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랫글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루미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걸그룹 헌트릭스의 팬이 된 직장인입니다. 오늘 출근길에는 글쎄, 헌트릭스와 관련한 영상을 보다가 내릴 역을 지나쳤지 뭐예요. <테이크다운 Take Down>을 들으며 빠른 걸음으로 길을 되돌아오면서 루미님에게 팬레터를 쓰기로 결심했어요. 먼저 좋은 음악을 들려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르는 헌트릭스의 노래를 들으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금빛 찬란한 세상에서 나쁜 놈들은 다 끌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이렇게 펜을 든 건, 루미님의 이야기가 퀴어 노동권 활동을 하며 만나본 직장 내 퀴어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루미님처럼 멋지고 화려한 케이팝 스타에게 동료에게도 말 못 할 정체성 고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답니다. 헌터와 데몬 사이에서 태어나 존재 자체가 실수고, 본모습을 감추라는 말만 듣고 자라온 점이 퀴어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과 너무 닮았어요. 자신이 아닌 척해야지만 이 사회에서 자리를 얻는다는 점이 특히 그랬습니다.
루미님이 몸을 감추기 위해 긴팔만 입고 목욕탕도 가지 못하는 것을 보며 주민등록번호, 화장실, 유니폼, 기숙사 등 자연스럽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 때문에 일자리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드러내지 못하는 것,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동료들과 깊이 친해질 수 없는 벽이 됩니다. 완벽히 일을 해내는 것밖에는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많은 퀴어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동료를 얻고야 맙니다. 루미님이 진우를 만난 것처럼요. 혐오가 정답이 아니란 걸 아는 당신은, 상대를 혐오하는 노래 가사를 바꾸고 파란 호랑이가 전해준 편지를 따라 진우를 만나러 갑니다. “난 네가 실수라고 생각 안 해”라는 진우의 말이 마음을 열게 했고 서로를 함께 구원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커밍아웃은 도전이자 고민거리입니다. 커밍아웃은 이 세계에서 친구와 동료를 얻는 확실한 방법이지만, 때로 실패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모두가 보는 곳에서 원치 않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공개 당하고, 같은 팀 멤버인 미라와 조이마저 “우리 편인 걸 증명하라”고 했을 때 루미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미라와 조이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셀린 앞에서 죽음을 결심한 건 너무 심했어요. 우린 더 이상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아요.
루미님. 많은 팬이 남산에서의 공연을 잊지 못합니다. 악령이 되어가는 팬들을 돌려세운 건 자신에 대한 긍정을 포기하지 않은 루미님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귀마 앞에서 먼저 무대에 올라 노래를 시작하고 미라와 조이가 루미님 곁으로 돌아와 완전체로 화음을 맞출 때, 감추기만 했던 루미님의 문양이 모두 앞에서 무지개로 빛이 났던 건 정말이지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초반에, 세상을 지키는 혼문은 사람들의 연결(Connection)로 완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최근 탄핵 집회의 응원봉 물결에서 정말로 그러한 연결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하고, 서로 연대했으며 새로운 세상에서는 차별이 없어지는 게 가장 먼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름’이 흉이 아닌 자긍심이 되는 날이 곧 올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그런데 악귀 같은 대통령이 물러난 지금도 차별금지법 제정 등 중요한 일이 자꾸만 나중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루미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수치심을 주입하는 악령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끝내 자신을 믿고 긍정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루미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골든 Golden>이 미국 빌보드차트 1위를 했다는 뉴스도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설마 이번 앨범이 끝은 아니겠지요. 다음 활동으로 돌아올 헌트릭스가 기대됩니다. 그때까지 반드시 빛날 거라고 용기를 주는 골든의 가사를 되새기면서 컴백을 기다리겠습니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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