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이렇기를

칼럼

▲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새해가 밝았다. 우주의 관점에서 아침과 밤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해 생기는 현상일 뿐이지만, 사람은 해가 뜨고 지는 어떤 날을 ‘새해’라고 부르며 축하한다. 세상이란 참 지독할 때도 있지만 이런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낭만적인 날에는 그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상상을 해야 한다. 저무는 2024년 마지막 해를 바라보며, 떠오를 2025년 첫해를 기다리며 새해에 바라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오늘 광장을 메운 약자의 목소리가 새로운 내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탄핵 정국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등장이 연일 조명됐다. 사실 광장에서의 여성과 소수자는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는 항상 광장에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새로웠던 건 그동안 우리의 자리가 한가운데가 아니었고, 가장자리에 있던 우리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광장에,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있다. 광장에 모인 우리는 탄핵 너머를 상상한다. 대통령을 바꾸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하지 못하던 결혼을 하게 되고, 장애인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지고, 돈보다 사람이 더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는다. 8년 전에도 경험했었다. 우리는 탄핵을 위한 광장에서도, 탄핵으로 여는 새로운 광장에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탄핵 이후 세상은 추운 광장을 지킨 이가 누구였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달은 분노가 치민 한 달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슬픈 한 달이기도 했다. 새해에는 부디 억울하게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사가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죽은 이와 다친 이의 숫자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만큼의 존재가, 역사가, 추억이, 내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슬픔은 애도에 머물러선 안 된다.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가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정확한 진상 규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참사는 이윤보다 생명을 가볍게 여긴 자본, 자본이 허락한 노동 소외, 거기서 이어진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너무나 아프게도 안전의 역사는 피로 쓰여 왔다. 누구의 것이든 피로 쓰이는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서로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하면 좋겠다. 혹독한 나날이 계속되니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투쟁을 지속하려면 지쳐서는 안 된다. 잘 싸우고 싶을수록 일상과 주변을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좌절과 마주쳤을 때 나를 살린 건 어떤 대단한 사건보다는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일, 자리를 양보하는 일, 우연히 마주쳐 반가워하는 일, 기분 좋게 취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는 일, 함께 외치고 노래하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 덕분에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무사히 넘어왔다.

달라서 즐겁고 같아서 기쁘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달라서 짜증나고 틀린 말을 해대면 밉기도 하지만, 즐겁고 기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조금만 상냥할 수 있다면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적이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연설을 곱씹어본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2024년의 마지막과 2025년의 시작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차디찬 공기를 뜨거운 눈물로 가른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절망만 계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밟혀도 꿈틀거리며 삶은 계속된다. 해가 지면 또 새로운 해가 뜨는 것처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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