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이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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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새해가 밝았다. 우주의 관점에서 아침과 밤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해 생기는 현상일 뿐이지만, 사람은 해가 뜨고 지는 어떤 날을 ‘새해’라고 부르며 축하한다. 세상이란 참 지독할 때도 있지만 이런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낭만적인 날에는 그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상상을 해야 한다. 저무는 2024년 마지막 해를 바라보며, 떠오를 2025년 첫해를 기다리며 새해에 바라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오늘 광장을 메운 약자의 목소리가 새로운 내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탄핵 정국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등장이 연일 조명됐다. 사실 광장에서의 여성과 소수자는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는 항상 광장에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새로웠던 건 그동안 우리의 자리가 한가운데가 아니었고, 가장자리에 있던 우리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광장에,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있다. 광장에 모인 우리는 탄핵 너머를 상상한다. 대통령을 바꾸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하지 못하던 결혼을 하게 되고, 장애인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지고, 돈보다 사람이 더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는다. 8년 전에도 경험했었다. 우리는 탄핵을 위한 광장에서도, 탄핵으로 여는 새로운 광장에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탄핵 이후 세상은 추운 광장을 지킨 이가 누구였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달은 분노가 치민 한 달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슬픈 한 달이기도 했다. 새해에는 부디 억울하게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사가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죽은 이와 다친 이의 숫자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만큼의 존재가, 역사가, 추억이, 내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슬픔은 애도에 머물러선 안 된다.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가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정확한 진상 규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참사는 이윤보다 생명을 가볍게 여긴 자본, 자본이 허락한 노동 소외, 거기서 이어진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너무나 아프게도 안전의 역사는 피로 쓰여 왔다. 누구의 것이든 피로 쓰이는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서로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하면 좋겠다. 혹독한 나날이 계속되니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투쟁을 지속하려면 지쳐서는 안 된다. 잘 싸우고 싶을수록 일상과 주변을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좌절과 마주쳤을 때 나를 살린 건 어떤 대단한 사건보다는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일, 자리를 양보하는 일, 우연히 마주쳐 반가워하는 일, 기분 좋게 취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는 일, 함께 외치고 노래하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 덕분에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무사히 넘어왔다.

달라서 즐겁고 같아서 기쁘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달라서 짜증나고 틀린 말을 해대면 밉기도 하지만, 즐겁고 기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조금만 상냥할 수 있다면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적이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연설을 곱씹어본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2024년의 마지막과 2025년의 시작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차디찬 공기를 뜨거운 눈물로 가른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절망만 계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밟혀도 꿈틀거리며 삶은 계속된다. 해가 지면 또 새로운 해가 뜨는 것처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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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가는 길, 탄핵 이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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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윤석열 비상계엄으로 우리는 역사책에서만 봤던 계엄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초래할 끔찍한 가능성을 상상하고 대비하게 됐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의 힘으로 계엄을 해제했고, 우리 삶을 핍박했던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고자 수없이 많은 거리의 행렬로 탄핵안 가결까지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탄핵이 완수된 윤석열 이후의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가 돼야 하는지.

윤석열을 끝장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남은 상황에서, 그 이후의 사회까지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최종적인 파면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가 헌법재판소를 압박해야 하고, 위헌적인 계엄 시도에 대해 윤석열과 계엄 잔당의 죄목을 낱낱이 밝혀 체포 및 처벌을 완수해야 한다. 그것에만 집중해도 벅찬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현 제도는 여러 장벽을 촘촘하게 세워놓아서 대통령이 시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려도, 그를 끌어내리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구조다. 헌법재판관 몇 명이 필요하고, 누구에게 그것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 탄핵 요건에 부합하기 위해 ‘법적’으로, ‘절차적’으로 완비할 것은 무엇인지 거리에 나갔던 벅찬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차분한 척 챙겨야 한다. 다만 진공 속의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구절의 법이어도, 사회 분위기나 힘의 세력 관계, 상황에 따라 적용과 판단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더 많은 시민이 모여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결정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을 거리로 모아내기 위해서라도, 광장은 탄핵 이후의 사회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윤석열이 없어진다고 해서, 윤석열 정권이 탄압했던 평범한 노동자와 소수자의 삶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극단으로 비정상적인 특정 인물을 제거한다고 해서, 차별과 착취를 만드는 자본주의와 한국 사회의 병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시민이 거리로 나올 수 있던 것은 윤석열이 계엄을 시도했다는 예외적인 비상사태를 해소하려는 공감대 때문이지, 윤석열 이후 우리의 삶이 직접 나아지리라는 낙관과 기대감 때문은 아니라는 판단을 감히 해 본다. 국회에서 탄핵이 통과돼 일단 1차 목표가 달성된 마당에, 계엄에 대한 충격만으로 헌재 판결 시까지 그 큰 규모의 집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탄핵 외의 의제를 배제하거나,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수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윤석열이 사라진 한국에서 평범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원하는 바를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는 속 시원한 공간,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돼야 오히려 더 압도적인 힘으로 탄핵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졌나. 불경기에 물가는 폭등하고 주머니는 얇아지는데, 이미 돈 많은 부자의 주머니만 더 두꺼워졌다.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고자 투쟁하는 노조를 깔아뭉개고, 공안 탄압을 자행했다. 아무런 죄 없이 죽음을 맞은 이태원의 청춘들, 채 상병을 기억한다.

평일과 주말에 이어진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는 아주 많은 여성, 소수자들의 깃발과 참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 당장 직면한 의제인 탄핵을 계기로 여기에 모였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의 사람이 모인 집회 공간에서 퀴어 동지들은 무지개 깃발 아래 모여 존재를 가시화했다. ‘모두의 결혼’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등 우리의 이야기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탄핵 이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감정을 잠시나마 느꼈다. 탄핵 시국에 평범한 노동자와 소수자의 삶에 맞닿아 있는 의제들이 분출되기를,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로 거리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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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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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 퀴어동네 운영위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모든 차별이 금지됐으며 많은 소수자들의 삶이 조금 나아진 가까운 미래다. 산전수전 다 겪은 120세 주인공 여성이 ‘그녀’의 팬클럽 미팅에 갔다가 혐오세력이 일으킨 폭탄 테러에 휩쓸려 큰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지팡이를 잃어버리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간병로봇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주인공은 영상에 달린 4억개의 댓글 중에 테러범의 단서를 찾아내 결국 테러범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3년 만에 다시 열린 ‘그녀’의 팬클럽 미팅 현장, ‘그녀’는 보안정책을 위해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 낸 가상의 모습, 개개인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괴물의 형상을 보고, 누군가는 둥근 얼굴의 부드러운 여성을 본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그녀를 만나다>의 줄거리다. 소설, 특히 SF 소설을 좋아한다. 정보라 작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분홍색, 하늘색, 흰색 줄에 눈 감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표지였다. ‘트랜스 플래그와 비슷하네’라고 생각은 했지만, 퀴어가 등장하는 소설인 줄은 몰랐다. 단편 소설집은 늘 제목이 끌리는 순서로 읽곤 하는데, ‘그녀를 만나다’라는 제목이 끌려 먼저 읽기 시작했고, 눈물이 났다. ‘그녀’는 변희수였다.

2020년 1월, 한 군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강제전역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변희수 하사는 이에 불복해 전역 결정을 다시 심사해 달라고 육군에 인사소청을 제기한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를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비슷한 시기 한 여대에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논란이 됐고, 당사자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꿈을 응원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1년 2월, 변희수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무지개 행동에서는 지하철 2호선에서 성소수자 관련 책을 함께 읽는 추모 행동을 했다. 합정역에서 <퀴어이론 산책하기>라는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탔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내가 내는 소리였을지도. 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다> 중

올해 첫눈이 온다. ‘겨울이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때 들고 있었던 책의 무게, 손 시림, 지하철을 기다리던 조마조마함,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흐느낌, 슬픔, 분노, 무기력함, 기어이 살아내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뒤섞인 채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당시 퀴어동네 주민들과 함께 책모임을 진행하며 변희수 하사의 일에 분노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맥락은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감정은 생생하다. 2024년 11월25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군 내에서 모든 트랜스젠더 군인을 추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같은해 11월16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ㄷ여대 학생들은 채용에서 걸러 내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존재하고, 이러한 차별은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위협적이다. “우리 모두 서로 힘내도록 합니다. 죽지 맙시다. 물론 저조차도 이게 매우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죽기에는 우리 둘 다 너무 어리잖아요?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변희수 하사와 숙대 합격생이 서로에게 쓴 손편지 전문, 한겨레, 2020. 3. 17.)

그녀를 만나고 싶다. 눈을 감고 120살이 된 날 상상한다. 잊지 않고 아등바등 살아내 세상이 바뀌는 걸 꼭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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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음악과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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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어릴 때 다니던 큰 교회는 매년 여름이 되면 수천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3박4일 수련회를 했다. 90년대 초반 그해의 주제는 바로 사탄의 음악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초중학생 수천명을 앞에 놓고 강연하던 그 목사의 요지는 이랬다. 사탄이 대중문화에 속속들이 침투해 청소년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탄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알려주겠다면서 대형 스피커로 노래를 차례로 틀어줬다. 한 곡 한 곡 소개될 때마다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매일 TV에서 듣고 따라 부르던 마가렛트 과자 광고 음악이 사탄의 음악이라고? 비틀스의 ‘옐로우 서브마린’이 마약을 상징하는 은어였다니! 메탈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클잭슨·조지윈스턴·퀸 등 웬만한 외국 노래 중 사탄을 찬양하는 음악이 아닌 게 없었다. 사실 음악에만 국한한 것도 아니었다. 외계인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도 사타니즘이고,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커스도 사타니즘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에게 인기 있을수록 더욱 강한 사탄인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추천 도서 <사탄은 마침내 대중음악을 택했습니다>를 탐독했다. 그 후로 더 이상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없게 됐다. 당시 얼굴이 뽀얗던 시절의 신해철에 빠져 있었는데, 사탄의 상징이라고 했던 피스마크 목걸이를 그의 앨범 표지에서 발견하고는 울면서 테이프를 휴지통에 처박았다. 독서실에서 라디오를 듣다 영어로 된 노래가 나오면 무서워서 껐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최고 아이돌이었지만 앨범을 거꾸로 돌리면 “피가 고파”가 나온다는 노래를 듣기에는 간이 작았다. 그래도 순진했던 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아 교회와는 곧 멀어졌고 대학에 들어가서 뒤늦게 록 음악에 빠졌다. 이 멋진 음악들을 몰랐던 사춘기가 진심으로 한스러웠다. 청소년기에 록 음악을 계속 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반항적이고 멋진 사람이 됐을 것만 같았다. 21세기 들어서도 개신교 혐오세력은 레이디 가가 콘서트 반대 기도회를 열어 물의를 일으키는 등 한동안 대중문화와 싸웠지만 지금은 시들해진 것 같다.

대신 ‘가정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무너뜨리는’ 공포의 대상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으로 옮겨갔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기에 ‘사탄에 물든 대중음악’처럼 거짓말로 쌓은 공포를 주입한다. 개신교 혐오론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독재법’이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동성애가 독재하게 되고, 학교에서는 동성 간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에이즈 치료 때문에 국가 의료재정이 파탄 나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와 목사는 처벌받게 된다. 90년대는 대중문화에 대한 음모론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구체적인 존재들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해악이 더 커졌다. 차별금지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인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평등한 세상은 필히 지금보다 무서운 세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공포를 느껴야 하는 건, 매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추모해야 할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이다. 평생을 반려로 살아도 법률혼이 허락되지 않아 반려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죽음이 버젓이 있다는 것이다. 인종·성정체성·성적지향 등으로 직장에서 밀려나 삶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이동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는 것, 남녀로 나뉜 화장실을 가지 못하거나 휠체어로 이동이 힘들어서 집에 갇힌 사람들의 현실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못한 기간인 18년째 그대로라는 것. 이런 것들이 진정한 공포다. 평등으로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차별을 금지하면 차별이 줄어들고 동성혼을 법제화하면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식을 가진 사람만이 민주시민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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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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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어린 시절, 기독교인이 아니던 부모님이 그저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나를 유치원 대신 선교원에 보낸 이후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는 찬양팀도 하고, 청년부 회장도 하고, 유치부 선생님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장년부 예배에서 동성애 전환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충격에 휩싸여 목사님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저 ‘사회의 유해함에 물든’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주 청년부 예배의 설교 주제는 ‘다양성이라는 듣기 좋은 말에 흔들리는 믿음 없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나를 향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예배 내용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목사님의 설교를 고개를 끄덕이며 열중해 듣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혼자인 것만 같았다. 15년 넘게 다니며 나의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던 곳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에는 완전히 떠나왔다. 어쨌든 그곳은 나의 직장은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나 자아실현을 위해 꼭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다른 교회에 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으니까. 벌써 8년쯤 전의 일이다.

며칠 전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퀴어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출교된 이동환 목사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최근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결정을 했다는 참담한 소식을 전했다. 2년 전 감리회는 목사가 되려면 반동성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변화는 있었다. 2년 전에는 그러한 결정에 반대를 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2명의 목사가 반대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동환 목사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2년 뒤에는 2명이 목소리를 낸 것처럼, 다시 2년 뒤에는 20명이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2022년 교회재판에서 정직 2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3월에는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감리회에서 아예 나가라는 출교처분까지 받았다. 현재 법원에서는 두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법원은 출교무효확인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교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일단은 감리교 신자 자격을 회복하고 목사로 복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고,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는 점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8월 법원은 정직 처분에 대해서는 각하 판결을 했다. 정직 기간 2년이 이미 만료돼 소송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익이 없다는 점 외에도, 교단의 종교적 자율권 보장을 위해 교단 내부의 일이 사법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징계의 근거 규정인 감리교 재판법 3조8항(동성애 찬성·동조 행위 처벌규정)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종교적 집회·결사 자유의 실현을 위해 종교단체의 운영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종교가 사회에서 동떨어진 것일까.

이동환 목사는 “항소할 것이고, 기어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 했다.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도, 연대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삶터이자 일터인 곳에서 쫓겨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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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장은 모두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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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3~4명만이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해 6월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한국 사회가 여성·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안전한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37.6%만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성별에 따라 동의 비율이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의 ‘동의함’ 비율은 25.7%에 불과하지만, 남성은 49.4%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 것이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우리 사회를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비교적 강자일수록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사회 전반에서 직장으로 좁혀 보자. 최근 퀴어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장생활 경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수집할 기회가 있었다.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 경험을 물었을 때, 많은 수가 미세 차별(Microaggression, 먼지처럼 미세하고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은 경험했으나 “직접적인 차별은 당한 적 없다”라고 답했다. 다들 차별 없는 평등한 직장에 다니기 때문일까. 아니다.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임을 이유로 공격받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직종에 따른 차이는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려준 퀴어노동자 중 여럿은 지금 직장에서 커밍아웃할 수 없다고 했다. 성소수자 차별 발언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적극 나서지 못했다고 말한 이들도 꽤 있었는데, 아웃팅(성 정체성에 대해 본인 동의 없이 타인이 공개하는 행위)에 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지적하더라도 바뀔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가족이나 애인에 관해 대화할 때 동료들이 자신과는 대화하지 않는 경험을 풀어놓기도 했고, 어떤 이는 파트너와 결혼하더라도 축하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퀴어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한 점으로 모인다. 직장은 안전하지 않고, 그래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직 중 하나인 직장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애초에 사회가 안전하지 않기에, 직장도 안전하지 않다. 더해 직장에서는 위계가 작동하고, 직장과 생계가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안전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직장인지’를 물었을 때 동의 비율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과 차이를 보일까? 슬프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에서 통용되는 문화는 대부분 비-퀴어 중심적이고, 비-퀴어 당사자인 다수가 내 옆에 퀴어 동료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오가는 발언이나 제도에 대해 성차별을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 직장은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직장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일부는 직장을 선택할 때 특정 종교와 연관되거나, 남초 직장이라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근로조건보다 안전한 환경인지 따지는 게 더 우선이라는 뜻이다. 마치 여성들이 비교적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현관에 CCTV가 있고, 저층이 아니며, 밤 길이 너무 어둡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집을 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특정 종교나 남초 직장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직장이 너무 많은 바람에, 안전하지 않은 직장을 피하기 위해 오로지 불확실성에 기초한 개인의 판단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모든 직장이 안전하다면 안전한 직장을 거르기 위한 노력은 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사회적 약자일수록 자신이 속한 곳의 안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약자에게 안전한 곳은 모두에게 안전하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퀴어노동자에게 안전한 직장은 모두에게 안전한 직장이다.

이쯤에서 퀴어노동자에게 안전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짚어보자.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처우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만들거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하거나, 법·제도로 보장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것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게 제일 효과적일지, 어떤 걸 가장 먼저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방법은 몰라도 ‘여기 퀴어노동자인 내가 있음’을 인식하게 만드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와 내가 경험한 직장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곳인지 고민해 본다면, 그 결과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무엇이 안전을 위협하는지 돌이켜보면 좋겠다. 언젠가 그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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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성소수자 활동가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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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얼마 전, 동료 성소수자 활동가의 부고를 들었다. 기껏해야 대화를 몇 번 나눈 사이였고, 그의 삶을 옆자리에서 다독일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그래도 활동이 겹쳐 오가며 근황을 접했고, 집회와 기자회견에서 하는 발언을 들으며 응원했기에 충격이었다. 고인은 삶의 마지막 바로 전날에도 소셜미디어(브런치)에 글을 남겨 많은 이에게 트랜스젠더의 앨라이(ally)가 돼 달라 촉구했다. 그가 남긴 글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소수자였고,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겐 내가 최초의 트랜스젠더였다. (…) 주변에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돌아보고 살핌으로써 외롭게 혼자 두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감히 고인의 삶과 죽음에 섣불리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를 향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인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애써 용감해지고자 노력하지만, 삶 내내 지난하게 버텼을 고독과 울분의 깊이를, 그 부당함을 곱씹어본다. 성 정체성, 성적지향을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에서 어떤 이는 몸부림치며 살아남지만 때때로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성소수자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일터에서 노동하며 일상의 생존투쟁을 수행한다.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일상적인 거짓말로 정신적 긴장도가 높고, 미세차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직장내 인간관계나 조직몰입도, 경력경로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높다. 하물며 성소수자가 아닌 노동자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 소외를 겪고 착취당하며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는데, 성소수자는 본인의 정체성이 페널티가 되기 쉬운 일터에서 밥 벌어 먹고살기 위해 생존을 위협하는 이중, 삼중의 장벽과 싸워야 한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 당사자는 성별표현과 다른 주민번호 등의 인적사항이나, 지정성별과 다른 옷차림, 외모 등으로 일터의 문턱조차 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7.3%가 이 같은 이유로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로서 삶을 잘 꾸려가려면 일터에 진입하는 것부터가 필수 관문이다. 그런데 업무와 무관하고, 본인 능력으로 바꿀 수도 없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노동자는 일터 진입부터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더더욱 생존의 문제이며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인권이 밥 먹여준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한국교회총연합과의 면담에서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에 대해 “먹고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라며 “사회적인 대화, 타협이 충분히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는 처참한 인식을 보였다.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주체로서 거대정당의 지도자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에 나날이 늘어가는 찬성 여론에 발맞추지 못하는 낡고 무능력한 행태다.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가 별도로 있고,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그와 분리하며 시간이 날 때 논의해도 상관없는 것, 덜 중요한 것으로 축소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삶을 너무 모르고 하는 무식한 말이다. 얼마나 더 많은 성소수자가 삶을 포기해야 성소수자의 인권이 ‘먹고사는’ 문제가 될까.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고인이 마지막 글, 마지막 문단에 남긴 문장이 가슴을 때렸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모여서 투쟁하며 살아간다면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고인의 뜻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부디 평안을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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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을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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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 공인노무사(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운영위원)
▲ 한울 공인노무사(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운영위원)

 

토요일 오전, 업무와 관련한 미팅이 있었다.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앞으로 계속 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1번. “하, 남자친구요? 어제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요?”
100퍼센트 진실이었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기도 하다.

2번. “하. 어제 헤어졌는데요?”
절반 정도 진실이려나. 아님 100퍼센트 거짓말일지도.

3번. “아니요. 남자친구 없어요”
어쩌면 진실… 100퍼센트 거짓말은 아니니깐.

“예? 아, 아니요. 남자친구요? 없어요. (이게 가장 적절한 대답이 맞을걸요?)”라고 대답했다. 거짓도, 진실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었다. 미팅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3번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앞으로의 관계도 망치지 않는 가장 적절한 답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답답했다. 얘기하고 싶었다. 오전에 무례한 질문을 받았고, 순간 너무 화가 나고, 슬프고, 당황스러웠으며,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동시에 펼쳐졌다고. 홧김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이야기했다가 사람들이 날 피하고, 대표 귀에 들어가서 잘리고, 업계에서 매장되는 상상을 했다고. 너희들조차 내 편이 안 돼줘서 정말 혼자라고 느껴졌고,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냥 입을 다물고 이도 저도 아닌 아무 말이나 해버렸다고. 그런데 말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일하면서 한 번도 커밍아웃을 해본 적이 없다.

커밍아웃(coming out)은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커밍아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갇히고, 새로운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어떤 때에는 벽장 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하면서 계속 반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2021년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자료’ 따르면 88.2%의 성소수자가 평생 누군가에게 한 번 이상 커밍아웃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때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본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가장 꺼려하며, 13.2%의 성소수자만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한 경험이 있었다. 10명 중 8명의 성소수자 노동자는 다시 벽장에 갇힌 채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받아요”

“상사가 결혼에 대한 훈계를 하거나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할 때 ‘아주 멋지고 예쁜 여자친구가 있거든요!”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너무 답답해요.“

“(젠더퀴어*인 나를) 당연히 여자라고 전제하고 이야기할 때 불편해요.”

세상은 여전히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가 지배한다. 우리가 속한 일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직장 내 화장실은 대부분 두 개의 성별로 구별돼 있고, 일상적으로 특정한 젠더 표현을 강요받고,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친분을 쌓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존재가 지워지거나, 거짓말쟁이가 된다. 어느 날은 ‘그래, 먹고사는 게 다 이렇지. 남들도 다 힘들게 돈 벌겠지’하며 적당히 넘어가진다. 근데 어떤 날에는 견딜 수 없게 화가 나고, 슬프고,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일하면서는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인 나’와 ‘퀴어인 나’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꾹, 입을 닫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무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친한 동료들과 함께 욕하고 싶고, 애인이랑 헤어진 다음 날 주말에 일을 하는 게 너무 슬프다며 위로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깐 직장 동료와 친한 친구가 되지는 않더라도, 완벽한 타인으로만 지내고 싶지는 않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확인하고, 함께 일하고 싶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직장에 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성소수자 인권 교육, 차별 구제제도 마련, 평등한 복지 혜택 이런 것이 아니라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다.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61.6%의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에 대한 구제절차나 기구 존재(49.5%), 직장 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교육프로그램(36.9%), 나의 파트에 대한 사내 복지 적용(27.4%) 순이다.>>

누구에게라도 커밍아웃할 수 있다면, 그게 단 한 사람일지라도, 조금은 숨이 편해질 것 같다. 주말에 친한 동료를 집에 초대했다. 집은 당연하게도 퀴어동네 포스터와 각종 무지개들로 꾸며져 있는 내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할 계획이다.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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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구분에서 벗어난 그 밖의 성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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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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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 (퀴어동네)

내가 태어난 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의 시대였다.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양복 입고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는 장면으로 ‘4인 정상가족’의 모습이 홍보됐다. 아빠는 양복이 아닌 작업복으로 출퇴근했으며 갑자기 늦둥이가 등장했고 명절에 가끔 싸움이 나던 우리집은 TV에서 보던 다정한 ‘모범가족’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원 말고도 아버지들의 직업은 무척 다양하고 가족의 모습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내 동생보다 더 어린 늦둥이가 있는 친구, 딸 부잣집 막내, 외동이라 동생이 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 엄마랑 단둘이 사는 친구, 할머니 손에 자란 친구, 이사를 자주 다니는 친구, 아픈 가족이 있는 집 등 실제 삶의 모습과 사연들을 알게 되며 조금씩 어른이 됐다.

원가족에서 독립할 나이를 지나자 ‘누가 누구와 사는가’에 대한 주변의 모습은 더 다채로워졌다. 남녀가 함께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결혼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는, 3명이 함께 사는, 부부간 국적이 다른, 모녀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성 파트너와, 비혼 자매끼리,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고 가족관계도 부모와 자식이 절연한 집이 있는가 하면 형제자매가 매일 안부를 나눌 정도로 살가운 집도 있고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의 범위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그중에서 명절은 ‘가족과 함께’라는 강력한 구호처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제도로 기능한다. 이성 법률혼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체계와 성별 이분법을 바탕으로 큰딸, 장남, 사위,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이모 등 각자의 역할을 전 국민이 어느 때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는 날이다.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들조차 예외는 없다. 내가 함께 살기로 선택한 사람과 헤어져 추석 선물을 들고 각자의 ‘정상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송편을 잘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에서부터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니” 같은 차별과 배제의 밥상을 묵묵히 감내하고 돌아오면 연휴 마지막쯤, 동거하는 파트너나 같은 처지의 ‘비정상’ 친구들과 만나 진짜 명절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명절 식사를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이처럼 배제되고 감추어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나 혈연과 무관한 비친족끼리 함께 사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 수치에 증가 속도도 무척 빨라지고 있다. 반면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비율은 가파르게 감소해서 이제 3~4인 가구보다 1인 가구의 수가 더 많아졌다. 국민의 70%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2020, 여성가족부 ‘가족 다양성 국민인식조사’)

퀴어의 가족이야기, 특히 커밍아웃 경험담을 들으면 ‘누가 누구와 사는가’에 대한 문제는 비단 성소수자나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에게 더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자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힘들어 자식과 불화하거나 절연하고, 자식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지도 못한 채 평생 내 자식이 불행할 거라고 믿으며 늙어가는 부모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가족의 커밍아웃에 환대로 답한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봐 주고, 명절을 함께 나눌 사람이 더 많아지고 관계가 더욱 풍성해질 텐데 말이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사위가 여자라니!”는 십수 년 전 등장한 혐오의 구호였다. 이제 바뀐 시대에 필요한 것은 (퀴어문화축제에 등장한 어떤 구호처럼) “여자 사위? 너무 기대됨, 남자 며느리? 오히려 좋아!”라는 태도다. 다양한 관계를, 서로 다름을 가족 안에, 내 주변에, 직장에, 내 삶에 받아들이자. 이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정상가족 틀에 억압된 채 ‘누구와 함께 늙어가고 의지하며 누구를 돌보며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해방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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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네 칼리프, 그녀에 대한 논란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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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가장 화제가 됐던 것 중의 하나는 금메달을 딴 알제리의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의 성별이다. 16강전 상대였던 이탈리아 선수 안젤라 카리니가 46초 만에 경기를 포기하며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러 매체들이 ‘XY염색체’ ‘남성 염색체’ 등의 표현으로 칼리프를 다뤘고, 유명인사들은 칼리프를 ‘남성’으로 칭하며 출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칼리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성확정)한 트랜스젠더 선수라고 오인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칼리프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바 없고, 성전환(성확정)을 한 적도 없다. 출생시 지정성별 여성으로서 여성으로 살면서 여성 대회에 출전해 온 선수다.

칼리프가 XY염색체를 보유한 간성(intersex, 태어날 때부터 생식기, 성호르몬, 염색체 구조 등이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국제복싱협회(IBA)가 지난해 칼리프에 세계선수권대회 실격 처분을 내리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IBA는 누가, 무슨 검사로, 무엇을 측정했는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다. 오로지 우마르 크레믈레프 IBA 회장이 “칼리프는 XY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것이 전부다. BBC와 AP에 따르면 IBA가 실시한 검사가 염색체 검사인지, 테스토스테론 수치 검사인지 회장과 사무총장의 말이 엇갈리기도 했다.

칼리프의 XY염색체 보유 여부나 테스토스테론 수치,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칼리프의 참가 자격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전제부터가 틀렸다. 다만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 고민해야 할 점을 남겨 준다. 어느 여성 선수가 사실 XY염색체를 보유하거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간성으로 밝혀진다면, 다른 여성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은 불공정한가. 공정한 경쟁은 어떤 조건 위에서 가능할까.

XY염색체나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여성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련 연구가 있기는 했지만 신빙성이 문제됐다. 참고로 XY염색체를 보유했다는 칼리프도 이제껏 치른 모든 경기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않았다. 2020년에 출전한 도쿄 올림픽에서는 8강에 그쳤을 뿐이다.

경기력에 다소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신체적 이점을 ‘타고난 재능’으로 볼 것인지, ‘참가 배제 사유’로 삼을 것인지는 판단해야 할 문제다.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일반인에 비해 손목과 발목·팔꿈치에 관절이 하나 더 있는 이중 관절을 가지고 있어 더 유연하게 관절을 움직일 수 있다고 알려졌다.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조건도 수영에 유리하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젖산이 반 이하로만 쌓이는 것도 운동선수로서 엄청난 이점이다. 그러나 펠프스의 신체적 이점은 그저 축복받은 것으로 여겨졌을 뿐, 불공정한 조건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간성으로 밝혀진 여성 선수와 그렇지 않은 여성 선수 사이의 신체 능력 차이는 평균적인 여성 선수들의 개인차보다 클 수도 있지만 작을 수도 있다. 그것이 겨뤄 볼 만한 차이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른다.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선수를 그저 운동장 밖으로 내쫓기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공정한 경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규제해 왔거나 규제하지 않았던 여러 조건들을 다시 살펴보고 새롭게 재구성할 때 가능할 수 있다.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제3의 성’을 위한 별도의 리그는 답이 될 수 없다. 성별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서 스포츠의 장에서 의미 있는 경쟁과 성평등을 어떻게 이뤄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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