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의 말 “맞다이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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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기자회견의 새 역사를 쓴 민희진 어도어 대표. 잠들기까지 초 단위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사람 거의 모두와 기자회견 봤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보며 감탄했고, 공감했고, 전율했다. 그래서 겨우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민희진의 기자회견에 관해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분명히 밝힌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에 여성 직장인이 열광하는 이유다. 경영권 탈취 의혹, 멀티레이블 체제 운영구조, K팝 산업의 명과 암, 민희진 개인의 성격과 갑질 논란 등은 그에 대한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길 바란다. 민희진에게 과오가 있다면 책임지면 된다. 솔직히 남성 제작자나 대표들에 관한 숱한 논란에는 이런 논의가 따라오지 않거나, 따라오더라도 가볍게 넘어가기에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기자회견을 보며 느낀 바를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여러 지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두고 (왜인지 성별이 예상되는) 몇몇 반응 때문이다. 파란색 모자에 초록색 줄무늬 맨투맨 차림, “개저씨” “맞다이”를 비롯한 각종 비속어와 욕설 사용, 화를 내고 우는 모습은 공식 석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객관적인 반박이 어려우니 감정에 호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다.

이런 반응은 전혀 새롭지 않다. 분노가 차오르지만 잠 못들 만큼 길길이 날뛸 일은 아니다. 그저 놀랍다. ‘여성은 감정적이야’ ‘여성은 논리적이지 않아’ ‘여성은 공적인 주체가 될 수 없어’라며 ‘잘난’ ‘여자’의 발언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지칠 줄 모르는 시도가 계속 등장하는 사태가 말이다.

민희진 기자회견으로 2021년 하이브 기업설명회가 다시 회자됐다. 당시 기업설명회에 등장한 발표자 12명 모두 남성이었고, 사내·사외이사 역시 전부 남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설명회에서 하이브가 제시한 사업 비전 키워드는 ‘Boundless(경계 없는)’였다. 소비자와 아티스트 상당수가 여성인 산업의 대표주자 회사가 ‘남성천하’라는 사실은 말 그대로 웃펐다(웃기고 슬펐다).

그 남성천하에서 민희진이 풀어놓은 경험들은 어땠나. 기사를 두고 차를 끌지도, 술을 마시지도, 골프를 치지도 않았다. 뭐 같이 일했고, 법인카드로 배달 음식을 먹으며 야근했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 실적을 달성해 인센티브를 받았으나 마이너스 실적을 달성한 임원에게도 인센티브는 돌아갔으며, 남성 대표로부터 “즐거우세요, 즐거우시냐고요”라며 질투 섞인 조롱을 받았다.

기자회견을 보며 손뼉이나 가슴을 친 것은, 민희진과 직종도 업무도 심지어 소득도(!) 다르지만 남성 가부장 세상에서 여성 직장인으로 경험한 바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능력 있어야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 잘해야 하지만 남성들을 위협할 만큼 잘해서는 안 된다. 무시당해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많이 벌어와야 하지만 돈을 들먹이면 안 된다. 이런 모순들로 매일을 엮어온 사람에게 진중함, 논리정연함, 이성적이고 정돈된 모습을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우아한 것들은 약자가 아닌 자, 져 본 적 없는 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

그간 미디어는 여성 집단을 공적 발화자가 될 수 없는, 서로를 적으로 삼아 기싸움 하는, 어려움을 마주치면 ‘아몰랑’을 외치며 회피하는, 현실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모습으로 희화화했다. 얼른 몰려와 돌을 던지라면서. 민희진의 말과 눈물은 사회가 만든 여성 직장인에 관한 프레임에 반기를 들고 재점유했다. 민희진은 울고 욕하면서 남성 중심 조직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며 현 사태와 자기 입장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하게 설명했다.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과 염려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결코 충족할 수 없는 잣대를 들이미는 세상에, 그 잣대를 휘두르며 커다란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여성 직장인들은 이 장면을 상상했고, 바로 이런 모습이 필요했다.

여성은 감정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 술과 골프 없이는 일 못 하고, 동료의 능력과 성과를 조롱하거나 무시하고, 뒤에서 수근거리고,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려는 것이야말로 진정 비이성, 비논리적 행태다. 터무니없는 말들 때문에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을 의심하며 너무 많이, 오래 참았다. 아니라고? “맞다이”로 들어오시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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