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의 밖에서, 당신에게

칼럼

▲ 란다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소행성이 날아와 지구의 대부분이 박살 난다. 곳곳에 불바다가 생겨 먹구름으로 하늘이 가득 차 태양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얼어붙고 지진과 해일이 덮쳐온다.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는다. 지구는 폐허가 되고 문명의 복구는 요원하다. 그런데 달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저기 사람이 있다. 지구는 그를 구해야 할까?

전삼혜 작가의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라는 작품의 줄거리 중 일부다. 책장을 넘기며 고민했다. 달로 우주선을 보내야 할까? 수십억 명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작 한 명을 위해? 지하철에서 엉뚱한 고민만 내내 하며 나는 퀴어동네 회원세미나로 향했다.

지난 토요일, 퀴어동네 주민들은 세미나를 열었다. ‘일터를 퀴어링’이라는 이름의 세미나는 두 섹션으로 진행됐다. 1섹션은 퀴어동네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연구인 ‘성소수자 노동실태와 정신건강연구’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었고, 2섹션은 누구나 노조지회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 ‘노조운동의 퀴어링’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었다.

퀴어들은 일터에서 존재가 지워진다. 그 존재가 가시화될 때 으레 따라오는 것은 차별과 혐오다. 퀴어는 불편한 존재가 되거나 무시하는 존재가 된다. 그에 관한 토론으로 ‘커밍아웃 할당제’라는 급진적인 제도가 제안되기도 했다. 모두가 뜻을 모아 “여기에 퀴어가 있다”고 소리치자고.

누구나 노조지회는 탄핵 정국 당시 광장에 나왔던 이들이 주축이 돼 만든 민주일반노조 산하 지회이다. 프리랜서, 학생, 자영업자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점은 퀴어다. 광장에 빼곡하게 나부끼던 무지개 깃발을 생각하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건만, 새삼스럽게 놀라고 만다.

세미나 내내 던져진 화두는 하나하나가 다 반짝였다.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며 차곡차곡 쌓인 고민부터 노동인권을 위해 길바닥을 방바닥 삼아 지냈던 시간이 피워낸 질문은 함께 고민할 동지를 만나 폭죽처럼 팡팡 터졌다. 일단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일터 곳곳에 있을 퀴어를 ‘만나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불편하든 낯설든 좋으니, 그가 그곳에 있다고 발견해야 했다.

퀴어동네 주민들의 토론을 들으며 나는 소행성이 충돌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가 된 기분이었다. 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기꺼이 살리자고 이야기했을 이들의 목소리가 이렇지 않았을까?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를 하나라는 숫자로 환원하지 않고 당연히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다정하고 멋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구도 난리인데 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냐는 질문은 통하지 않는다.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는 세상은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진작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세상만이 결국 모두를 구할 수도 있다고, 이들은 여기서 열심히 하나같이 외치고 있었다.

세미나 중 왜 하필 다양한 인권 주제 중에 퀴어인권을 택해서 퀴어동네 주민이 되었느냐는 물음이 기억난다. 나는 아직 퀴어동네 가입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사실 너무 개인적이어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 기회에 밝히자면, 나는 친구들을 이 날선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었다. 친구들이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렇게 우리 오래오래 함께 놀자는 유치한 마음이었다. 이 마음이 모두를 위한 마음이 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가보고 싶었다.

소행성이 충돌한 지구의 인간들은 달에 홀로 살아있는 리아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당신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비록 닿지 않을지라도. 퀴어동네의 첫 번째 세미나가 그런 기록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직은 닿지 않은 당신에게. 이 기록이 언제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만날 것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세계를 줄 것이다. 혐오 대신 사랑과 연대로서,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궤도의 밖에 있는 듯한 당신에게 이 기록을 보낸다.

‘당신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토요일, 퀴어동네에서 주민들 드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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