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이성애자’ 커밍아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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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소순) 퀴어동네 운영위원

최근에 가장 많이 웃은 날은 친한 친구의 생일파티였다. 파티 제목은 ‘OO이의 보석함 개봉 파티’로, 유튜브 예능 ‘홍석천의 보석함’에서 영감을 받은 듯 싶었다. 파티는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과 함께 친구가 만나온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서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 제목에 맞춰 친구의 보석들은 반짝이는 옷과 소품을 두르고 왔고, 친구가 야심 차게 준비한 각종 게임을 하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후반부 코너 중에는 ‘보석함 성토대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한 사람씩 제시된 여러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순서였다. 어떤 보석은 ‘일탈’을 주제로 고등학생 때 강변에 텐트를 치고 며칠 살았던 일을 이야기했고, 어떤 보석은 ‘K-딸로 받은 차별’을 주제로 아버지만 은수저를 사용하고 무조건 아버지 밥을 제일 먼저 퍼담는 집 문화를 들려줬다. 내가 고른 주제는 ‘나만의 소심한 세상 바꾸는 방법’이었다. 나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대신 ‘애인’이라는 표현 쓰기, ‘여직원’이라는 단어 쓰지 않기 같은 말하기 습관을 소개했고, 보석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세상을 조금 더 ‘퀴어롭게’ 만드는 사소한 방법으로, 나는 가끔 이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다. 커밍아웃을 들은 대부분은 그런 말을 굳이 왜 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성애자 커밍아웃이 낯선 일이기는 하다. 누군가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말하는 장면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 어디선가 ‘올바른 혀의 위치’ 같은 걸 보고 나면 괜히 입 안에 든 혀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성애자라는 커밍아웃을 듣고 나면 ‘이성애’라는 것을 괜히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이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성애도 여러 성적 지향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애는 기본값이다. 이성애자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러한 것 따라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마주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이가 존재한다는 건 상상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성애자 커밍아웃 정도가 있어야 이성애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잠깐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거리낌 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는 건 내가 이성애자이기 때문일 거라고. 만약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나의 커밍아웃이 다른 이의 커밍아웃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성애자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아직 벽장을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과 동지들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이야기 중에 ‘크리킨디’라는 새 이야기가 있다. 크리킨디는 작은 벌새다. 숲에 불이 나 동물들이 앞다퉈 도망가는데, 크리킨디는 도망가지 않고 물을 머금어와 불길에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동물들은 “그런다고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고 비웃었다. 크리킨디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저는 이성애자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겠냐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세상이 이성애라는 하나의 색에서 무지개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계속 이성애자 커밍아웃을 해보려고 한다. 크리킨디의 물 한 방울 같은 사소한 방법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다양한 성적 지향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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