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둘째 강아지를 입양했다. 어떻게 보면 작은 도베르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다리가 긴 닥스훈트 같기도 하다. 흔히 도베르만은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닥스훈트는 애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강아지에게 ‘히로’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히로는 먹보, 오줌싸개, 주인바라기, 애교쟁이 등 특정 종의 속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히로는 견종의 모호성을 토대로 히로만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고, 이에 “히로는 퀴어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은 그의 저서 <자연은 퀴어하다>를 통해 “퀴어는 오늘날 문화에서 정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성 및 성별 범주를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탈인가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이 셋 이상인 균류, 까마귀의 동성 동반자 관계, 달팽이와 장어의 간성 몸을 토해 퀴어함을 끊임없이 발견한다. 이러한 다양성으로부터 소위 ‘모순’으로 평가되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참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고 엮여 있어 구별되지 않으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는 특정한 상자나 규정에 순응하라고 강요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특정한 상자나 규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으면 비정상으로 여기고, 틀린 것으로 취급된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라 함은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1일 최소 8시간의 노동을 할 수 있으며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비슷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옆을 둘러보자. 아니,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매일 아침 영양제를 때려 넣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로 출근하며 꾸역꾸역 8시간은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제서야 휴식과 자유를 누린다. 완벽한 노동자, 완벽한 여성, 완벽한 남성 등 특정 상자나 규정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긋나 있다.
이러한 어긋남과 모호성은 위로가 된다. 서로가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틀을 끊임없이 넘어 다니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쩌면 틀 밖에 있는 존재가 나 하나뿐이 아니라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덜 외롭다. 다른 존재들도 나처럼 본인이 완벽하게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불안과 욕망이 우리의 얽힘과 꼬임, 그리고 엮임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살 만해진다.
지난달 이 책으로 퀴어동네에서 책모임을 진행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모두가 이 책의 멋진 부분으로 뽑았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저자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자녀에게 보여준 성교육 영상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둘은 마주보고 서서 섬세한 눈자루로 서로를 탐색하다 첫 접촉에 움찔한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이 감각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 처음에는 멋쩍은 몸수색을 벌이지만 이내 대담하게 상대방의 몸을 더듬는다. 둘은 껍데기를 이용하여 똑바로 서서 하체를 딱 붙인 채 눈자루와 촉수로 서로 어루만진다. 모든 것이 부드럽고 모든 것이 탐색하고 모든 것이 느끼고 미끄러지고 쓰다듬는다. (…) 그는 파트너를 이렇게 대접하고 파트너에게 이렇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의하에, 느리게, 상호적으로, 반응하며, 민감하게. 나도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의 달팽이는 퀴어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느 쪽이 암컷이고 어느 쪽이 수컷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달팽이가 둘 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둘 다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탓에 달팽이의 행동은 더 유연하고 더 무궁무진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 달팽이는 닳아빠진 대본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미끌미끌한 새 악보를 본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그 자체로 완벽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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