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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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연(란다) 공인노무사

남해안에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군집로봇 제로스가 있다고 한다. 해파리는 주로 여름 바닷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취수관을 막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다. 제로스는 해파리를 구석으로 몰아 빨아들인 다음 찢어발긴다. 해파리 조각들은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바다의 바닥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둠이 당연한 세상이다. 우주보다 더 멀고 더 새카만 곳이다. 그곳엔 잘린 해파리 조각이 쌓이고 1만년이 넘은 고래뼈가 네 번째 고래낙하를 하고 있다. 인간은 열수분출공이 뿜어내는 뜨거운 물과 가스를 피해 바닥에 빛을 비춘다. 인간은 어둠뿐인 줄 알았던 세상을 들여다보다 놀라고 만다.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여름이 거꾸로 펼쳐진다. 우리 모두가 삶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가 죽기를 거부한다.’

나는 제로스에게서 우리나라의 법과 정치를 본다. 제로스는 해파리가 왜 갑자기 남해안을 뒤덮었는지, 공존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할 뿐이다.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퀴어를 지워 버리고, 광장을 밤새 지킨 여성을 차별막 뒤로 미루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를 방치하듯이.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노키즈존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길에서 지우듯이. 그렇게 이 사회의 모든 차별과 혐오는 사라진다.

일단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눈앞에서 해파리가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다시 물놀이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찾은 바다는 언뜻 보기엔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빛은 바다로 깊이 스미지 못한다. 바다의 바닥엔 갈기갈기 찢긴 것들이 쌓이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희생자, 열사 등의 이름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슬픔으로 쌓인다.

‘빛은 무엇을 원할까? 더 많은 자기편? 맞다. 맞고, 또한 어둠을 뒤흔들고 싶다는 마음.’

수면의 빛은 심해 어디쯤 멈추지만, 끝내 바닥을 찾아 가는 빛이 있다. 지난 6개월간, 아니 그 이전부터 광장과 길바닥을 제집처럼 지켜야 했던 이들이 보낸 조그만 잠수정이 켜 놓은 빛이다. 그렇게 새카만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는 다시 태어난다.

모든 조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심과 애정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 같던 조각들에서조차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무도한 정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마음이 이어져 연대와 지지가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켰듯이, 장애인들을 경찰에게서 지키고, 내 안의 편견을 부수고 차별금지법을 외쳤듯이. 3년 만에 주어진 투표용지에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눌러 담았듯이.

6월3일, 눈을 뜨자마자 투표장으로 달려가 간절한 마음으로 한 표를 찍었다. 콩하고 찍는 동작이 경쾌하고 쉬워서, 마치 지난 6개월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가벼운 마음 같아서 잠시 멈춰서 투표용지를 바라봤다. 이전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일만 잘하는 정부이기 이전에, 소외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탄생한 정부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하기를 바랐다.

광장이 밝힌 빛은 어디까지 깊이 스밀 수 있는가. 빛이라곤 스미지 않던 바다의 바닥까지 관심과 애정이 드리울 수 있을까. 그리해 암흑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투쟁을 이어 오던 이들에게 마침내 일상을 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광장에서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고 바란다.

-인용문구 출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사브리나 임블러 지음, 김명남 옮김, 아르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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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내상과 상상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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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빛별) 노무사(퀴어동네 회원)

2025년 4월30일,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모모에서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씁쓸하게도 퀴어 행사에 장소 대관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아트하우스모모라는 것은 다소 놀라웠다. 아트하우스모모는 작년에도 한국퀴어영화제가 진행된 곳이고, 꼭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상업 영화관에서는 찾기 어려운 퀴어 영화를 자주 상영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영주체인 영화사 백두대간은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자신들의 대표업적으로 퀴어 영화인 <브로크백 마운틴> 수입·배급을 적고 있다(심지어 이를 ‘주옥같은 걸작’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모모는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나.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

뻔하게도, 이번에도 보수 개신교의 이름으로 이뤄진 혐오세력의 항의와 민원이 핑계였다. 이들은 한국퀴어영화제가 이화여대의 창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기에 “어린 학생들의 교육공간”에 들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화여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한’ 민원으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혐오를 승인한 것이다.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를 승인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3년 고려대는 인권·법률청년단체 ‘두런두런’의 행사를 학부모 항의가 많다는 이유로 대관 취소했고, 서울여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가 행사에 동성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대관을 취소했고, 2015년에는 서울시 산하 청소년수련관과 숭실대가 퀴어 행사 대관을 불허했다. 2017년에는 동대문시설관리공단이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의 대관을 승인했다가 며칠 뒤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취소했다. 전국의 퀴어문화축제는 축제 공간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의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많은 퀴어 관련 행사가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에 막혀 공간 사용을 거절당해 왔다(이와 관련한 역사는 <퀴어한국사>를 참고).

혐오의 내상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정당한’ 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혐오를 승인하고 유통시키는 일이다. 그렇게 유통된 혐오는 개개인들의 몸에 스며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한 내상을 입힌다.

최근 스스로 꽤나 놀랐던 일화를 꺼내볼까 한다. 수습노무사들의 노동인권활동모임 ‘노동자의 벗(노벗)’에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노벗 안에서 내가 속한 퀴어노동권팀에 후원요청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노벗 활동을 응원하는 한 노무법인에서 노벗에 몇년째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는데, 퀴어노동권팀이 여기에 지원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나는 다른 팀에서 지원해보기를 권했다. 내심 두려웠다. ‘퀴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면 어떡하지, 그 반감으로 괜히 노벗에 대한 애정까지 식게 만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을 느끼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전까지 이런 식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눈 앞에서 혐오세력의 폭언을 듣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당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두렵지는 않았다. 그 두려움은 혐오가 할퀸 자리에 스며든 내상이었다. 그 내상과 마주했을 때, 혐오가 통용된다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권리조차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혐오가 사회적으로 인정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였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상상력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지원금과 함께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것만으로 혐오의 내상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상 위에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새살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말 그대로 힘이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힘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다.

이번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취소에 있어서도, 학교쪽이 다른 상상력을 가졌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퀴어영화제에 대해 누군가는 민원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그것을 ‘정당한’ 민원이 아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인지했다면, 그래서 날것의 혐오를 맞닥뜨렸을 노동자와 학교 안팎의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편견과 혐오에 대응하는 것이 이화의 정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혐오의 내상에 길들여지지 않을 더 많은 상상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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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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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퀴어동네 회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가들이 보름간 진행한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이 얼마 전 끝났다. 지난 2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자립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천주교가 이에 대해 대대적인 입법 폐지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전국에 무려 175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립지원법이 탈시설이 불가피한 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장애인의 삶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시설 입소를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증장애인은 종종 지역사회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주시설에 보내지지만, 시설도 사람이 살기 매우 열악한 공간이다. 시설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여러 명이 한방에서 개인 공간 없이 살고, 사생활도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밥을 먹어야 한다. 뭘 먹을지도 선택할 수 없다. 종교도 시설 재단에 따라 정해지고, 마음대로 외출도 불가능하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저서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에서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은 인간다운 삶 자체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인은 자신보다 경증인 다른 장애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시설종사자에게 학대당하기도 한다. 최근 울산의 한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CCTV를 통해 한 달간 폭행 890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해자는 장애인의 머리를 때리고 발을 세게 찼으며, 장애인을 짐짝처럼 질질 끌었다.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거나 따귀를 연거푸 치기도 했다. 이 시설은 개원 이래 40년 가까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모든 시설이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시설 장애인은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장애인시설을 포함한 집단거주시설에서 사망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현재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그 말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달라진다면 이 말은 거짓이 된다. 박경석 대표의 말처럼 “주거공간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주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제공이 되고, 소득체계가 잘 갖춰지면 자립이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윤이 무엇보다도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이윤을 벌어들일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국가에 돈을 벌어다 줄 반도체산업을 뒷받침하는 데는 수조원씩 투자해도,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지금도 시설에서는 “어차피 돈도 못 벌어다 주는 장애인들 제일 값싸게 관리”하기 위해 적은 수의 노동자가 여러 명을 버겁게 돌보는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산다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온갖 시설과 체계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노동권도 제대로 보장해야만 한다.

지난 몇 달간 광장에서 다른 사회를 열자고 외쳤던 목소리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우리가 우리 삶과 이 사회의 주인인 사회는 장애인도 한 명 한 명의 주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가 한 번의 선거나 몇 개의 정책만으로 이뤄질 리는 없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수호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 사회를 바꿔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눈부신 연대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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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동네의 활동명 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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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여기는 퀴어단체인데 다들 실명을 쓰는게 독특하네요.”

퀴어동네의 새로운 회원 ㄱ이 무심결에 한 말이 퀴어동네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퀴어단체이지만 동시에 노동인권을 지향하는 법률활동가단체이기도 한 퀴어동네는 발족한 2022년 이래 꽤나 오랫동안 실명제를 유지하였다. 고놈이 고놈인 탓에, 또 서로를 잘 아는 탓에 서로의 이름이 꽤나 익숙했던 우리는 별도의 활동명(닉네임)을 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부 조직문화 논의와 맞물려 퀴어동네는 활동명을 쓰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왜 활동명을 쓰기로 결정했을까.

우선 노무사단체가 아니라 ‘퀴어단체’의 성격을 강화하고 싶었다. 노무사 외 법률활동가의 모임이라고 규정했지만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수습노무사 노동인권모임 ‘노동자의 벗(노벗)’출신인 탓에 직장 선·후배 혹은 기수제로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퀴어동네에 오면 나는 ‘서이’라는 별명을 가진 퀴어동네 회원이 된다. 닉네임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단순히 호칭을 변경시킨 것만으로도 다른 성격의 단체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또 퀴어동네에는 ‘엘라이’(Ally, 성소수자 인권지지자)도 있지만 퀴어 당사자도 존재한다. 때문에 퀴어동네 소속으로 활동하지만 퀴어동네 소속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회원들도 존재했다. 이름 석 자로 먹고사는 전문직의 특성상 단순 직장 내 아웃팅 문제를 떠나 직업의 영위, 혹은 사회적 평판 등에 있어 이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모든 회원들이 본인이 원하는 활동명을 사용함으로서 자연스레 퀴어동네 소속임을 밝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실명을 사용할 경우 언니나 형 등의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이 자연스레 붙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권고를 여러 번 받았지만 동방예의지국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예의 없는 동생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쉬이 말을 놓기 어려웠다. 그러나 퀴어동네 내의 상시적인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은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에 놓인 회원들에게 위화감을 들게 하거나 조직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었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 성 정체성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인 회원에게 실수로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을 했을 때 해당 회원에게 단순한 위화감을 넘어 젠더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출생시 지정된 자신의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증상)를 줄 염려 역시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활동명 제도이지만 사실 난관이 많았다. 우선 본인의 닉네임을 새롭게 짓는 것부터 다들 어색했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닉네임이 바로 매치 되지 않아 다시금 실명으로 부르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개인적으로는 초기에 “서이”라고 불렸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호칭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느낀 미묘한 어색함과 기시감은 퀴어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퀴어들은 직장생활을 할 때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일상적인 한담을 나눌 때 본인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을 가정하고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과 사람들이 지칭하는 호칭에서 차이가 발생하기에 일상적인 피로와 불쾌감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

그런 연유로 나는 30기 김수정 노무사에서 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퀴어동네 회원이 됐다.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단순한 호칭 정정 하나면 된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행위인가. 퀴어동네 내의 활동명 제도가 온전히 정착해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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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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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레드와 블루, 두 여성은 시간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레드와 블루는 서로의 가장 성가신 적이다. 때로는 이기고, 수없이 진다. 어느새 작전의 승부는 뒷전이 된다. 대체 너는 날 어떻게 패배시키는가. 레드와 블루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골몰한다.

레드와 블루의 사랑은 위험하다. 두 여성이 속한 집단인 에이전시와 가든은 시간선을 꼬고, 풀고, 땋는다. 시간을 쟁취해 이 세상을 철저히 굴복시키기 위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치밀한 지배와 통제, 엄격한 규율과 필요로 인해 만들어지고 자의로 인해 집행되는 법이 가득할 것이다. 엄격한 질서에 자유와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레드와 블루는 전쟁을 망쳐버린다. 죽음은 연인을 차지하지 못한다. 연인은 에이전시와 가든이 정해놓은 세계로 뛰어든다. 온 세상을 제멋대로, 제 뜻대로 결정하려던 그들의 계획을 망가트린다. 섬세하게 조직한 시간 선을 풀어헤치고, 과거에 미래를 심어둔다. 그들 중에 승자는 없다.

“시간과 죽음에 맞서서, 우리를 찍어누르려고 늘어서 있는 모든 권세 앞에서, 우리가 가진 건 사랑뿐이야. … 희망은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싸울 것이다. … 그들은 우리를 거느릴 자격이 없어. … ‘우리’는 모두를, 이 역겹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느라 모든 시간의 실에서 죽어가는 모든 유령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시간만이 아니다.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이는 사랑을 택한 연인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죽음만 꿈꾸는 지배자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무지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를 썼다. 우리 함께 사랑하자고. 아주 오랜 시간 우리를 옭아매던 것들을 집어던지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함께 차도 마시는 공간에서 꿈꾸어 보자고. 그러나 편지는 쉽게 오독된다.

그들은 편지를 조작한다. 무지개가 탄핵광장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차별금지법은 안 된다고. 혐오가 아니라 그네들이 예민한 것일 뿐이니, 무시하라고.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고. 그들은 또다시 무지개와 세상을 단절시키려 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술수에 넘어간다. 평등보단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오는데 익숙했던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고.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무엇을 찾아왔는지 물었다. 정답은 없었다. 응답만이 있었다. 알아두겠다! 라고.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광장에서 우리가 꿈꿨던 차별 없는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길 속에 희미한 빛으로만 반짝인다. 어둠 속에서 허기를 느끼며,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꿈을 꾼다.

우리가 똑같이 용감해지기를. 우리가 서로의 편지를 읽기 위해 똑같은 것을 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잿빛으로 가득한 차별의 세상을 넘어, 색색깔이 터져 나갈듯한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너랑 나는,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이 글은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이 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읽고 썼다. 책을 읽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시라. 당신에게 쓴 편지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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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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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그를 만난 건 한겨울 어느 날이었다.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데 길을 못 찾겠다고 해, 설명을 거듭하다 안 되겠다 싶어 외투도 잊고 급히 나갔다. 사무실 앞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70대 여성 청소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같이 해고된 동료 두 분과 함께였다. 그들이 난생 처음 노무사를 만나러 온 이유는 남성 관리자의 ‘갑질’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남성 관리자의 고함에 기죽고 겁먹을 만도 한데, 끝까지 대항하다 잘리고 결국 노무사까지 만나러 오다니. 그들의 용기에 내심 감탄했다.

그즈음 나는 ‘아가씨 전화’ 때문에 한참 화가 나 있었다. ‘아가씨 전화’는 나와 상담 전화를 하던 상대방으로부터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이 등장하는 전화 통화를 부르는 나만의 말이다. 내가 ‘아가씨’라고 불리는 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에는 아가씨는 법률 조언을 할 수 없고, 전문적일 수 없으며, 능력이 의심스럽고, 못 미더운 존재고, 그러므로 아가씨는 제대로 된 노무사일 수 없다는 편견이 전제돼있다. 내가 신뢰할만한 전문가인지는 나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면 될 일인데, ‘아가씨’라는 이유 하나로 쉽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조금 부끄럽게도 이들에게는 그러지 못했고, 어느샌가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님’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호칭이다. 어떤 여성을 ‘어머니’ 역할에 가두고, 결혼해 자식을 둔 것으로 획일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연령과 성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차별을 공유한다는 감각 때문에 공감과 친밀함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하고 싶었고, 그러다 나온 것이 ‘어머님’이었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 건 나의 한계다. 셋 중 나에게 전화해 길을 물었던 한 분만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가씨와 어머님은 한 팀이 됐다.

그는 사무실에 자주 찾아왔다. 그가 문자나 카카오톡을 나만큼 쉽게 사용하지 못하며,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기에 대면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서면 초안을 인쇄해 한 문단씩 읽으며 고쳐나갔고, 가끔 화이트보드에 서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주 만나며 우리끼리 쓰는 말도 생겼다. ‘이리 와 아저씨’ ‘소리 지른 남자’ 같은, 그가 이름을 모르는 남성 관리자들을 부르는 별명이 많았다. 나는 그의 일과 일터를 배워나갔다. 직접 청소를 하는 노동자 다수가 고령 여성이지만 관리자는 모두 그보다 나이가 적은 남성이라는 것. 청소하지 않는 남성 관리자를 대접해서 잘 보여야 청소 일에서 잘리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다는 것. 여성 노동자는 나이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쓰였다.

한 번은 임금명세서를 찾으려고 그의 문자 목록을 대신 보다, 우연히 내 번호가 뭐라고 저장됐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무사’라고 저장돼 있었다. 노무사 앞에는 이름 석 자도 없었고, 뒤에는 아가씨도 없었다. 그 건조함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나의 쓰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기 싸움의 대상도 아니고, 당연히 친절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심받지 않아도 되고,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이름도 없이 덜렁 노무사라고 저장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게 고마웠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심문회의 날이 왔다. 긴 시간 끝에 원하는 조건으로 화해해 사건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며칠 후 그가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15개들이 두유, 어느 날은 사과 한 봉지, 어느 날은 1.8 리터 우유. 그날은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흰 봉투와 함께였다. 어떻게 받느냐는 나를 이기고 그는 기어코 봉투를 주고 갔다.

탄핵 선고를 기다리며 지루하고 지난한 날들이 이어지는 시점에 민주주의 회복에 관한 진중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탄핵까지도, 탄핵 이후에도 일상의 투쟁은 이어진다는 생각에 이런 투쟁을, 아가씨와 어머님의 연대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는 새 일터에서 계속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동료들도 좋다고 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도 탄핵에 관심이 많은데, 파면이 결정되면 그가 계모임 할 때 간다는 역 앞 갈비집에서 함께 축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란범과 함께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무시도 같이 사라지면 좋겠다. 아가씨도 어머님도 당당한 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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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가 광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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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세계여성의 날(3월8일)에 열린 광화문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가던 길, “Stop the steal” 피켓을 들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대학교 동기의 모습을 우연히 봤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내가 방금 다녀온 집회와는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분명했다. 막역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오며 가며 살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었다. 주변 친구의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태극기 집회에 다닌다” “말이 안 통한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가 광화문 광장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니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얼굴과 차림새를 한 젊은이가 정반대에 서서 나와 내 친구를 공격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18년 9월8일 동인천 북광장. 전국에서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대절해 몰려든 혐오세력은 축제를 무력으로 방해했다. 좀비 떼처럼 하나로 단결해 움직이는 그들의 조직력도 무서웠지만, 나를 더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그쪽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바람개비를 든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나온 단란한 가족, 세월호 배지가 달린 가방을 메고 온 중년 여성,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덩치 큰 중년 남성들, 그리고 말갛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포위한 채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는 동년배의 청년들. 일상에서 그들은 우리 옆의 평범한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겠지만, 교회 커뮤니티를 통해 조직돼 함께 행동에 나설 때는 혐오세력이 됐다.

위와 같은 성소수자 혐오집회를 조직하던 교회의 인물들은, 현재 탄핵 반대를 부르짖는 극우의 선봉이 됐다. 혐오세력의 대표주자 전광훈 목사는 광화문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면 사회가 무너진다”고 말한 손현보 목사는 여의도에서 각각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반대 집회의 규모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때때로 그 규모가 탄핵 집회를 앞서기도 했다. 실제로 1~2월 내내 집회 참석을 위해 광화문에 가면, 광장에 군집한 반대 집회 인파의 기세에 소름이 돋았다. 기세등등한 그들은 탄핵 집회가 열리는 동십자각 근처까지 몰려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확연히 줄어든 탄핵 집회의 인파를 확인하며, 본인들의 세계가 옳다는 자신감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내란옹호 세력은 단순히 거리에 모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을 행동에 옮기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1월19일,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을 수백 명이 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기자·민간인에게 무력을 행사한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이 발 딛고 선 극우적 세계관은 현 사회의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는 법원을 습격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청년들이 여러 대학 캠퍼스 내에서 탄핵 반대 행동을 이어가고, 심지어 2월26일 이화여대 캠퍼스에 다수가 진입해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무도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이런 움직임이 단순히 소수의 일탈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거대양당인 국민의힘이 내란옹호 세력의 손을 적극적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국의 탄핵 개입설에 힘을 싣거나, 전광훈·손현보 목사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사실 국민의힘은 탄핵 국면 초반, “그래도 계엄은 문제”라며 윤석열과 선을 긋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 집회의 힘이 세지자 이에 합류하며, 가짜뉴스와 반공·반동성애·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반한 극우적 세계관을 승인하고 재생산한다. 물론 기존에도 국민의힘은 여러 이슈에서 극우적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내란수괴가 5천만명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위협에 빠뜨린 상황에서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되지 않은 망상들을 추수하는 것은 극우가 주류화되는 길목에 서 있다는 징후이다.

극우적인 내란옹호 세력이 급격히 성장한 시점은 탄핵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낙관적 정서가 퍼지고 나서, 시민들의 집회 참여가 시들해진 시기와도 겹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와 같이 극우가 득세하는 상황은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다. 찬반이 맞부딪히는 격렬한 전선에서 양쪽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누가 우세를 점하게 되는지에 따라 정세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극우세력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하거나, ‘정상’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소수라는 관점으로는 극우의 주류화를 막을 수 없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윤석열이 석방될 것이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탄핵 결정이 초읽기를 앞둔 상황에서는 더더욱 앞으로 벌어질 일을 확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극우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거리에 모여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감히 극우가 광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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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광장의 연대와 저항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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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리 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고 회의장을 집단으로 이탈한 1주일 뒤였다. 그 시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집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함께 읽었다는 것이다. ‘집회 발언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재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등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전 집회에서는 선언된 적 없는 약속이었다. 본 집회에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외쳐 온 이야기가 드디어 청자를 만나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모인 10명 중 한 명이라도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겠다 싶어, 마음이 벅차올랐다.

12월22일, 남태령에 갔다. 전날 영하의 날씨에 밤을 새웠다는 친구의 말에, 사람들이 더 모여야 농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발 길이 향했다. 올해 1월15일,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다이인 시위에 참여했다. 새벽수업을 하고 가느라 늦었지만, 다행히 공간의 열기는 남아 있었다. 2월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 참여했다. 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퀴어페미니스트 공간 루땐’에서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2월14일에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진행한 대통령 탄핵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과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30대 비장애인 프리랜서 운동 강사이자, 퀴어 페미니스트인 나는 요즘 이곳저곳 바삐 다닌다. 내 삶과 무관해 보이는 일도 결국 모두 연결돼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연결’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인다.

박경석 대표는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끌려 나갔었는데 오늘은 시민들 덕에 끌려 나오지 않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그간 발언하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탄핵 국면을 맞이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발표한 자료에서 남태령 집회 참가자 찬달은 “저녁 6시에 한강진에서 시민들이 쫙 서 있고, 모세의 기적처럼 트랙터가 줄지어 들어오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돌 출퇴근길 같은 느낌, 트랙터 탄 농민들이 엄지를 치켜들고 들어오시는데 말도 다할 수 없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파면돼야 한다. 마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윤석열 파면은 투쟁의 결과이자, 시작이다. 성소수자가 일하면서 차별이나 혐오에 노출되지 않고, 마음껏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일하고, 뒤섞여 사는 세상을 상상한다. 자본보다 인권이 우선되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잠시 머물러 간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세상을 원한다. 이 모든 꿈이 내 안에 있다.

정체성 정치 담론은 1977년 미국 흑인 레즈비언 단체에 의해 도입된 이후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차별철폐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정체성 정치는 주디스 버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권력에 대한 예속화”를 통해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로 머물게 하며, 사회구조의 변혁이 아니라 사회구조로 포섭되는 것으로 그치게 할 위험도 있다. 아사드 하이더 역시 그의 책 <오인된 정체성>에서 “우리는 분수를 약분하듯이 어느 인간 집단과 그들이 갖고 있는 다수성을 공통의 이해관계로 환원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에 관한 정의”에 불과한 추상적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모두의 해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만의 경험, 정체성, 믿음을 넘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We are rebels in our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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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옹호자 된 인권위가 다시 제대로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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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퀴어동네 운영위원, 공인노무사)

윤석열 정부 들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자리에 앉을 자격이 가장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그 자리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품위·가치관·언변·주변인물 등 모든 면에서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고, 여성가족부가 소멸돼야 한다는 사람이 여성가족부 장관에, ‘불법파업에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면서 노동자 혐오를 일삼던 자가 노동부 장관에 앉았다. 나라를, 여성정책을, 노동정책을 후퇴시키러 온 장관 다음에는 인권을 후퇴시키러 온 인권위원장이 있었다.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에이즈가 확산된다’는 생각을 가진 안창호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인권에 대한 기본적 소양은 고사하고, 가짜뉴스 수준의 억지와 무지함에서 오는 신념을 보면 누구보다 반인권적인 인물로 보였다.

인권위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여당과 대통령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된 이충상, 김용원 위원의 임명부터가 위기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두 상임위원의 인권 침해적인 막말이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두 사람으로 화물연대 진정사건 진행이 막혔고,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표명이 기각됐으며 위원회 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나왔다. 동료 위원들에게 막말을 해대고 위원회를 수개월간 열지 않아 인권위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이충상 위원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심해지자 인권위가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혐오 표현 예방조치를 하라는 의견표명을 하기에 이른 것은 웃지 못할 비극이다.

인권위는 국가의 인권 침해 감시, 정책 조사, 제도에 대한 의견 표명, 구제 등의 역할을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이 나라에서 누가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어떠한 상황인지 외부에 알리며, 인권 침해가 있는 곳에 가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인권위가 ‘살색’이라는 색상 명칭이 차별적이라고 이야기하자 공식명칭이 ‘살구색’이 됐다. 고궁에 입장할 때, 법적 성별과 다른 성별의 한복을 입은 사람의 무료입장을 제한하는 것이 성별 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하자 문화재청이 입장을 바꾸었다. KTX 여승무원들의 불합리한 고용조건은 성차별이고, 노키즈존은 나이 차별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 트랜스젠더 성별을 정정에 수술을 요구하는 것 또한 차별이라고 말해왔다. 인권위 권고가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되는 이들의 상황을 듣고 살피고 의견을 내는 인권위의 존재는 기존의 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 최후의 보루였다. 노동상담을 하면서 어떤 이들에게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인권위를 안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인권위가 지난 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안건을 의결하며 기어이 내란 옹호자 되기를 자처했다.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부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용원 위원이 상정한 안건이었다.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기관이 내란범의 목소리 대변소로 침몰하는 과정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권은 흔히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배우지만 사실 그것은 하늘이나 신을 믿는 것과 같은 믿음에 의할 뿐이며 실상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지 모른다. 이 때문에 공론장에서 끊임없이 평등과 인권을 이야기하고 서로 확인해야 한다. 인권위의 중요한 역할이 그중 하나였다. 앞으로는 윤석열이 불러온 파시즘의 증식을 감시하고 막아야 할 책무가 더해질 것이다.

인권과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인권의 후퇴를 자처한 자들은 그들 우두머리와 함께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전에도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 교훈은 너무 뼈 아프다. 반인권적이고 정치적인 인사가 인권위를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면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부터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의 책무는 인권위가 바로 설 때까지 감시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광장에 나선 이들은 다양성과 평등이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임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인권위의 역할을 요구하고 기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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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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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해 말부터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한남동에서 집회가 열리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시민이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고,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 안팎으로 가장 주목받은 존재들은 단연코 20대, 30대 여성이다. 그럼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존재들은? 성소수자일 것이라 생각한다.(두 집단에는 당연하게도 교집합이 있다)

집회에서 모든 발언을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기는 하지만, 더 숨죽이고 집중해 듣는 대목이 있다. 자기소개다. 개인적으로 자기소개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가진 여러 모습 중 현재 앞에 있는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잘 선별해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은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인정을 받을 것 같아 일부러 꺼내놓기도 하고, 어떤 모습은 나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임에도 숨기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 상대방이 보일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 발언에서 인상적인 점은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이, 지역과 함께 ‘레즈비언,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에이섹슈얼’ 등이 나란히 언급된다.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머뭇거리다 용기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으로 이야기해보는 거라며 커밍아웃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자기소개를 듣다보면 약간은 울컥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집회 장소에서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으로 발언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소개에 환호로 화답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지개색 투쟁 머리띠를 매고 다니는 사람들, “여자도 남자도 좋아 한다”라는 말에, “괜찮다!” “문제없다!”고 화답한 사람들, 탄핵 이후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상에서는 이런 흐름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발견되지만, 최소한 광장은 야유와 혐오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성소수자를 잘 몰랐다는 사람들, 주위에 성소수자가 없었다는 사람들도 그 존재를 확인하고, 많이 배워간다며 고백하고 있다. 광장을 시작으로 사회는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할 때는, 동성혼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지형 위에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조금 더 바란다면 광장의 변화가 일터로, 학교로, 일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일터에 무지개가 있다면, 처음 용기를 내는 사람과 그에 화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터도 광장과 같은 해방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 전 이 지면에 처음 글을 쓰면서,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사회의 분위기도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열망하는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몇 백 명의, 몇 천 명의, 몇 만 명의 변희수 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그 목소리들을 모아 공고한 벽을 허물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서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새해를 맞아 새삼스레 또 소망해 본다”고 썼다. 어쩌다 마주한 정국 탓에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사회도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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