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는 내가 살게, 무는 네가 사

칼럼

▲ 김세정(소순) 퀴어동네 운영위원

9월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평소 별다른 연락이 없던 집 건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사는 집 위층에 불이 났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우리 집 현관문을 강제로 개방하면서 문이 부서져 오늘부터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해졌다.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하루 묵을 숙소를 찾은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때는 몰랐다. 9월의 마지막 날까지 꼬박 한 달을, 집이 있는데도 없는 사람처럼 지내게 될 줄은.

처음 2주는 금방 집에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고정 숙소를 구하지 않고 날마다 거처를 옮겨 다녔다. 하지만 숙박업소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괜찮은 곳은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염치없이 친구들의 집에 하루씩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오래된 친구의 혼자 사는 집, 가족과 사는 집, 여행으로 비어있는 집, 친구의 동거인이 쓰는 작업실 등 ‘하루살이 내 집’이 여러 곳 생겼다. 집을 내어 준 사람은 제각각이었지만, “우리 집도 괜찮으면 와”라며 편히 지내라는 말을 덧붙이는 건 모두 같았다.

얼마 전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았다. 폐지를 줍거나 길가 좌판에서 채소를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독거 노인 셋이 고깃집을 돌아다니며 무전취식하고 도망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 사람은 소고기뭇국을 끓여 나눠 먹으며 친해지는데, “소고기는 내가 살게 무는 자네가 사”라는 말에서 시작된다. 웃고 울고 감격한 장면 중에서도 유독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늙고, 힘없고, 돈 없는 나와 내 친구들이 저런 대화를 나누며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발간한 ‘2차 성소수자 노후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이 노후 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빈곤, 질병, 고독 다음으로 ‘나를 돌봐줄 사람’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 대부분은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애초에 법적으로 혼인할 수 없다. 원가족과 살거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대신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부모나 자신을 위한 돌봄을 대비하기도 힘들다. 살아본 적도, 배운 적도, 충분히 이야기해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 노년과 고립, 고독, 돌봄의 공백은 구체적인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하루살이 내 집에 누워 혼자인 삶과 함께인 삶을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졌다면 어땠을까. 출근은 해야 하는데 모든 걸 던지고 고향으로 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보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숙소를 구해야 했을 것이다. 혼자인 삶을 상상하니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고민만 가득하던 상상은 ‘그래도 함께인 삶이라 오늘 이렇게 누워 있을 수 있네’ 하는 안심으로 끝났다. 집 없고, 돈 없고, 힘없어도 지금처럼 연결돼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오래전 친구와 ‘할머니 페미’가 되어 오토바이를 여러 대 몰고 신촌오거리를 마비시키자고 약속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걱정은 많지만, 사실 할머니가 되면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자. 소고기는 내가 살게 무는 네가 사 와”라고 말하며 모여 소고기뭇국을 끓여 먹고, 할머니 페미 오토바이 부대로 신촌오거리를 점거하며 살아갈 것 같기는 하다. 그날까지 질긴 고기도 넉넉하게 씹어 넘길 수 있게 치아 관리를 잘하고, 오토바이 점거 인원이 모자라지 않게 서로를 잘 살펴야겠다. 우리 일상과 공간을 주고받으며 같이 살고, 같이 늙자. 우리 집에 올 때는 무를 꼭 사오고.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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