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 들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자리에 앉을 자격이 가장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그 자리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품위·가치관·언변·주변인물 등 모든 면에서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고, 여성가족부가 소멸돼야 한다는 사람이 여성가족부 장관에, ‘불법파업에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면서 노동자 혐오를 일삼던 자가 노동부 장관에 앉았다. 나라를, 여성정책을, 노동정책을 후퇴시키러 온 장관 다음에는 인권을 후퇴시키러 온 인권위원장이 있었다.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에이즈가 확산된다’는 생각을 가진 안창호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인권에 대한 기본적 소양은 고사하고, 가짜뉴스 수준의 억지와 무지함에서 오는 신념을 보면 누구보다 반인권적인 인물로 보였다.
인권위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여당과 대통령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된 이충상, 김용원 위원의 임명부터가 위기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두 상임위원의 인권 침해적인 막말이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두 사람으로 화물연대 진정사건 진행이 막혔고,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표명이 기각됐으며 위원회 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나왔다. 동료 위원들에게 막말을 해대고 위원회를 수개월간 열지 않아 인권위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이충상 위원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심해지자 인권위가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혐오 표현 예방조치를 하라는 의견표명을 하기에 이른 것은 웃지 못할 비극이다.
인권위는 국가의 인권 침해 감시, 정책 조사, 제도에 대한 의견 표명, 구제 등의 역할을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이 나라에서 누가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어떠한 상황인지 외부에 알리며, 인권 침해가 있는 곳에 가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인권위가 ‘살색’이라는 색상 명칭이 차별적이라고 이야기하자 공식명칭이 ‘살구색’이 됐다. 고궁에 입장할 때, 법적 성별과 다른 성별의 한복을 입은 사람의 무료입장을 제한하는 것이 성별 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하자 문화재청이 입장을 바꾸었다. KTX 여승무원들의 불합리한 고용조건은 성차별이고, 노키즈존은 나이 차별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 트랜스젠더 성별을 정정에 수술을 요구하는 것 또한 차별이라고 말해왔다. 인권위 권고가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되는 이들의 상황을 듣고 살피고 의견을 내는 인권위의 존재는 기존의 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 최후의 보루였다. 노동상담을 하면서 어떤 이들에게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인권위를 안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인권위가 지난 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안건을 의결하며 기어이 내란 옹호자 되기를 자처했다.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부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용원 위원이 상정한 안건이었다.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기관이 내란범의 목소리 대변소로 침몰하는 과정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권은 흔히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배우지만 사실 그것은 하늘이나 신을 믿는 것과 같은 믿음에 의할 뿐이며 실상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지 모른다. 이 때문에 공론장에서 끊임없이 평등과 인권을 이야기하고 서로 확인해야 한다. 인권위의 중요한 역할이 그중 하나였다. 앞으로는 윤석열이 불러온 파시즘의 증식을 감시하고 막아야 할 책무가 더해질 것이다.
인권과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인권의 후퇴를 자처한 자들은 그들 우두머리와 함께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전에도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 교훈은 너무 뼈 아프다. 반인권적이고 정치적인 인사가 인권위를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면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부터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의 책무는 인권위가 바로 설 때까지 감시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광장에 나선 이들은 다양성과 평등이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임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인권위의 역할을 요구하고 기대할 권리가 있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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