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길에 아랫배가 슬슬 아파 왔다.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이상하다 싶던 차에 생리주기 앱을 켜 보니 배란일 전날이었고, 아픈 건 배란통 때문이었다. 문득 매일 같은 일터에 출근하지만 매일 같은 몸으로 출근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생긴 배란통과 더불어 내 몸에는 생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생리 전 증후군으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생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는다. 생리 양은 많고 기간도 긴 와중에, 잇몸은 헐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계산해 보면 한 달 중 생리 영향권 밖에 있는 날은 길어야 열흘 남짓이다.
일정이 생길 때면 자연스레 생리주기 앱을 열어 몸의 시간표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 심문회의가 있는 날, 강의하는 날, 장거리 출장을 가는 날이면 그날 생리통이 심하지는 않을지, 생리 양이 많지는 않을지 따져본다. 제때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생리가 새는 참사가 일어날까 봐 어느 타이밍에 화장실에 들르면 좋을지도 고민해 본다. 진통제를 챙기고, 없으면 사고, 충분한 생리대를 챙기고, 생리가 새더라도 티 나지 않을 옷을 고르고, 때로는 여벌의 속옷을 챙기기도 한다. 몸의 시간표에 따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런 일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피 흘리며 노동하기 위한 노동’이라고.
그나마 나는 대부분 곧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지만, 화장실을 제때 갈 수 없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2021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에서 본 인터뷰들이 떠오른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으니 대부분 대형이나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착용하고 근무한다는 건설노동자, 내리 6시간 운전을 마치자마자 생리혈이 쏟아졌다는 철도 운전사,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앉아 있던 방석에 생리혈이 새어 나와 묻었다는 학습지 교사. 피 흘리는 것은 지극히 보통의 경험인데, 일터에서는 마치 노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처럼 느껴진다.
일터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노동에만 집중할 뿐 그 노동을 수행하는 ‘몸’이 피 흘리며 매일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생리휴가는 원칙적으로 무급이고, 심지어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생리하는 몸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기에 우리는 피 흘리는 우리의 몸이 노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일터는 한 번도 피 흘려본 적 없고,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 노동자’로 상정해 설계됐다. 이 때문에 생리를 비롯한 여성노동자의 신체적 특성은 늘 주류에서 배제되거나, 기껏해야 시혜적인 제도로 메워야 하는 ‘취약성’으로 취급되곤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몸은 규격화된 부품이 아니다. 노동하는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터는 필연적으로 특정 집단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할 뿐이다.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피 흘리는 몸이 일터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일터가 피 흘리는 몸도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생리대를 적절하게 교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생리휴가를 필요한 모두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당연히 마련돼야 한다.
가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칸에 탄 여성들 가운데도 누군가는 생리통을 참고 출근하고, 누군가는 생리혈이 새지 않을지 신경 쓰며 서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 모를 이들과 출근길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응원하며, 더 이상 피 흘리며 노동하는 일이 숨겨야 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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