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어자긍심의 달, 6월을 지나 7월에도 대전퀴어문화축제(1회)와 제주퀴어프라이드(5회)가 개최됐다. 비서울 지역에서도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니 6년 전 동인천 북광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8년 9월8일,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있었던 많은 동지에게 그 기억은 혐오세력의 집단적 린치와 혐오범죄, 그리고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날의 폭력사태는 이전에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와닿지 않았거나, 와닿았더라도 혼자만 겪었던 사실을 집단이 함께 경험하게 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바로 성소수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혐오와 폭력이 이토록 극심하다는 것, 국가는 이를 방치하는 공범이라는 것,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는 단결하고 연대해서 더 크고 선명한 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사실이다. 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 당일 진행요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내 머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동인천역까지 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경찰과 혐오세력의 봉쇄로 3~4시간에 걸쳐 행진하는 동안, 굴다리 밑에서 “우리는 여기에 있다”를 함께 외치던 순간이다. 혐오세력의 폭력보다, 그 폭력에 맞서 함께했던 친구들과 이름 모를 동지들의 단결감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선명한 기억은 계속해서 나를 행동하게 만들고, 다른 집회들에 연대하도록 하고, 활동가의 정체성을 소환하도록 했다. 퀴어문화축제의 상징성이 있기에 그만큼 혐오세력의 격렬한 조직이 있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모순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맞닥뜨리면서도, 그에 맞섰던 우리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있던 퀴어들은 축제에 모여 ‘우리’가 된다. 우리가 퀴어문화축제에 모여서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저항과 도전의 의미를 띠고 있다.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군중으로 모여 사회에 힘과 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회적 분위기나 지역, 규모에 따라 축제의 형식과 강조점이 달라져도, 그 본질은 축제를 통해 우리가 한곳에 모이면 수천, 수만 명이 될 만큼 힘이 강하고, 일상에서는 용기낼 수 없던 말과 행동을 할 만큼 당당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에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를 향한 도전과 함께한다. 억압적인 일상(저쪽)과 해방구로서 달콤한 하룻밤의 축제(이쪽). 두 가지 시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축제에서 경험한 정치적 자신감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꿔낼 상상력을 가져가는 것이 축제의 진정한 의미다. 특히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경우, 우리는 상징성(대표), 공간성(서울 시내), 규모(15만명의 참가)의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이 정치적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퀴어문화축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더욱 정치적이여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축제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 상업화, 탈정치화의 방향을 “선택”해 왔다. 행진 차량의 발언으로 참가자를 정치적으로 고무하기보다 케이팝을 트는 활동으로 획일화한 것, 참가자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구획화된 부스와 차량을 축제의 소비자로서 선택하고, 개인적 경험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것,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목숨을 저당 잡고 팔아치우는 초국적 제약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온 것이 그렇다. 특히 2024년은 팔레스타인 학살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임에도 조직위는 학살 공모자인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과 파트너십을 맺어 미국의 핑크워싱에 사실상 공조했다. 길리어드의 행진 차량을 또다시 선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축제를 향한 국가의 차별과 억압이 여전히 공고하고,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 거대한 축제를 운영하는 조직위의 헌신과 고충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에 질식돼, 축제를 감시하는 외부자들이 정치적으로 불편하지 않게, 참가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충실하게 적응하는 모범퀴어로 표백되는, 즉 별생각 없이 적당히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많은 변화의 잠재력을 삭제하고 있는지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사람이 오게 하려면 재밌고, 활기차게 축제를 꾸미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서 대중의 시선을 염두에 두면서 축제의 외형을 기획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의 참가자들을 꼭 그 기획의 자본주의적 ‘소비자’ 정도로 수동화시키는 것은 지나친 과소평가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은 클럽에서도 가능하고, 부스에 들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플리마켓에서도 가능하다. 왜 꼭 퀴어문화축제여야 하는가. 억눌린 소수자들이 서울 시내의 도로 한복판을 점령하고, 전복적 경험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긍심은 축제 참가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퀴어퍼레이드 취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외부 기관에 자긍심을 외주화하고, 춤을 추고,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는 자긍심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대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한국 사회에 맞선 집단적인 커밍아웃에서 시작했다. 체제와 불화하는 불순분자들이 모여 존재를 지우지 말라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2024년 우리는 여전히 억압받는 불순분자다. 퀴어문화축제의 시작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이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해방되는 데 필요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 요구가 관철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상상하고,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저항일수록 힘이 강하다.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행동의 장으로서, 저항의 공간으로서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만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축제 직전 발표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의 일부를 공유한다.
“퀴어의 연대는 단순히 성소수자들끼리의 연대를 넘어서 다양한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중략) 퀴어는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해 왔으며, 앞으로도 연대할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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