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성소수자 활동가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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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얼마 전, 동료 성소수자 활동가의 부고를 들었다. 기껏해야 대화를 몇 번 나눈 사이였고, 그의 삶을 옆자리에서 다독일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그래도 활동이 겹쳐 오가며 근황을 접했고, 집회와 기자회견에서 하는 발언을 들으며 응원했기에 충격이었다. 고인은 삶의 마지막 바로 전날에도 소셜미디어(브런치)에 글을 남겨 많은 이에게 트랜스젠더의 앨라이(ally)가 돼 달라 촉구했다. 그가 남긴 글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소수자였고,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겐 내가 최초의 트랜스젠더였다. (…) 주변에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돌아보고 살핌으로써 외롭게 혼자 두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감히 고인의 삶과 죽음에 섣불리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를 향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인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애써 용감해지고자 노력하지만, 삶 내내 지난하게 버텼을 고독과 울분의 깊이를, 그 부당함을 곱씹어본다. 성 정체성, 성적지향을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에서 어떤 이는 몸부림치며 살아남지만 때때로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성소수자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일터에서 노동하며 일상의 생존투쟁을 수행한다.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일상적인 거짓말로 정신적 긴장도가 높고, 미세차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직장내 인간관계나 조직몰입도, 경력경로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높다. 하물며 성소수자가 아닌 노동자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 소외를 겪고 착취당하며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는데, 성소수자는 본인의 정체성이 페널티가 되기 쉬운 일터에서 밥 벌어 먹고살기 위해 생존을 위협하는 이중, 삼중의 장벽과 싸워야 한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 당사자는 성별표현과 다른 주민번호 등의 인적사항이나, 지정성별과 다른 옷차림, 외모 등으로 일터의 문턱조차 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7.3%가 이 같은 이유로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로서 삶을 잘 꾸려가려면 일터에 진입하는 것부터가 필수 관문이다. 그런데 업무와 무관하고, 본인 능력으로 바꿀 수도 없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노동자는 일터 진입부터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더더욱 생존의 문제이며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인권이 밥 먹여준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한국교회총연합과의 면담에서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에 대해 “먹고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라며 “사회적인 대화, 타협이 충분히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는 처참한 인식을 보였다.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주체로서 거대정당의 지도자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동성혼 및 차별금지법에 나날이 늘어가는 찬성 여론에 발맞추지 못하는 낡고 무능력한 행태다. 먹고사는 ‘중요한’ 문제가 별도로 있고,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그와 분리하며 시간이 날 때 논의해도 상관없는 것, 덜 중요한 것으로 축소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삶을 너무 모르고 하는 무식한 말이다. 얼마나 더 많은 성소수자가 삶을 포기해야 성소수자의 인권이 ‘먹고사는’ 문제가 될까.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함께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고인이 마지막 글, 마지막 문단에 남긴 문장이 가슴을 때렸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모여서 투쟁하며 살아간다면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고인의 뜻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부디 평안을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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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을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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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 공인노무사(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운영위원)
▲ 한울 공인노무사(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운영위원)

 

토요일 오전, 업무와 관련한 미팅이 있었다.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앞으로 계속 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1번. “하, 남자친구요? 어제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요?”
100퍼센트 진실이었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기도 하다.

2번. “하. 어제 헤어졌는데요?”
절반 정도 진실이려나. 아님 100퍼센트 거짓말일지도.

3번. “아니요. 남자친구 없어요”
어쩌면 진실… 100퍼센트 거짓말은 아니니깐.

“예? 아, 아니요. 남자친구요? 없어요. (이게 가장 적절한 대답이 맞을걸요?)”라고 대답했다. 거짓도, 진실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었다. 미팅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3번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앞으로의 관계도 망치지 않는 가장 적절한 답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답답했다. 얘기하고 싶었다. 오전에 무례한 질문을 받았고, 순간 너무 화가 나고, 슬프고, 당황스러웠으며,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동시에 펼쳐졌다고. 홧김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이야기했다가 사람들이 날 피하고, 대표 귀에 들어가서 잘리고, 업계에서 매장되는 상상을 했다고. 너희들조차 내 편이 안 돼줘서 정말 혼자라고 느껴졌고,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냥 입을 다물고 이도 저도 아닌 아무 말이나 해버렸다고. 그런데 말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일하면서 한 번도 커밍아웃을 해본 적이 없다.

커밍아웃(coming out)은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커밍아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갇히고, 새로운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어떤 때에는 벽장 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하면서 계속 반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2021년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자료’ 따르면 88.2%의 성소수자가 평생 누군가에게 한 번 이상 커밍아웃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때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본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 가장 꺼려하며, 13.2%의 성소수자만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한 경험이 있었다. 10명 중 8명의 성소수자 노동자는 다시 벽장에 갇힌 채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받아요”

“상사가 결혼에 대한 훈계를 하거나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할 때 ‘아주 멋지고 예쁜 여자친구가 있거든요!”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너무 답답해요.“

“(젠더퀴어*인 나를) 당연히 여자라고 전제하고 이야기할 때 불편해요.”

세상은 여전히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가 지배한다. 우리가 속한 일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직장 내 화장실은 대부분 두 개의 성별로 구별돼 있고, 일상적으로 특정한 젠더 표현을 강요받고, 이성애자임을 전제로 친분을 쌓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존재가 지워지거나, 거짓말쟁이가 된다. 어느 날은 ‘그래, 먹고사는 게 다 이렇지. 남들도 다 힘들게 돈 벌겠지’하며 적당히 넘어가진다. 근데 어떤 날에는 견딜 수 없게 화가 나고, 슬프고,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일하면서는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인 나’와 ‘퀴어인 나’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꾹, 입을 닫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무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친한 동료들과 함께 욕하고 싶고, 애인이랑 헤어진 다음 날 주말에 일을 하는 게 너무 슬프다며 위로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깐 직장 동료와 친한 친구가 되지는 않더라도, 완벽한 타인으로만 지내고 싶지는 않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확인하고, 함께 일하고 싶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직장에 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성소수자 인권 교육, 차별 구제제도 마련, 평등한 복지 혜택 이런 것이 아니라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다.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61.6%의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에 대한 구제절차나 기구 존재(49.5%), 직장 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교육프로그램(36.9%), 나의 파트에 대한 사내 복지 적용(27.4%) 순이다.>>

누구에게라도 커밍아웃할 수 있다면, 그게 단 한 사람일지라도, 조금은 숨이 편해질 것 같다. 주말에 친한 동료를 집에 초대했다. 집은 당연하게도 퀴어동네 포스터와 각종 무지개들로 꾸며져 있는 내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할 계획이다.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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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구분에서 벗어난 그 밖의 성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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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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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 (퀴어동네)

내가 태어난 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의 시대였다.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양복 입고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는 장면으로 ‘4인 정상가족’의 모습이 홍보됐다. 아빠는 양복이 아닌 작업복으로 출퇴근했으며 갑자기 늦둥이가 등장했고 명절에 가끔 싸움이 나던 우리집은 TV에서 보던 다정한 ‘모범가족’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회사원 말고도 아버지들의 직업은 무척 다양하고 가족의 모습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내 동생보다 더 어린 늦둥이가 있는 친구, 딸 부잣집 막내, 외동이라 동생이 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 엄마랑 단둘이 사는 친구, 할머니 손에 자란 친구, 이사를 자주 다니는 친구, 아픈 가족이 있는 집 등 실제 삶의 모습과 사연들을 알게 되며 조금씩 어른이 됐다.

원가족에서 독립할 나이를 지나자 ‘누가 누구와 사는가’에 대한 주변의 모습은 더 다채로워졌다. 남녀가 함께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결혼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는, 3명이 함께 사는, 부부간 국적이 다른, 모녀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성 파트너와, 비혼 자매끼리,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고 가족관계도 부모와 자식이 절연한 집이 있는가 하면 형제자매가 매일 안부를 나눌 정도로 살가운 집도 있고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의 범위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그중에서 명절은 ‘가족과 함께’라는 강력한 구호처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제도로 기능한다. 이성 법률혼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체계와 성별 이분법을 바탕으로 큰딸, 장남, 사위,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이모 등 각자의 역할을 전 국민이 어느 때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는 날이다.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들조차 예외는 없다. 내가 함께 살기로 선택한 사람과 헤어져 추석 선물을 들고 각자의 ‘정상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송편을 잘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에서부터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니” 같은 차별과 배제의 밥상을 묵묵히 감내하고 돌아오면 연휴 마지막쯤, 동거하는 파트너나 같은 처지의 ‘비정상’ 친구들과 만나 진짜 명절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명절 식사를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이처럼 배제되고 감추어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나 혈연과 무관한 비친족끼리 함께 사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 수치에 증가 속도도 무척 빨라지고 있다. 반면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비율은 가파르게 감소해서 이제 3~4인 가구보다 1인 가구의 수가 더 많아졌다. 국민의 70%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2020, 여성가족부 ‘가족 다양성 국민인식조사’)

퀴어의 가족이야기, 특히 커밍아웃 경험담을 들으면 ‘누가 누구와 사는가’에 대한 문제는 비단 성소수자나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에게 더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자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힘들어 자식과 불화하거나 절연하고, 자식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지도 못한 채 평생 내 자식이 불행할 거라고 믿으며 늙어가는 부모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가족의 커밍아웃에 환대로 답한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봐 주고, 명절을 함께 나눌 사람이 더 많아지고 관계가 더욱 풍성해질 텐데 말이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사위가 여자라니!”는 십수 년 전 등장한 혐오의 구호였다. 이제 바뀐 시대에 필요한 것은 (퀴어문화축제에 등장한 어떤 구호처럼) “여자 사위? 너무 기대됨, 남자 며느리? 오히려 좋아!”라는 태도다. 다양한 관계를, 서로 다름을 가족 안에, 내 주변에, 직장에, 내 삶에 받아들이자. 이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정상가족 틀에 억압된 채 ‘누구와 함께 늙어가고 의지하며 누구를 돌보며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해방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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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네 칼리프, 그녀에 대한 논란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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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가장 화제가 됐던 것 중의 하나는 금메달을 딴 알제리의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의 성별이다. 16강전 상대였던 이탈리아 선수 안젤라 카리니가 46초 만에 경기를 포기하며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러 매체들이 ‘XY염색체’ ‘남성 염색체’ 등의 표현으로 칼리프를 다뤘고, 유명인사들은 칼리프를 ‘남성’으로 칭하며 출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칼리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성확정)한 트랜스젠더 선수라고 오인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칼리프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바 없고, 성전환(성확정)을 한 적도 없다. 출생시 지정성별 여성으로서 여성으로 살면서 여성 대회에 출전해 온 선수다.

칼리프가 XY염색체를 보유한 간성(intersex, 태어날 때부터 생식기, 성호르몬, 염색체 구조 등이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국제복싱협회(IBA)가 지난해 칼리프에 세계선수권대회 실격 처분을 내리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IBA는 누가, 무슨 검사로, 무엇을 측정했는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다. 오로지 우마르 크레믈레프 IBA 회장이 “칼리프는 XY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것이 전부다. BBC와 AP에 따르면 IBA가 실시한 검사가 염색체 검사인지, 테스토스테론 수치 검사인지 회장과 사무총장의 말이 엇갈리기도 했다.

칼리프의 XY염색체 보유 여부나 테스토스테론 수치,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칼리프의 참가 자격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전제부터가 틀렸다. 다만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 고민해야 할 점을 남겨 준다. 어느 여성 선수가 사실 XY염색체를 보유하거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간성으로 밝혀진다면, 다른 여성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은 불공정한가. 공정한 경쟁은 어떤 조건 위에서 가능할까.

XY염색체나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여성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련 연구가 있기는 했지만 신빙성이 문제됐다. 참고로 XY염색체를 보유했다는 칼리프도 이제껏 치른 모든 경기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않았다. 2020년에 출전한 도쿄 올림픽에서는 8강에 그쳤을 뿐이다.

경기력에 다소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신체적 이점을 ‘타고난 재능’으로 볼 것인지, ‘참가 배제 사유’로 삼을 것인지는 판단해야 할 문제다.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일반인에 비해 손목과 발목·팔꿈치에 관절이 하나 더 있는 이중 관절을 가지고 있어 더 유연하게 관절을 움직일 수 있다고 알려졌다.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조건도 수영에 유리하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젖산이 반 이하로만 쌓이는 것도 운동선수로서 엄청난 이점이다. 그러나 펠프스의 신체적 이점은 그저 축복받은 것으로 여겨졌을 뿐, 불공정한 조건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간성으로 밝혀진 여성 선수와 그렇지 않은 여성 선수 사이의 신체 능력 차이는 평균적인 여성 선수들의 개인차보다 클 수도 있지만 작을 수도 있다. 그것이 겨뤄 볼 만한 차이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른다.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선수를 그저 운동장 밖으로 내쫓기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공정한 경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규제해 왔거나 규제하지 않았던 여러 조건들을 다시 살펴보고 새롭게 재구성할 때 가능할 수 있다.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제3의 성’을 위한 별도의 리그는 답이 될 수 없다. 성별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서 스포츠의 장에서 의미 있는 경쟁과 성평등을 어떻게 이뤄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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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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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다 갑작스레 그치기가 예측할 수 없이 반복되던 회색의 어느 날. 무지갯빛 우산 사이로 “사랑이 이겼다”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7월18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다시 말해 대법원 판결을 통해 동성 동반자의 권리가 최초로 인정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2017년부터 동거를 시작해 2019년 결혼한 동성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면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해 2020년 2월 다른 한 사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자격을 취득했다. 그해 10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은 피부양자 등록이 ‘착오 처리’였다며 피부양자 자격을 소급해 상실시키고 지역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변경했다. 이유는 ‘피부양자 인정요건 미충족’, 즉 동성 부부(동반자)는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는 ‘사실상 혼인 관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부부는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등을 납입하라는 공단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2년 1심은 부부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 중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자면, 두 사람의 성별이 같기에 사실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부는 항소했고 2심이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재판부는 공단의 처분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자의적 차별”에 해당한다며 1심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공단이 불복해 상고심이 이어졌다.

그리고 7월18일, 대법원이 두 사람은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반자고,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해 마침내 두 사람의 결합이 제도적으로 인정됐다.

판결문에서 전원합의체 판단 이유와 다수의견도 좋았지만, 다수의견에 대한 김상환 대법관과 오경미 대법관의 보충의견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울린 문장에 밑줄을 그으라면 거의 전부에 그었을 것 같다. 내용 전체를 소개하고 싶지만, 보충의견의 마지막 부분만 옮긴다. 보충의견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인용하며 천사 미하일이 지상에서 인간으로 있는 동안 만난 쌍둥이 자매를 예시로 들었다. 쌍둥이 자매가 각기 성적 지향에 따라 한 사람은 이성 동반자를, 한 사람은 동성 동반자를 선택했다. 그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은 천사 미하일의 눈에는 자신을 거둬 준 세묜 부부의 가정공동체나 쌍둥이 자매가 각기 이룬 동반자 관계 모두 애정을 바탕으로 한 가정공동체로서 보호 가치가 다르지 않게 보일 것이라고 두 대법관은 설명했다.

신이 천사 미하엘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중 마지막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대법원이 인정한 것은 서로를 살게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단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 보게 하고, 아끼고 보살피게 하며, 결국 서로를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보충의견이 밝혔듯, 천사 미하엘의 눈에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하는 이들의 성별이 같은지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감히 어떤 사랑은 인정하고 어떤 사랑은 배제하겠다고 하면 천사 미하엘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느냐며 탄식할 것이다. 편견과 차별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랑’을, 결합을 결단하게 한 ‘사랑’을,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을 차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한 착각이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공적으로도 평등해야만 한다.

김용민·소성욱 부부의 승리를 온 마음 다해 축하한다. 승소 소식을 듣고 “해냈다”라고 소리 낼 만큼 기뻤다. 두 사람의 도전 덕분에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같이 사는 사람의 눈에도, 생판 모르는 타인의 눈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비치는 세상이 곧 올 거라는 희망이 샘솟는다. 더불어 이번 판결이 있기까지 가까이 또는 멀리에서, 보이지 않는 곳과 보이는 곳에서 응원과 힘을 보태 준 많은 이들이 있었다. 탄원을 보내고, 재판을 방청하고, 유튜브 선고 생중계를 시청하며 실시간 채팅방에 무지개 깃발 물결을 일으킨 모든 사람이 사랑이 이기는 결과를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간을 만날 때면 평등한 세상이 생각보다 멀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 판결로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한 발을 또 내디딘다. 걸음마다 사랑으로,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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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해방은 체제 향한 도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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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퀴어자긍심의 달, 6월을 지나 7월에도 대전퀴어문화축제(1회)와 제주퀴어프라이드(5회)가 개최됐다. 비서울 지역에서도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니 6년 전 동인천 북광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8년 9월8일,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있었던 많은 동지에게 그 기억은 혐오세력의 집단적 린치와 혐오범죄, 그리고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날의 폭력사태는 이전에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와닿지 않았거나, 와닿았더라도 혼자만 겪었던 사실을 집단이 함께 경험하게 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바로 성소수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혐오와 폭력이 이토록 극심하다는 것, 국가는 이를 방치하는 공범이라는 것,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는 단결하고 연대해서 더 크고 선명한 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사실이다. 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 당일 진행요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내 머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동인천역까지 5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경찰과 혐오세력의 봉쇄로 3~4시간에 걸쳐 행진하는 동안, 굴다리 밑에서 “우리는 여기에 있다”를 함께 외치던 순간이다. 혐오세력의 폭력보다, 그 폭력에 맞서 함께했던 친구들과 이름 모를 동지들의 단결감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선명한 기억은 계속해서 나를 행동하게 만들고, 다른 집회들에 연대하도록 하고, 활동가의 정체성을 소환하도록 했다. 퀴어문화축제의 상징성이 있기에 그만큼 혐오세력의 격렬한 조직이 있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 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모순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맞닥뜨리면서도, 그에 맞섰던 우리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있던 퀴어들은 축제에 모여 ‘우리’가 된다. 우리가 퀴어문화축제에 모여서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저항과 도전의 의미를 띠고 있다.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군중으로 모여 사회에 힘과 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회적 분위기나 지역, 규모에 따라 축제의 형식과 강조점이 달라져도, 그 본질은 축제를 통해 우리가 한곳에 모이면 수천, 수만 명이 될 만큼 힘이 강하고, 일상에서는 용기낼 수 없던 말과 행동을 할 만큼 당당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에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를 향한 도전과 함께한다. 억압적인 일상(저쪽)과 해방구로서 달콤한 하룻밤의 축제(이쪽). 두 가지 시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축제에서 경험한 정치적 자신감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꿔낼 상상력을 가져가는 것이 축제의 진정한 의미다. 특히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경우, 우리는 상징성(대표), 공간성(서울 시내), 규모(15만명의 참가)의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이 정치적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퀴어문화축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더욱 정치적이여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축제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 상업화, 탈정치화의 방향을 “선택”해 왔다. 행진 차량의 발언으로 참가자를 정치적으로 고무하기보다 케이팝을 트는 활동으로 획일화한 것, 참가자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구획화된 부스와 차량을 축제의 소비자로서 선택하고, 개인적 경험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것,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목숨을 저당 잡고 팔아치우는 초국적 제약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온 것이 그렇다. 특히 2024년은 팔레스타인 학살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임에도 조직위는 학살 공모자인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과 파트너십을 맺어 미국의 핑크워싱에 사실상 공조했다. 길리어드의 행진 차량을 또다시 선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축제를 향한 국가의 차별과 억압이 여전히 공고하고,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 거대한 축제를 운영하는 조직위의 헌신과 고충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에 질식돼, 축제를 감시하는 외부자들이 정치적으로 불편하지 않게, 참가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충실하게 적응하는 모범퀴어로 표백되는, 즉 별생각 없이 적당히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많은 변화의 잠재력을 삭제하고 있는지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사람이 오게 하려면 재밌고, 활기차게 축제를 꾸미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서 대중의 시선을 염두에 두면서 축제의 외형을 기획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의 참가자들을 꼭 그 기획의 자본주의적 ‘소비자’ 정도로 수동화시키는 것은 지나친 과소평가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은 클럽에서도 가능하고, 부스에 들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플리마켓에서도 가능하다. 왜 꼭 퀴어문화축제여야 하는가. 억눌린 소수자들이 서울 시내의 도로 한복판을 점령하고, 전복적 경험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긍심은 축제 참가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퀴어퍼레이드 취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외부 기관에 자긍심을 외주화하고, 춤을 추고,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는 자긍심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대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한국 사회에 맞선 집단적인 커밍아웃에서 시작했다. 체제와 불화하는 불순분자들이 모여 존재를 지우지 말라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2024년 우리는 여전히 억압받는 불순분자다. 퀴어문화축제의 시작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이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해방되는 데 필요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 요구가 관철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상상하고,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저항일수록 힘이 강하다.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행동의 장으로서, 저항의 공간으로서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만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축제 직전 발표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의 일부를 공유한다.

“퀴어의 연대는 단순히 성소수자들끼리의 연대를 넘어서 다양한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중략) 퀴어는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해 왔으며, 앞으로도 연대할 것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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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탄생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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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쁨 법무사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얼마 전 내 책상이 유난히 노동법 책으로 어지러웠던 날이다. 집에 손님이 왔다. 함께 식사를 마친 손님은 재미있는 이야기, 이른바 ‘잼얘’를 기대하는 얼굴로 노동법 책을 가리키며 물었다.

“노동법이 뭐죠?”

이윽고 적막이 흐르니 손님은 질문을 바꿨다.

“노동법은 어떤 학문이죠?”

안 그래도 나는 노동법이 낯설다. 노동법을 공부할 때면, 민법이나 헌법을 들여다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이날따라 노동법이 자아내는 매캐함이 뚜렷이 느껴져서 이를 두고 차마 어떤 학문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대신 손님에게 노동법의 탄생 배경을 늘어놓으며 노동법이 무엇인지 같이 생각해 보기를 제안했다. 노동법은 그 기원이 비교적 명확하다. 기원전이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노동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19세기 영국에서 제정된 공장법이나, 독일에서 제정된 사회보험법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유지라는 목적과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근대의 인류는 산업화를 통해 전례 없는 속도의 발전을 이루며 잔혹한 경쟁사회를 맞이했다. 무한한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은 높은 생산성을 목숨으로 지탱하던 노동자들의 재생산까지 집어삼켰다. 이렇게 위태로워진 사회 속에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을 위해 고안된 것이 노동법이다. 그러니 이를 두고 단순히 학문이라고 할 수 없고,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고대 학자 이름을 빌려 그럴싸한 한 줄 정의를 내놓기에도 구색이 맞지 않는다. 노동법은 산업혁명기 공장 기름과 소년공의 땀을 거름 삼아 탄생했고, 지금껏 매연과 분진을 마시며 자라왔을 뿐이다. 인간사회의 보편타당한 도덕률이나 천부적 가치를 천명하기 위한 자연법이랑은 그 태생이 다르다. 쓸모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는 거창한 철학이나 정의에 도달하려는 진리 탐구 대신 노사갈등의 효율적인 봉합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이론축적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래서 노동법은 그 젊은 나이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바쁘게 제공해 왔다. 수많은 아동노동자들을 탄광에서 건져내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임금을 지켜주며, 노동자들이 자치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 줬다. 그러나 이런 면모만을 보고 노동법이 오로지 노동자들의 권익과 삶의 질만을 위해 신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탄생 배경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손에 죽창 대신 작업 도구가 계속 붙들려 있기를 원하는 자본가들의 안심과 영달에도 이바지했으리라.

“그래서 노동법은 톱니바퀴의 윤활유 같은 거예요. 양피지에 쓰인 학문 같은 이미지는 아니죠.”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들은 손님은 잠시 뒤 질문을 이었다.

“그럼 노동법은 역할을 다하면 필요가 없어지게 되나요?”

이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해본 적 있는 생각이었다. “만약 모두가 노동자인 세상이라면, 노동이 두렵지 않은 세상이라면 노동법은 필요하지 않겠죠.”

“차별금지법하고 똑같네요? 차별이 없는 세상이라면, 차별금지법 만들겠다고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을 테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아직 있지도 않다는 게 문제지요.”

나는 손님에게 차별금지법 얘기도 하나 해 줬다. 미국에서는 2019년에 전국적으로 동성결혼이 허용되었지만, 차별금지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주가 많다. 이런 주에서는 성소수자 노동자가 동성배우자와 결혼은 할 수 있었을지언정 동성결혼을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소수자 노동자에게는 차별금지법도 노동법의 일종이군요?”

손님과 나는 시선을 노동법 책으로 다시 옮기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노동법도 차별금지법도 절실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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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가기 전에 당신이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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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달력에는 많은 기념일이 있다. 노동자로 시작해 어린이, 어버이, 스승, 성년, 부부까지 기념해야 하는, 이른바 ‘정상가족’의 달 5월을 지나 6월이 되면 바야흐로 ‘비정상’들의 축제가 펼쳐지는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 시작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미국에서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1969년 6월, 경찰이 성소수자들의 아지트였던 뉴욕의 주점 스톤월을 급습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성소수자들은 이에 맞섰고 차별에 대한 항쟁이 이어졌다. 이를 기념해 이듬해 같은 날 미국 최초의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이제 매년 6월이 되면 전 세계 각 도시에서 성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와 ‘자긍심의 행진’(Pride Parade)과 축제를 펼친다.

성소수자 해방은 아직 멀었지만, 이때만큼은 많은 도시가 자긍심에 화답한다. 런던·뉴욕·토론토·방콕·도쿄…. 세계 각국의 거리에는 한 달 내내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이 걸리고 시장은 프라이드 행진에 나와 사람들과 인증사진을 찍고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디즈니·레고·코카콜라·나이키 등 수많은 기업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마케팅 이벤트로 소비를 자극하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치앙마이 철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무지개로 옷을 바꿔 입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는 자긍심의 달 축하 메시지는커녕 축제를 위한 광장조차 쉽게 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최근 10여 년간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7월의 폭염 속에서 진행된 것도 그 덕분이다. 올해는 운 좋게도 6월에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개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을지로와 남대문·종로 등 서울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대대적인 퍼레이드에도 행진 대오 외에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무지개를 보기는 힘들었다. 무려 15만 명이 한날한시에 모여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행진했건만, 이 도시는 올해도 있는 힘껏 두 눈을 꾹 감고 모른척했다.

어찌하랴. 아무리 존재를 지우려 해도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며 굴하지 않는 긍정의 힘이야말로 축제가 계속돼 온 힘이고 역사였다. ‘동성애는 죄’라며 면전에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고 그들 신의 가르침을 되돌려주고, 서로를 축복하고 부둥켜안고 춤을 추며 행진을 이어 왔다. “당신 자식이 동성애자여도 괜찮냐?” “며느리가 남자라니” 같은 오래된 혐오의 수사는 “응 내 자식 퀴어~” “여자 사위? 너무 기대됨, 남자 며느리? 오히려 좋아!” 같은 피켓 문구 속 퀴어의 해학으로 무력화된다. 이 지독하고 눈물겨운 긍정과 전복의 힘은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며 살아갈 힘을 준다.

그러나 광장에서 돌아가 각자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힘을 이어 가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게 있다. 바로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동료의 존재다. 한 사람의 작은 지지가 일터의 공기를 바꿀 수 있다. 책상에 무지개 손깃발 꽂아 놓기, 성소수자 관련 배지나 버튼을 가방에 달기, 혼인평등법이나 차별금지법 등에 지지 발언 하기, ‘남친’이나 ‘여친’ 같은 말은 버리고 성중립적인 표현 사용하도록 노력해 보기. 어떤가? 어렵지 않다.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나 책을 보고 자신의 경험과 사고의 폭을 넓혀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노동조합원이라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나 성별 이분법적인 유니폼·시설에 대해 동료들과 토론하고, 권한이 있는 인사담당자라면 동성 결혼에도 경조휴가를 부여하고 채용공고에 ‘채용 과정에서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명시하는 것을 추진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평등의 결과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온다. 성소수자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일터는 당신이 질병이나 재산·학력·건강·이혼이나 결혼 여부, 가족 형태 등으로 어떠한 개성을 가졌든 낙인에서 더 안심할 수 있는 직장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작은 지지와 변화에 용기를 내보자. 6월이 가기 전에.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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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모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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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1990년 5월17일 국제질병분류를 개정하며 “동성애”를 정신장애 부문에서 삭제하고 ‘성적 지향만으로는 장애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명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인권시민사회단체가 공동행동단을 꾸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는 집회와 캠페인 등을 한다. 퀴어동네도 당일 저녁 집회가 열린 보신각에 모였다.

올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법과 제도에 반영할 것(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동성결혼 법제화·생활동반자법 제정·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 제정·성소수자 인구 통계 파악 및 실태조사) △성소수자의 존재를 범죄화하지 말 것(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 폐지·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유지하는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성소수자의 권리를 교육할 것(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교육환경과 교육과정 마련·‘전환치료 및 탈동성애’ 금지) △성소수자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보수개신교와의 결탁을 중단하고, 정교분리 원칙에 따른 의정활동에 충실히 임할 것을 요구했다.

보다시피 요구사항 대부분은 국회를 향한 것이다. 누군가는 혹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국회에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하면 국회의원들에게 이야기하면 되지, 거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집회의 규모가 커지고 다른 ‘시민’들에게 더 많은 ‘불편’을 끼칠수록 이런 의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집회가 중요한 이유는 일단 그런 적극적인 행동이 결정권자들에게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이는 데는 품이 드는데, 이를 감수하고 거리에 모여 함께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온라인상에 모인 여론보다 훨씬 큰 압력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으로 그런 힘을 보여줄 때 결정권자들이 변화를 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알 만한 사례를 언급하자면, 몇 년 전 국회의원들과 재판관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게 만든 것은 분명 거대한 규모의 촛불집회다.)

집회는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신만의 삶터와 일터에서 뿔뿔이 흩어져 많은 것들을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던 개개인들은, 집회의 인파 속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한다. 자신과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 동일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개인은 자신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확신과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주디스 버틀러는 저서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민이 거리에 대규모로 운집할 때 여기서 드러나는 분명한 함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여전히 여기에, 여전히 거기에 머무르고 지속할 것이며, 집회를 통해 그들 모두가 놓인 상황을 공유하고 있음을 천명하거나 혹은 그런 상황을 함께 깨닫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중략) 한데 모인 신체들은 “우리는 폐기 가능한 이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우리는 끈질기게 버티면서, 보다 큰 정의와 불안정성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살 만한 삶에 대한 가능성을 요구하면서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함께라면 다르다. 변화는 우리 내부에서부터 일어나서, 결국 우리의 삶터 곳곳에 번질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보다 큰 정의와 불안정성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살 만한 삶에 대한 가능성을 요구하자. 고민하는 그대, 거리에서 만나자.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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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의 말 “맞다이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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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기자회견의 새 역사를 쓴 민희진 어도어 대표. 잠들기까지 초 단위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사람 거의 모두와 기자회견 봤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보며 감탄했고, 공감했고, 전율했다. 그래서 겨우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민희진의 기자회견에 관해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분명히 밝힌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에 여성 직장인이 열광하는 이유다. 경영권 탈취 의혹, 멀티레이블 체제 운영구조, K팝 산업의 명과 암, 민희진 개인의 성격과 갑질 논란 등은 그에 대한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길 바란다. 민희진에게 과오가 있다면 책임지면 된다. 솔직히 남성 제작자나 대표들에 관한 숱한 논란에는 이런 논의가 따라오지 않거나, 따라오더라도 가볍게 넘어가기에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기자회견을 보며 느낀 바를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여러 지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두고 (왜인지 성별이 예상되는) 몇몇 반응 때문이다. 파란색 모자에 초록색 줄무늬 맨투맨 차림, “개저씨” “맞다이”를 비롯한 각종 비속어와 욕설 사용, 화를 내고 우는 모습은 공식 석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객관적인 반박이 어려우니 감정에 호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다.

이런 반응은 전혀 새롭지 않다. 분노가 차오르지만 잠 못들 만큼 길길이 날뛸 일은 아니다. 그저 놀랍다. ‘여성은 감정적이야’ ‘여성은 논리적이지 않아’ ‘여성은 공적인 주체가 될 수 없어’라며 ‘잘난’ ‘여자’의 발언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지칠 줄 모르는 시도가 계속 등장하는 사태가 말이다.

민희진 기자회견으로 2021년 하이브 기업설명회가 다시 회자됐다. 당시 기업설명회에 등장한 발표자 12명 모두 남성이었고, 사내·사외이사 역시 전부 남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설명회에서 하이브가 제시한 사업 비전 키워드는 ‘Boundless(경계 없는)’였다. 소비자와 아티스트 상당수가 여성인 산업의 대표주자 회사가 ‘남성천하’라는 사실은 말 그대로 웃펐다(웃기고 슬펐다).

그 남성천하에서 민희진이 풀어놓은 경험들은 어땠나. 기사를 두고 차를 끌지도, 술을 마시지도, 골프를 치지도 않았다. 뭐 같이 일했고, 법인카드로 배달 음식을 먹으며 야근했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 실적을 달성해 인센티브를 받았으나 마이너스 실적을 달성한 임원에게도 인센티브는 돌아갔으며, 남성 대표로부터 “즐거우세요, 즐거우시냐고요”라며 질투 섞인 조롱을 받았다.

기자회견을 보며 손뼉이나 가슴을 친 것은, 민희진과 직종도 업무도 심지어 소득도(!) 다르지만 남성 가부장 세상에서 여성 직장인으로 경험한 바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능력 있어야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 잘해야 하지만 남성들을 위협할 만큼 잘해서는 안 된다. 무시당해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 많이 벌어와야 하지만 돈을 들먹이면 안 된다. 이런 모순들로 매일을 엮어온 사람에게 진중함, 논리정연함, 이성적이고 정돈된 모습을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우아한 것들은 약자가 아닌 자, 져 본 적 없는 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

그간 미디어는 여성 집단을 공적 발화자가 될 수 없는, 서로를 적으로 삼아 기싸움 하는, 어려움을 마주치면 ‘아몰랑’을 외치며 회피하는, 현실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모습으로 희화화했다. 얼른 몰려와 돌을 던지라면서. 민희진의 말과 눈물은 사회가 만든 여성 직장인에 관한 프레임에 반기를 들고 재점유했다. 민희진은 울고 욕하면서 남성 중심 조직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며 현 사태와 자기 입장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하게 설명했다.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과 염려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결코 충족할 수 없는 잣대를 들이미는 세상에, 그 잣대를 휘두르며 커다란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여성 직장인들은 이 장면을 상상했고, 바로 이런 모습이 필요했다.

여성은 감정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 술과 골프 없이는 일 못 하고, 동료의 능력과 성과를 조롱하거나 무시하고, 뒤에서 수근거리고,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려는 것이야말로 진정 비이성, 비논리적 행태다. 터무니없는 말들 때문에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을 의심하며 너무 많이, 오래 참았다. 아니라고? “맞다이”로 들어오시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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