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이란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정 구역의 단위인 ‘리(理)’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선출 방식은 지방자치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 마을마다 선출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곧 이장 선거를 앞둔 ‘이반리’도 마찬가지다. 이반리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특이한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장 선거 출마 후보에게 ‘의무 거주 기간이 없다’라는 점이다.
이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각 마을의 행정 업무 외에도 동네 사람들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한다. 가령 이반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밤새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아침마다 돌아봐야 한다. 최근 주민이 고독사한 채 오래 방치된 사건이 있어 고령층 인구가 많은 이반리에서는 최대 근심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이장 철주씨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철주씨에 대해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대다수가 권한 남용 소식뿐이다. ‘저 자식 저거, 가만두면 안 되는데!’
누군가는 생각한다. 마을에 보탬이 되지 않는 현 이장 대신, 아침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새 이장이 필요하다고. 서울서 살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 이후 고향집으로 돌아온 만옥씨 말이다.
만옥씨는 마을 사람들을 잘 돌본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민원을 제기하고, 고쳐질 때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요리를 잘하는데 나눠 먹는 건 더 잘한다. 마을 사람들의 사정도 속속들이 안다. 이장 후보로서 직무 적합성이 높고, 지원동기도 확실하다. 새로운 이장으로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반리 이장 선거에서 화제가 된 것은 만옥씨의 개인 사정이었다. 세상에, 만옥씨가 그거란다. 동성연애자!
이반리 민심은 술렁인다. 이장 뽑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 그래도 ‘그거’는 안 된다는 사람이 맞선다. 금방이라도 철주씨를 밀어내고 만옥씨를 뽑을 것 같던 이반리 사람들이 슬그머니 만옥씨를 외면한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만옥씨가 아니다. 만옥씨는 평생을 그래왔듯, 눈 부릅뜨고 맞장 뜨기로 한다. 이반리 이장 선거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양상도 비슷했다. 교육감은 지자체 교육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방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고, 당연히 공약은 그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정작 선거에서 화제가 된 내용은 교육감 후보들의 동성애 찬반 여부와 동성애 교육(?)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의식 함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하겠다는 뜻인지 기대하며 공약집을 펼쳐봤지만, 대뜸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하길래 이게 대체 교육감과 무슨 상관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상식인이라면, 기존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니 우리 다 같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보자는 내용을 기대했을 것이다. 타인의 성 정체성을 함부로 재단하다 못해, 축제마저 있는 힘껏 망치겠다는 막말 대신에.
이반리 이장 선거의 결과는 영화 <이반리 장만옥>을 통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만옥씨는 과연 이장이 됐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결말을 예상할지 궁금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 차별 없이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장 만옥씨가 있기를 바라다가도, 과연 동성애자 여성 만옥씨가 이성애자 남성 철주씨를 이길 수 있을지 내 안에서조차 견고한 차별에 한숨 쉬었다.
나는 영화의 결말과 별개로, 현실에서도 멋진 결말이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시작은 좋은 이장의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성 정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성소수자인 것이 왜 문제라고 느껴졌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자. 당신만의 이반리 이장 선거 후일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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