는 전쟁을 망쳐버린다. 죽음은 연인을 차지하지 못한다. 연인은 에이전시와 가든이 정해놓은 세계로 뛰어든다. 온 세상을 제멋대로, 제 뜻대로 결정하려던 그들의 계획을 망가트린다. 섬세하게 조직한 시간 선을 풀어헤치고, 과거에 미래를 심어둔다. 그들 중에 승자는 없다.

“시간과 죽음에 맞서서, 우리를 찍어누르려고 늘어서 있는 모든 권세 앞에서, 우리가 가진 건 사랑뿐이야. … 희망은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싸울 것이다. … 그들은 우리를 거느릴 자격이 없어. … ‘우리’는 모두를, 이 역겹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느라 모든 시간의 실에서 죽어가는 모든 유령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시간만이 아니다.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이는 사랑을 택한 연인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죽음만 꿈꾸는 지배자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무지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를 썼다. 우리 함께 사랑하자고. 아주 오랜 시간 우리를 옭아매던 것들을 집어던지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함께 차도 마시는 공간에서 꿈꾸어 보자고. 그러나 편지는 쉽게 오독된다.

그들은 편지를 조작한다. 무지개가 탄핵광장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차별금지법은 안 된다고. 혐오가 아니라 그네들이 예민한 것일 뿐이니, 무시하라고.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고. 그들은 또다시 무지개와 세상을 단절시키려 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술수에 넘어간다. 평등보단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오는데 익숙했던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고.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무엇을 찾아왔는지 물었다. 정답은 없었다. 응답만이 있었다. 알아두겠다! 라고.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광장에서 우리가 꿈꿨던 차별 없는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길 속에 희미한 빛으로만 반짝인다. 어둠 속에서 허기를 느끼며,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꿈을 꾼다.

우리가 똑같이 용감해지기를. 우리가 서로의 편지를 읽기 위해 똑같은 것을 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잿빛으로 가득한 차별의 세상을 넘어, 색색깔이 터져 나갈듯한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너랑 나는,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이 글은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이 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읽고 썼다. 책을 읽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시라. 당신에게 쓴 편지가 숨어있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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