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여성의 날(3월8일)에 열린 광화문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가던 길, “Stop the steal” 피켓을 들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대학교 동기의 모습을 우연히 봤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내가 방금 다녀온 집회와는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분명했다. 막역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오며 가며 살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었다. 주변 친구의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태극기 집회에 다닌다” “말이 안 통한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가 광화문 광장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니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얼굴과 차림새를 한 젊은이가 정반대에 서서 나와 내 친구를 공격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18년 9월8일 동인천 북광장. 전국에서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대절해 몰려든 혐오세력은 축제를 무력으로 방해했다. 좀비 떼처럼 하나로 단결해 움직이는 그들의 조직력도 무서웠지만, 나를 더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그쪽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바람개비를 든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나온 단란한 가족, 세월호 배지가 달린 가방을 메고 온 중년 여성,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덩치 큰 중년 남성들, 그리고 말갛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포위한 채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는 동년배의 청년들. 일상에서 그들은 우리 옆의 평범한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겠지만, 교회 커뮤니티를 통해 조직돼 함께 행동에 나설 때는 혐오세력이 됐다.
위와 같은 성소수자 혐오집회를 조직하던 교회의 인물들은, 현재 탄핵 반대를 부르짖는 극우의 선봉이 됐다. 혐오세력의 대표주자 전광훈 목사는 광화문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면 사회가 무너진다”고 말한 손현보 목사는 여의도에서 각각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반대 집회의 규모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때때로 그 규모가 탄핵 집회를 앞서기도 했다. 실제로 1~2월 내내 집회 참석을 위해 광화문에 가면, 광장에 군집한 반대 집회 인파의 기세에 소름이 돋았다. 기세등등한 그들은 탄핵 집회가 열리는 동십자각 근처까지 몰려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확연히 줄어든 탄핵 집회의 인파를 확인하며, 본인들의 세계가 옳다는 자신감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내란옹호 세력은 단순히 거리에 모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을 행동에 옮기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1월19일,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을 수백 명이 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기자·민간인에게 무력을 행사한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이 발 딛고 선 극우적 세계관은 현 사회의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는 법원을 습격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청년들이 여러 대학 캠퍼스 내에서 탄핵 반대 행동을 이어가고, 심지어 2월26일 이화여대 캠퍼스에 다수가 진입해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무도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이런 움직임이 단순히 소수의 일탈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거대양당인 국민의힘이 내란옹호 세력의 손을 적극적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국의 탄핵 개입설에 힘을 싣거나, 전광훈·손현보 목사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사실 국민의힘은 탄핵 국면 초반, “그래도 계엄은 문제”라며 윤석열과 선을 긋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 집회의 힘이 세지자 이에 합류하며, 가짜뉴스와 반공·반동성애·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반한 극우적 세계관을 승인하고 재생산한다. 물론 기존에도 국민의힘은 여러 이슈에서 극우적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내란수괴가 5천만명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위협에 빠뜨린 상황에서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되지 않은 망상들을 추수하는 것은 극우가 주류화되는 길목에 서 있다는 징후이다.
극우적인 내란옹호 세력이 급격히 성장한 시점은 탄핵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낙관적 정서가 퍼지고 나서, 시민들의 집회 참여가 시들해진 시기와도 겹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와 같이 극우가 득세하는 상황은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다. 찬반이 맞부딪히는 격렬한 전선에서 양쪽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누가 우세를 점하게 되는지에 따라 정세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극우세력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하거나, ‘정상’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소수라는 관점으로는 극우의 주류화를 막을 수 없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윤석열이 석방될 것이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탄핵 결정이 초읽기를 앞둔 상황에서는 더더욱 앞으로 벌어질 일을 확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극우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거리에 모여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감히 극우가 광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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