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교실을 만드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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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교실의 공기가 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몸짓이 여성스럽거나 목소리 톤이 높으면 “게이 같다” “쟤는 (트랜스)젠더다” 같은 말들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조금 튀거나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는 가차 없이 멸칭이 붙었고, 그 거친 장난의 화살이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성소수자 정체성은 어느 날 완성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다듬어 가는 역동적인 여정이라고들 한다. 특히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사회와 첫 관계를 맺는 10대 시절에 학교와 또래로부터 지지와 수용을 받는 긍정적 경험은 안정된 자아를 형성하는 데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69.0%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통계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배재고 사태 등 교실 안팎에서 혐오 발언 사태가 이슈화되자, 교육부는 학교 현장의 표준적인 ‘혐오·차별 표현 예방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서의 초안을 활용했는데, 해당 초안에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모욕·비하를 금지하고, 아웃팅 예방과 학교의 2차 피해 방지 지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 가이드북 최종안에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통째로 도려내졌다. 검토위원 대다수가 “정부가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며 반발했지만, 교육부는 묵살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이유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비겁했다. “반대 민원 등으로 학교 배포가 부담스럽다는 시·도교육청 입장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 교사들이 마주하는 민원의 압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며 쏟아지는 악성 민원 앞에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립감은 이들의 노동을 위태롭게 만든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민원의 무게를, 국가가 취약한 학생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알리바이’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 민원이 쏟아진다고 해서 지침서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한 교육부의 행태는 최소한의 원칙조차 저버리는 것이며,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된다고 정부가 공식적인 승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육부의 비겁한 행태에 단호하게 맞서며, 성소수자 혐오 대응 지침이 온전히 가이드북에 담기도록 요구해야 한다. 혐오가 심각할수록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껄끄럽고 귀찮은 현실을 간단히 옆으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민원 앞에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가이드북 한 권으로 교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원칙과 기준이 버텨줄 때, 비로소 교실 안에서 부당함에 맞서는 교사와 학생들의 작지만 소중한 실천들이 싹틀 수 있다. 친구가 겪는 괴로움에 함께 분노하고, 멸칭에 같이 맞서 사과를 받아내며, 소수자 곁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 구체적인 연대의 경험. 그러한 일상의 경험들이 하나둘 쌓여갈 때 비로소 교실의 차가운 공기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가 지워버린 가이드북을 되찾아오는 일은, 아이들이 더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을 지켜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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