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고른 향의 성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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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연(란다)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봄에는 블루벨, 여름에는 연못, 가을에는 오렌지, 겨울에는 낡은 종이인 것은 무엇일까? 제철 음식도, 지역별 축제명도 아니다. 내가 계절별로 주로 쓰는 향수의 향조다. 사람마다 향수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르다. 계절에 따라 바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날의 날씨나 온도에 맞춰 고르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자신과 잘 어울리는 향을 고르지만, 때로는 기존에 갖지 못한 이미지를 나타내고 싶어서 색다른 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목적이든, 향수는 개인이 자신만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도구가 된다. 내가 향수 탐험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성분들은 이런 향이 잘 어울려요. 요즘은 남성적인 향도 많이 찾으시긴 해요.”

향수를 시향하러 매장을 찾았는데 코 대신 귀가 따가웠다. 어려운 외국어로 표기된 향수의 향조를 알고 싶어 물어봤는데, 직원에게서 돌아온 답은 향의 성별이었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돌려 물었다. 저는 기존에 시도해 보지 않은 향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향의 성별 대신 어떤 원료가 주로 쓰였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중성적인 향 찾고 계시는 거예요? 요즘은 중성적인 향이 잘 나가죠!”

여자도 남자도 아니면 중성이 되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중성적인 향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전적 의미를 고려해 보자면 특정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향을 의미할 터였다. 바꿔 생각하면 애초에 향조마다 성별에 따른 기준이 전제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성적인 플로럴 향과 남성적인 우디 향을 밀어내고 떡하니 자리 잡은 중성적인 시트러스 향과 그린 향에서는 어쩐지 떨떠름한 냄새가 났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린 들판에 쓸쓸하게 서 있는 앙상한 나무 향 좋아하세요?”

결국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던 나를 붙잡은 곳이 있었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매장이었다. 향수 전문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진열된 향수가 있었기에 궁금해서 기웃거리던 내게 다가온 직원이 시향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성별 이분법적인 표현이 없는 설명 방식이었다. 심지어 향을 이루고 있는 원재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듣는 사람이 그 향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다듬어진 표현이어서, 감탄하며 물어봤다. 어떻게 전문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다양하게 준비할 수 있었는지를.

해당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제품을 안내하기 위한 교육을 할 때, 고객의 성별이나 나이 등을 언급하지 않고 해당 제품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대답하는 그에게서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적절한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일하는 일터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이에게서 보이는 보람찬 표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들렀던 향수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몇몇 곳은 공식 홈페이지에서조차 성별에 따라 제품을 나누어 뒀다. 상세 설명에도 ‘남성적인’ ‘여성적인’이라는 표현이 곳곳에 등장했다. 내가 매장에서 직원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불편함은 그의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성적’이라는 표현이 실은 누군가가 대안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쓰기 시작한 단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무사로서 노동 현장에서 차별적이거나 혐오 표현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대안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드물었다. 불과 얼마 전에 ‘모성보호제도’라는 단어의 적절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성차별적이니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정도에서 그쳐버린 것도 떠올랐다. 그 표현이 왜 적절하지 않은지, 어떤 방향으로 고민해야 좋을지 더 생각해 보자던 스스로의 다짐도 떠올랐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대안을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그 노력에는 한겨울의 향을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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