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노란봉투법, 차별금지법도…

칼럼

▲ 빛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지난달 24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던 이 개정은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남발하던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고, 원청 사용자에게도 교섭 책임을 지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가 20년 가까이 요구해온 염원이 마침내 현실이 된 것이다.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현장에서 절실하게 제기됐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파업 뒤 회사가 제기한 수십억 원대 손배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은 회사가 제기한 30억원대의 손배에 매달 임금 차압을 견뎌가며 갚아냈다. 막대한 금액의 손배 소송은 사실상 노동자들의 목을 조르는 수단이었다. 2014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인 것도 이런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시민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거액의 손해배상을 함께 갚으며,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얼마나 부당하게 남용돼 왔는지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때부터 “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번 노조법 개정은 그 오랜 싸움의 결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장의 갈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당노동행위도, 노조탄압도 여전히 계속된다. 그런데도 노란봉투법이 그토록 필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공정한 싸움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도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출발선을 그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출발선을 그어보자고 20년째 제정을 외치고 있는 법이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최소한 고용이나 교육·서비스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 차별을 드러내고 문제 삼을 수 있는 언어와 절차를 갖게 될 것이다. 법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이 없는 것처럼 취급되던 현실이, 법이 제정되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절실한 출발선이다.

두 법은 같은 목적을 갖는다. 입법을 통해 갈등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법은 완성형이 아니다. 법은 사회적 갈등을 공정하게 다루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2007년 첫 법안이 발의된 이래, 차별금지법은 거의 20년 동안 수차례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늘 정치권의 핑계가 돼왔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는 이미 이뤄졌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올해 직장갑질119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0.7%가 찬성했다. 정치권이 책임을 방기한 사이 차별금지법을 왜곡하고 가짜 공포를 퍼뜨리는 목소리만 커졌을 뿐이다.

최근 들어 변화의 신호도 보인다.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고 했고, 원민경 장관은 후보자 시절 차별금지법 취지에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도 시민들이 이끌고 지켜온 결과다. 우리는 출발선 뒤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우리의 출발선을 함부로 뭉개지 못하도록 함께 지키고 서 있었다. 이제는 그 너머로 함께 발을 디딜 때다. 노란봉투법이 끝내 그 출발선을 새겨내고 그 너머를 딛기 시작한 것처럼, 차별금지법도 이제는 출발선 너머를 디딜 때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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