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후 오랜만에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결과지를 읽어보던 중 정신건강 관련 데이터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성소수자 2천495명 중 우울증상 유병률(45.5%)은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상 일반 인구(11.3%)의 4배에 달하고(20대의 경우 7.6배), 자살 생각(39.1%) 및 시도(5.1%) 비율은 일반 인구의 각각 8.5배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수치다. 이 끔찍한 집단적 고통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흔히 ‘정신질환’을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하루 7시간 이상의 숙면, ‘탄단지’가 고루 균형 잡힌 식단, 주 3회 이상 숨이 찰 정도의 운동, 스트레스받지 않기, 정신과 치료 등 일상 속 개인적 관리 방안이 많이 이야기된다. 특히 최근에는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세요” 같은 말을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낙인이 두려워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취지로 이해한다. 여전히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낙인이 살아 있다는 뜻이지만, 공공연히 치료를 권장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과의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정신과에서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 포괄)로 치료받은 환자는 282만명(치매 제외)이었다. 2018년 같은 통계에서는 186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똑같이 치료의 문이 열려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 인권위 조사의 다른 질문에서는 최근 5년간 의료기관에 방문한 성소수자 2천283명 중에서 373명(16.3%)이 부적절한 질문, 진료 거부, 모욕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고, 그중 147명(41.8%)은 정신과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밝혔을 때 이를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교정하려고 하거나 부모에게 ‘아웃팅’하는 의료진이 있었다는 응답들이 나왔다.
병원이나 의사 성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정신질환의 치료 방식은 담당 의사와의 심리 상담이 동반된다. 물론 상담 그 자체가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주로 적절한 약물 처방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질병과 달리 의사와의 원활한 관계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원가족, 또래집단, 학교, 직장에서의 혐오와 차별에 숨 쉬듯 노출된 채 살아가고, 이러한 삶의 역사는 개인의 정신적 이슈에 촘촘히 반영된다. 과연 정체성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고민을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의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사 역시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당사자는 언급을 회피하고 약물 처방을 받거나 아예 정신과 방문을 단념하는 것이 편하다. 이처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신과의 문턱은 유달리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회가 된다면 애초 정신과에 갈 필요 자체가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2024년 10만명당 29.1명, OECD 평균 2배 이상)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정도의 높은 수치라면 자살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마당에 정신질환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위에서 말한 식단, 운동 등의 개인적 관리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린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애초 그러한 개인적 실천들이 지속 가능하게 효과를 보려면 장시간 노동, 직주근접이 불가한 집값과 서울중심주의 문제, 바닥을 치는 노동권 지수 등 삶의 주요 조건을 이루는 문제들이 개선돼야 하고, 이는 현 체제의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일이기에 우아하고 정제된 방식으로는 ‘그냥’ 쟁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 속 ‘개인’으로 자신의 정신적 고통 문제를 다스리자는 것은 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성소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맞닿아 있다면 근본적인 해결책도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와 학교에 가야 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체제 속 ‘정상인’으로 기능하려면 정신과 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한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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