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만난 건 한겨울 어느 날이었다.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데 길을 못 찾겠다고 해, 설명을 거듭하다 안 되겠다 싶어 외투도 잊고 급히 나갔다. 사무실 앞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70대 여성 청소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같이 해고된 동료 두 분과 함께였다. 그들이 난생 처음 노무사를 만나러 온 이유는 남성 관리자의 ‘갑질’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남성 관리자의 고함에 기죽고 겁먹을 만도 한데, 끝까지 대항하다 잘리고 결국 노무사까지 만나러 오다니. 그들의 용기에 내심 감탄했다.
그즈음 나는 ‘아가씨 전화’ 때문에 한참 화가 나 있었다. ‘아가씨 전화’는 나와 상담 전화를 하던 상대방으로부터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이 등장하는 전화 통화를 부르는 나만의 말이다. 내가 ‘아가씨’라고 불리는 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에는 아가씨는 법률 조언을 할 수 없고, 전문적일 수 없으며, 능력이 의심스럽고, 못 미더운 존재고, 그러므로 아가씨는 제대로 된 노무사일 수 없다는 편견이 전제돼있다. 내가 신뢰할만한 전문가인지는 나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면 될 일인데, ‘아가씨’라는 이유 하나로 쉽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조금 부끄럽게도 이들에게는 그러지 못했고, 어느샌가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님’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호칭이다. 어떤 여성을 ‘어머니’ 역할에 가두고, 결혼해 자식을 둔 것으로 획일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연령과 성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차별을 공유한다는 감각 때문에 공감과 친밀함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하고 싶었고, 그러다 나온 것이 ‘어머님’이었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 건 나의 한계다. 셋 중 나에게 전화해 길을 물었던 한 분만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가씨와 어머님은 한 팀이 됐다.
그는 사무실에 자주 찾아왔다. 그가 문자나 카카오톡을 나만큼 쉽게 사용하지 못하며,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기에 대면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서면 초안을 인쇄해 한 문단씩 읽으며 고쳐나갔고, 가끔 화이트보드에 서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주 만나며 우리끼리 쓰는 말도 생겼다. ‘이리 와 아저씨’ ‘소리 지른 남자’ 같은, 그가 이름을 모르는 남성 관리자들을 부르는 별명이 많았다. 나는 그의 일과 일터를 배워나갔다. 직접 청소를 하는 노동자 다수가 고령 여성이지만 관리자는 모두 그보다 나이가 적은 남성이라는 것. 청소하지 않는 남성 관리자를 대접해서 잘 보여야 청소 일에서 잘리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다는 것. 여성 노동자는 나이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쓰였다.
한 번은 임금명세서를 찾으려고 그의 문자 목록을 대신 보다, 우연히 내 번호가 뭐라고 저장됐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무사’라고 저장돼 있었다. 노무사 앞에는 이름 석 자도 없었고, 뒤에는 아가씨도 없었다. 그 건조함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나의 쓰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기 싸움의 대상도 아니고, 당연히 친절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심받지 않아도 되고,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이름도 없이 덜렁 노무사라고 저장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게 고마웠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심문회의 날이 왔다. 긴 시간 끝에 원하는 조건으로 화해해 사건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며칠 후 그가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15개들이 두유, 어느 날은 사과 한 봉지, 어느 날은 1.8 리터 우유. 그날은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흰 봉투와 함께였다. 어떻게 받느냐는 나를 이기고 그는 기어코 봉투를 주고 갔다.
탄핵 선고를 기다리며 지루하고 지난한 날들이 이어지는 시점에 민주주의 회복에 관한 진중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탄핵까지도, 탄핵 이후에도 일상의 투쟁은 이어진다는 생각에 이런 투쟁을, 아가씨와 어머님의 연대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는 새 일터에서 계속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동료들도 좋다고 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도 탄핵에 관심이 많은데, 파면이 결정되면 그가 계모임 할 때 간다는 역 앞 갈비집에서 함께 축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란범과 함께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무시도 같이 사라지면 좋겠다. 아가씨도 어머님도 당당한 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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