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지개 하나

칼럼

▲ 이추(퀴어동네 회원)

설 명절을 앞두고 호주 시드니를 다녀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다 보니 그 무렵이 되었을 뿐이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한 여행지가 시드니였을 뿐이다. 그렇게 도착한 시드니에서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뜻밖에도 무지개였다. 호주 퀴어 축제인 마디그라 기간이었던 것이다.

최근 새롭게 생긴 취미 중 하나는 세계 곳곳의 퀴어바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한국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들의 퀴어바는 여전히 골목 깊숙이 숨어 있다. 성소수자에 친화적이지 않을수록, 폐쇄적일수록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퀴어바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닿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런데 시드니는 달랐다. 구글 지도에 검색하는 족족 퀴어바가 나왔고, 우리가 묵은 옥스퍼드 스트리트 일대는 그 자체로 거대한 퀴어바 같았다. “너의 사랑을 응원해”라는 문구를 적은 바틀샵, 무지개가 칠해진 호텔, 무지개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성소수자 친화적인 광고들. 특별한 장소를 찾아 들어가지 않아도 거리에서 이미 안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굳이 ‘퀴어바‘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무지개 깃발이 달린 평범한 식당에서 토스트를 먹고, 놀이공원 직원의 모자에 달린 작은 무지개 배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도시 전체가 “당신은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퀴어바를 찾기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나와 같은 성소수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우연히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성소수자 친구와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인적 드문 곳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퀴어바는 나와 같은 이상한(Queer)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말을 돌리거나 관계를 바꿔 부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하면 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하루 대부분은 그곳이 아니라 일터에서 흘러간다. 그리고 많은 성소수자는 일터에서 침묵을 선택한다. 커밍아웃은 개인의 용기 문제로 말해지지만, 정말 그럴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을 받아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조직의 문제는 아닐까.

퀴어동네는 퀴어노동권포럼을 통해 ‘직장 내 커밍아웃 조건찾기’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직장생활 중인 성소수자 4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4.1%는 “일터에서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친한 동료 몇 명에게만 밝혔다는 응답은 25.3%였다. 직장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곳인지, 숫자가 말해준다.

무엇이 달라지면 우리는 덜 숨게 될까. 조사에서 가장 많이 꼽힌 조건은 ‘소수자 친화적 직장 분위기’였다. 이어 동성 배우자와의 결혼식·신혼여행 휴가 보장,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명시된 사내규정 등이 뒤를 이었다. 거창한 특혜가 아니다. 다만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나의 관계를 관계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정,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였다.

결국 조건은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거리 곳곳에서 나를 환대했던 무지개처럼 “당신을 환영한다”는 작은 표시 하나면 된다. 취업규칙 한 줄, 사내 게시판의 문구,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무지개 깃발. 그것이 모든 차별을 단번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침묵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라는 신호는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신호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시드니에서 내가 본 것은 화려한 축제가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무지개였다. 직장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제도 변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환대의 표시는 지금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누군가의 침묵을 멈추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를 만든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을 지우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굳이 ‘안전한 곳’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일터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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