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년간 11번.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숫자다. 본회의 상정조차 된 적이 없으니 폐기된 횟수와 같다. 그렇게 차별금지법이 마르고 닳도록 국회 문턱에서 좌절하는 동안,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중에, 그리고 사회적 합의.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인사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장면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 입장이었다. 그는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종교적 신념으로 차별금지법을 비판할 때 처벌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있다”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입법예고한 이후, 민주당이 18년간 그 사회적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별론으로 하고,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주장이다. 현재까지 폐기된 차별금지법 발의안 11건은 차별행위 그 자체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마치 직장내 괴롭힘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처럼, 차별행위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한 경우에만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즉, 처벌보다는 사회 전반의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차원에 가까운 법이다. 그런데도 김 총리는 “설교하다가 잡혀간다”는 종교계의 과장된 공포 선동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였던 강선우 민주당 의원 역시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회피했다. 소수자와 약자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의 리더 후보가 입장을 유보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마법의 방패 뒤로 숨는 것은 더욱 문제적이다. 갑질 이슈에 묻혔지만,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성평등’ 부서의 장관이 되기에 그의 자질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김민석과 강선우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과거 반동성애 종교현장에 얼굴을 비치며 의견을 피력하거나 함께했던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김 총리는 2023년 기독교 행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에(동성애에) 접하거나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므로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적 시도는 예방돼야 한다”고 주옥같은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강 의원은 2023년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 반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바 있다. 이 정도라면 사회적 합의는 겉치레이고 그들 자체가 적극적인 차별금지법 반대론자에 가깝다. 묻고 싶다. 사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갖는 건 자유지만, 정치인으로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신념을 정책 결정에 개입시키는 것이 정교분리 국가에서 적절한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종교적 신념을 빙자해 차별을 옹호할 권리가 우선하는가? 이들의 존재 자체가 차별금지법이 입법돼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부터 이미 성소수자 권리증진에는 의지 없음을 실토했다. 그는 지난 5월 TV토론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현안이 복잡해 새롭게 논쟁·갈등이 심화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는 “경중선후라는 게 있는데 저는 무겁고 급한 일부터 먼저 하자는 입장”이라며 차별금지법은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겨울, 시민들이 단지 민주당 정부를 세우려고 추위에 덜덜 떨며 광장에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태령의 긴 밤, 사회에서 소외 받는 많은 시민이 농민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들의 발언으로 여러 집회에 활력이 생겼다. 이들에게 빚졌다며 응원봉을 상찬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렇게 혐오자가 인선된 것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나? 민주당과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며, 이들에게 의존하기만 한다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혐오자들 그 자체거나, 혐오자들의 눈치만 보며 방치, 회피하는 제도 정치권만 바라보며 기도를 한다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는 않는다. 결국 이들을 압박하려면 혐오세력보다 훨씬 강력한 찬성여론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성소수자 운동의 힘은 물론이고 더 많은 지지자의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이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혐오에 도전하는 수많은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함께 만나 굳건한 행동으로 결집할 필요가 있다. 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누워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감을 따는 방법은 나무를 흔드는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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