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고 회의장을 집단으로 이탈한 1주일 뒤였다. 그 시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집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함께 읽었다는 것이다. ‘집회 발언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재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등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전 집회에서는 선언된 적 없는 약속이었다. 본 집회에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외쳐 온 이야기가 드디어 청자를 만나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모인 10명 중 한 명이라도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겠다 싶어, 마음이 벅차올랐다.
12월22일, 남태령에 갔다. 전날 영하의 날씨에 밤을 새웠다는 친구의 말에, 사람들이 더 모여야 농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발 길이 향했다. 올해 1월15일,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다이인 시위에 참여했다. 새벽수업을 하고 가느라 늦었지만, 다행히 공간의 열기는 남아 있었다. 2월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 참여했다. 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퀴어페미니스트 공간 루땐’에서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2월14일에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진행한 대통령 탄핵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과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30대 비장애인 프리랜서 운동 강사이자, 퀴어 페미니스트인 나는 요즘 이곳저곳 바삐 다닌다. 내 삶과 무관해 보이는 일도 결국 모두 연결돼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연결’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인다.
박경석 대표는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끌려 나갔었는데 오늘은 시민들 덕에 끌려 나오지 않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그간 발언하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탄핵 국면을 맞이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발표한 자료에서 남태령 집회 참가자 찬달은 “저녁 6시에 한강진에서 시민들이 쫙 서 있고, 모세의 기적처럼 트랙터가 줄지어 들어오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돌 출퇴근길 같은 느낌, 트랙터 탄 농민들이 엄지를 치켜들고 들어오시는데 말도 다할 수 없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파면돼야 한다. 마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윤석열 파면은 투쟁의 결과이자, 시작이다. 성소수자가 일하면서 차별이나 혐오에 노출되지 않고, 마음껏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일하고, 뒤섞여 사는 세상을 상상한다. 자본보다 인권이 우선되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잠시 머물러 간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세상을 원한다. 이 모든 꿈이 내 안에 있다.
정체성 정치 담론은 1977년 미국 흑인 레즈비언 단체에 의해 도입된 이후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차별철폐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정체성 정치는 주디스 버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권력에 대한 예속화”를 통해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로 머물게 하며, 사회구조의 변혁이 아니라 사회구조로 포섭되는 것으로 그치게 할 위험도 있다. 아사드 하이더 역시 그의 책 <오인된 정체성>에서 “우리는 분수를 약분하듯이 어느 인간 집단과 그들이 갖고 있는 다수성을 공통의 이해관계로 환원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에 관한 정의”에 불과한 추상적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모두의 해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만의 경험, 정체성, 믿음을 넘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We are rebels in our heart!”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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