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이 퇴사했다. R의 직업은 아주 특별했다. 한국에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R이 유일했다. R의 직업은 퀴어아키비스트였다. 2009년 퀴어락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R은 퀴어락의 유일한 담당자였다. R의 퇴사와 함께 국내 유일의 퀴어 아카이브인 퀴어락은 잠시 ‘봉인’된다고 한다. 퀴어락이 휴업도 폐업도 아닌 ‘봉인’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가늠해 봤다. 휴업이라기에는 퀴어락이 언제 다시 운영을 재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퀴어락의 폐업만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R이 퀴어락 퇴사를 결심한 데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명료한 이유는 퀴어락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퀴어락을 품어 온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지속적인 재정 위기 속에서 상근활동가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고, R 역시 퀴어락과 재단을 지켜 내기 위해 퇴사를 택했다.
내가 R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었다. 한 대중강의 자리에서 만난 R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후 퀴어락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 R과 많이 가까워졌다. R은 나에게 퀴어락 자료의 디지타이징을 맡겼다. 오래된 스캐너로 자료를 스캔하는 일이었다. 자동급지 기능을 사용하거나 스캔 해상도를 낮춘다면 더 많은 자료를 더 빨리 스캔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자료 보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R은 느리더라도 한 장 한 장 선명하게 작업하자고 했다.
퀴어락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지켜본 R의 하루는 쉴 틈 없이 바빴다. R은 기증받거나 직접 발굴한 자료를 꼼꼼하게 살폈다. 사진은 한 장씩 확인하며 직접 모자이크 작업을 했다. 자료의 출처·기증자·생산 시기뿐만 아니라 해당 자료가 만들어진 사회적 맥락과 고유한 의미를 짚어 내고, 다른 기록물과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추적해 등록했다. 등록한 자료를 고유한 분류체계에 따라 라벨링하고, 필요한 경우 복본을 만들거나 디지털화해 백업본을 만들고 백업의 백업을 또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문객을 맞아 소장 기록물에 대해 설명했고, 틈틈이 문의 메일에 답변했다.
퀴어락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기록이 저절로 역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 기록을 모으는 사람, 기록의 의미를 찾는 사람,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또 다른 기록을 만드는 사람. 수많은 사람의 집요하고 애정 어린 노동이 켜켜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퀴어락이 성소수자의 어제와 오늘을 집요하게 기록하며 역사를 쌓아 왔다면,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편견 없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수많은 퀴어 연구와 창작, 소모임을 지원하면서 내일을 열어 왔다. 퀴어락이 지금까지 역사를 쌓아 올 수 있었던 것도 비온뒤무지개재단 덕분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 소중한 토양이 됐다.
하지만 공적 지원 없이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단체가 넉넉하기는 어렵다. 재정 위기는 결국 비온뒤무지개재단에 쉬이 가시지 않을 먹구름을 드리웠고, 퀴어락은 ‘봉인’이라는 절박한 선택을 했다.
하루빨리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먹구름이 걷히고, 그 이름대로 비 온 뒤 무지개가 뜨기를 바란다. 퀴어락의 봉인이 끝나 다시 살아 숨 쉬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비가 온 뒤 더 굳어지는 땅처럼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더 단단한 퀴어 인권운동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단단해진 토대 위에서 퀴어락의 봉인이 해제되고, 퀴어락 서재가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9월5일 [2026 앨라이먼스 특별 프로그램] TEXT OUT에서 퀴어락 봉인전이 열립니다. 퀴어락의 봉인이 아쉬운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비온뒤무지개재단 누리집(https://rainbowfoundation.co.kr/posts/ZktaGxG)을 참고해 주세요.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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