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출근길이 괴로웠다. 단순히 피곤해서는 아니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동성애는 죄악’이라 쓰여 있는 커다란 팻말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지하철 플랫폼을 누볐다. 그저 걸어 다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는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여기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 중에도 분명 이 상황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텐데, 상처받거나 화가 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무엇을? 처음 생각한 해결책은 큰 소리로 되받아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랬다가 싸움이 붙는 건 아닐까? 나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은 그가 갑자기 화를 내며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를 도와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나도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기에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A를, B를, 그리고 C를 돌려봤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은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역무원에게 신고하면 되잖아! 그렇지만 그것도 꺼림칙했다. 제재를 한다면 무슨 이유로 하게 되는 거지? 혐오표현을 한다는 이유로? 혐오표현으로 보기는 할까? 아니면 큰 소리로 떠들어서? 사실 소리로는 그냥 커다란 말소리일 뿐인데. 지하철에서 피케팅이나 서명운동을 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활동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이 될 수 있을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 내용을 보면서였다. 누군가는 ‘가짜뉴스방지법’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입틀막법’이라 부르는 이 법은 ‘불법정보’와 ‘허위조작정보’의 온라인 유통을 제한하는 법으로, 네이버·카카오·디시인사이드·구글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응 의무를 지운다. 불법정보나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이 법과 관련된 논란의 중심은 ‘허위조작정보’지만,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왔다. 유통이 금지되는 ‘불법정보’의 개념에 ‘공공연하게 인종, 국가, 지역,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직접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가 추가된 것이다. 일종의 ‘온라인 혐오표현금지법’이다. 물론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같은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다.
지인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매우 아쉬워했다. 포함되지 않은 것 자체가 이 사회의 자의적인 기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도 문제라 느끼지만, 그렇다고 포함됐다고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별을 선동하는 불법정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플랫폼, 민간 팩트체크 기구, 그리고 법원이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과 같은 관점에서 판단할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들이 차단될 가능성도 높다. 소수의견은 주류 의견에 도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보가 되는 반면, 온갖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지만 사회의 상식처럼 유통되는 내용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쉽다. 페이스북이 페미니즘이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내리는 일이 있었고, 네이버가 동성애 커뮤니티를 ‘이상성애’로 분류하며 검색어에서 제외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차별과 혐오를 뚫고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단, 차별과 혐오를 함께 뚫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행동과 연대가 있다면. 법은 소수자의 편이 아닐 때가 대부분이고, 우리가 믿을 것은 변화를 염원하는 서로의 열망뿐이다. 법은 그런 열망과 행동을 보여줄 때에야 늘 뒤늦게 따라왔다. 만약 지하철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는 시나리오 D를 쓸 것이다. 그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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