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혼휴가를 거부하시겠습니까

칼럼

▲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어떤 공공기관 인사팀에 한 직원의 결혼휴가 신청서가 올라왔다. 여느 신청서와 같이 청첩장이 첨부돼 있었다. 보통은 청첩장이 확인되면 결혼휴가가 승인되고, 이외에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엔 쉽게 결재할 수 없었다. 직원의 배우자가 해당 직원과 같은 성별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실제로 상담했던 사례다. 인사담당자는 결국 이 결혼휴가 신청을 거부했다. ‘민법이 인정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안의 핵심은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정확히는 결혼휴가 부여 기준을 특정 노동자에게만 달리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직원은 특별한 혜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직원과 똑같이 청첩장을 제출했고, 취업규칙에 따라 휴가를 부여해 달라고 했을 뿐이다. 이 기관은 그간 결혼의 ‘법적 성립’ 여부를 따지지 않고 결혼휴가를 부여해 왔다. 혼인신고를 나중에 하거나 살림을 합치지 않았거나, 기타 여러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결혼식과 청첩장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사실관계만으로 휴가를 승인했다. 그런데 유독 이 결혼에만 ‘민법상 결혼’이라는 요건을 새롭게 두어 이 직원을 휴가제도에서 배제하는 차별을 한 것이다.

제도 취지의 관점에서도 이 선택은 옳지 않다. 기업의 결혼휴가 제도는 민법이 혼인제도를 보장하는 것과 취지가 다르다. 직원이 삶과 일을 잘 조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배우자와 결합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의 동반자를 선택하고 그 관계를 사회 앞에서 선언하는 순간을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다. 그 취지에서 본다면 이 결혼에 대해 휴가를 주는 것은 제도의 목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대법원도 민법상 동성 혼인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사회복지제도가 이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동성부부 역시 지속적인 공동생활과 상호부양을 전제로 한 ‘실질적인 생활공동체’이며, 이를 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하면서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기업이 법원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사담당자로서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시대 변화를 불편해하는 임원의 시선, 혹은 ‘괜히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다’는 우려가 앞설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대기업 노동자 김규진씨가 동성 파트너와 결혼하면서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청첩장을 제출하고 결혼휴가를 인정받아 뉴스에 보도된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 사이 이 부부는 슬하에 1녀를 둔 3인 가족이 됐고, 여전히 회사에 재직 중이다.

동성부부에게 휴가를 부여한다고 해서 기업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다른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도 아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아마도 남들보다 조금 더 용기가 필요했을 직원이 지지와 축복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될 뿐이다.

반면 동성 배우자와의 결혼휴가에 대한 차별은 결혼휴가 부여에 관한 취업규칙 위반이고, 이 직원이 다른 성별이었다면 결혼휴가가 승인됐을 것이기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지하는 성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또 “인종, 종교, 장애, 성별, 연령, 출생지, 정치적 견해 등에 따른 일체의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며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규정한 해당 기관의 윤리경영헌장과 ESG 평가 기준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결정이다. 어떤 것이 ‘리스크’가 더 클까.

“신청하신 휴가가 승인되었습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직원의 삶의 새 출발 앞에서 이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선택일까. 그러한 일을 겪는 동료를 보고 다른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결혼휴가를 둘러싼 이 사례는 노동자 삶의 형태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인사담당자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면, 이 결혼휴가를 정말로 거부하시겠습니까?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칼럼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