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강조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입찰 제한, 과징금 제도, 안전 관리 미비 사업장 신고 시 파격적인 포상금 지급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실형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재해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이 업무상 사고, 특히 사망사고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은 아쉽다. 매일같이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회에서 사망사고가 우선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죽음까지 이르지 않는 질병들은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우울증을 겪던 한 지인이 “죽어야 회사도 사회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냐”고 말했었다. 마침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기상캐스터의 사망 사건이 크게 보도되던 시점이었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쏟아지는 사회적 관심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씁쓸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신질환 산재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업무상 질병 중에서도 아직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은 영역이다. 그나마 2019년 ‘직장내 괴롭힘법’이 제정된 이후 산재 신청이 늘면서 인정률도 늘었다. 그 이전에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적절하게 명명되고 조명되고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뿐이다.
이처럼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성소수자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다. 2025년 4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와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실시한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 노동자의 우울증상, 자살사고, 자살시도, 수면장애는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각각 4.3배, 3.6배, 4.5배, 3.3배 높았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반적인 노동 스트레스에 더해, 성소수자로서 겪는 차별과 배제라는 추가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 참가자 다수는 직장에서 성소수자가 아닌 척 거짓말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40% 가량은 직장 동료로부터 성소수자에 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접하거나, 성소수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었다. 이런 차별 경험은 곧바로 높은 우울증상 유병률과 연결됐다. 언어폭력, 성희롱, 왕따나 괴롭힘 등 직장 내 폭력을 경험한 비율도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상당히 높았으며, 이 역시 우울증상과 긴밀히 연관돼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은 개인의 취약성 문제가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비롯된 명백한 산재다. 따라서 산재 근절 정책에도 정신건강 문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산재 요인으로서 성적 지향과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알아서 이를 고민할 리는 만무하다. 오랜 기간 미뤄 온 차별금지법에 대해, “무겁고 급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떤 면에서는 산재를 줄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산재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답은 뻔하다. 차별 없는 일터 없이는 산업재해 근절도 없다고, 더 나은 사회를 요구하는 여러 운동이 서로 연결돼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때만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 설문 응답자 중 직장에 노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30%나 됐지만, 성소수자 친화적인 노조가 있다는 응답은 5.3%에 불과했다. 대다수 성소수자 노동자는 노조조차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연구에서 강조한 것과 같이, 회사 내에 그리고 회사를 넘어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주체로서 노조의 역할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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