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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은 나와 15년을 살았던 고양이다. 작고 약하게 태어나 어미에게 버려졌지만 동네 가게의 봉지 빵을 훔쳐먹으며 버티다 구조됐고, 묘생(猫生)으로는 스무 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해삼과 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5인 3묘의 대가족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2인 2묘, 그리고 지금은 2인 1묘 가족이 되었다.
해삼은 작고 동그랗지만 용맹했다. 어느 날은 열린 현관문으로 길고양이가 집 안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고양이들이 혼비백산해 몸을 숨기는 동안 혼자 맞서 싸워 내쫓았다. 하지만 노환에는 장사가 없어서, 마지막 몇 년은 아침저녁으로 수액을 맞고, 사람이 억지로 먹이는 많은 약을 견디며 지냈다. 말년의 해삼은 몸이 아파서인지,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고 얼러주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해삼의 병세가 깊어진 재작년 어느 여름 오후,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종일 해삼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일정을 바꿔 연차를 냈다. 거실에 있던 해삼 자리를 들어 침대로 옮기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가냘픈 몸을 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이 되어 여느 때처럼 동거인이 퇴근해 돌아왔고, 함께 저녁을 먹은 뒤에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침대 가운데 해삼을 두고 양옆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해삼은 우리 사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불과 몇 분 전에야 알아챘다. 해삼이 덜 무서워하도록 안아주고 계속 쓰다듬으며, 한 사람씩 작별의 말을 건넸다. 소식을 듣고 해삼을 함께 키웠던 동생들이 달려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해삼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좀 더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말고는 더 바랄 것이 없는 마지막이었다.
나의 마지막 순간도 해삼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같이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병원이 아닌 우리 집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그러나 해삼이 가고 비혈연 2인 1묘 가족이 된 우리가 서로를 마지막까지 무사히 돌보고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의 저자 캔디는, 10년을 함께한 동성 파트너의 말기암 소식을 듣는다. 지금 의료체계 안에서 돌볼 권리, 마지막을 함께할 권리는 혈연과 혼인으로 구성된 ‘법적 가족’에게만 허용된다. 그는 파트너의 돌봄과 임종, 장례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행히 캔디는 파트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지만, 파트너 어머니와 간호사의 ‘호의’ 덕분이었으며 “행복했고 사랑한다”는 작별 인사는 어머니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가족의 ‘보호자가 되지 못할까 봐’ ‘내가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모든 ‘법 밖의 가족’들이 가지는 불안의 언어다. 동성 동반자뿐 아니라 동거, 독거, 비혼 등 다양한 비혈연 가족들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한 일은 그저 옆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바로 그 ‘옆에 있음’을 위해 제도 밖에서 다른 길을 찾고, 설득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불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픈 파트너를 돌보는 저자를 친구들이 돌아가며 돌본다. 장례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주변을 설득하고, 새로운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법이 인정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지탱한다. 이때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새로운 돌봄의 방법을 만들어 내는 진취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이미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혈연이나 입양, 혼인으로만 제한해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아 가족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늙어도 익숙한 환경에서 돌봄을 받는 것, 즉 ‘내 집에서 나이 들기’ 조건을 위해 다양한 생활동반자 제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선은 비혈연 생활동반자에게 의료법상 보호자 개념을 적용하고, 장례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직장에서 돌봄 휴가의 범위를 넓혀보는 방안을 제시했다. 누구나 아프고 죽는다.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가족형태와 돌봄이 차별 없이 받아들여지기를, 그 방법을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후 오랜만에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결과지를 읽어보던 중 정신건강 관련 데이터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성소수자 2천495명 중 우울증상 유병률(45.5%)은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상 일반 인구(11.3%)의 4배에 달하고(20대의 경우 7.6배), 자살 생각(39.1%) 및 시도(5.1%) 비율은 일반 인구의 각각 8.5배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수치다. 이 끔찍한 집단적 고통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흔히 ‘정신질환’을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하루 7시간 이상의 숙면, ‘탄단지’가 고루 균형 잡힌 식단, 주 3회 이상 숨이 찰 정도의 운동, 스트레스받지 않기, 정신과 치료 등 일상 속 개인적 관리 방안이 많이 이야기된다. 특히 최근에는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세요” 같은 말을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낙인이 두려워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취지로 이해한다. 여전히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낙인이 살아 있다는 뜻이지만, 공공연히 치료를 권장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과의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정신과에서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 포괄)로 치료받은 환자는 282만명(치매 제외)이었다. 2018년 같은 통계에서는 186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똑같이 치료의 문이 열려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 인권위 조사의 다른 질문에서는 최근 5년간 의료기관에 방문한 성소수자 2천283명 중에서 373명(16.3%)이 부적절한 질문, 진료 거부, 모욕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고, 그중 147명(41.8%)은 정신과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밝혔을 때 이를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교정하려고 하거나 부모에게 ‘아웃팅’하는 의료진이 있었다는 응답들이 나왔다.
병원이나 의사 성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정신질환의 치료 방식은 담당 의사와의 심리 상담이 동반된다. 물론 상담 그 자체가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주로 적절한 약물 처방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질병과 달리 의사와의 원활한 관계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원가족, 또래집단, 학교, 직장에서의 혐오와 차별에 숨 쉬듯 노출된 채 살아가고, 이러한 삶의 역사는 개인의 정신적 이슈에 촘촘히 반영된다. 과연 정체성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고민을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의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사 역시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당사자는 언급을 회피하고 약물 처방을 받거나 아예 정신과 방문을 단념하는 것이 편하다. 이처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신과의 문턱은 유달리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회가 된다면 애초 정신과에 갈 필요 자체가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2024년 10만명당 29.1명, OECD 평균 2배 이상)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정도의 높은 수치라면 자살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마당에 정신질환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위에서 말한 식단, 운동 등의 개인적 관리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린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애초 그러한 개인적 실천들이 지속 가능하게 효과를 보려면 장시간 노동, 직주근접이 불가한 집값과 서울중심주의 문제, 바닥을 치는 노동권 지수 등 삶의 주요 조건을 이루는 문제들이 개선돼야 하고, 이는 현 체제의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일이기에 우아하고 정제된 방식으로는 ‘그냥’ 쟁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 속 ‘개인’으로 자신의 정신적 고통 문제를 다스리자는 것은 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성소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맞닿아 있다면 근본적인 해결책도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와 학교에 가야 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체제 속 ‘정상인’으로 기능하려면 정신과 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한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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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금)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정책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후 10여년 만에 펴낸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성소수자들의 삶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연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노동, 교육, 시설, 재화용역, 보건의료, 국가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성소수자의 차별실태를 분석하고 정책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이날 토론자로는 퀴어동네의 진돌(여수진)이 참여하여 노동영역에서 성소수자 차별 개선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돌은 이날, 지난 10여년간 성소수자를 위한 직장 제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하고, 당장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돌의 토론문을 비롯해 토론회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자료집을 참조해 주세요.

국가인권위원회 발간 「 성적 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 보고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차별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 자료집

“9년 전 수상할 때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에둘러 말했다. 그때 했어야 했던 말을 지금 하겠다.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다. 그 한 단어를 말하면 채팅방이 뒤집어질 것이고, 부모님이 저를 부끄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원하게 말하겠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가 만든 앨범이 올해의 일렉트로닉 앨범이다. 트랜스젠더 여러분, 울지 마시고, 자살하지 마시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고,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말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일렉트로닉 음반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수상소감이다. 평소 음악을 잘 듣지 않는 나는 사실 수상소감보다도 이에 대한 SNS상의 반응을 더 먼저 접했다. “그래도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거나 “예쁘게 꾸미고 화장하고 치마 입는 행위가 성별을 결정하는 게 아닌데, 왜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냐”는 반응들. 정작 시상식 영상 속 키라라는 화장도 하지 않고 치마도 입지 않았는데도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동성애자 남성과도 연대할 수 있냐,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이 맞냐, 성소수자 문제 섞지 말고 ‘여성’ 문제를 일단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 편을 갈라서 어느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인지 갑론을박하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대판 싸우고 난 뒤에는, 어느 누구도 성소수자 문제를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여성’의 적일까. 애초에 여성이란 무엇이고 남성이란 무엇일까. 살면서 몇 번 거쳤던 ‘숏컷’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내가 숏컷을 했다고 해서 딱히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여성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대부분 아들, 남학생, 남자친구로 불렸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데도, 머리 짧고 화장하지 않은 여성보다는 그저 덜 자란 남성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전형적인 ‘여성적’ 꾸밈을 한들, 그것이 트랜스젠더 여성 개인을 탓할 수 있는 문제일까. 소위 ‘여성스럽게’ 보이면 고정관념을 답습한다고 비난받고, ‘여성스럽지’ 않으면 ‘어딜 봐서 여성이냐’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개인적인 실천의 합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우리를 억압하는 공통의 체제에 맞서 같이 싸움으로써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의 성산업은 물론이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광고 산업 등 성 역할을 공고히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수많은 ‘성산업’이 건재하다면, 아무리 그래도 여성은 가정에서 출산하고 돌봄을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는 가족제도가 건재하다면, 이를 유지할 이해관계가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여성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도 마찬가지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65%가 넘는 트랜스젠더가 ‘최근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의 비율도 절반을 넘는다. 2017년 발표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따르면 성인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실제로 자살에 이르는 이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 인터뷰에서 키라라는 9년 전 수상소감이 방청석에 앉아 있던 친구를 향한 말이었지만 그 친구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옛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트랜스젠더 친구들 중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여성’의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 아닌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득을 보는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울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용기 있는 이들과 서로 손을 잡고 우리 모두를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급진적인 연대, 급진적인 정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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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많이 웃은 날은 친한 친구의 생일파티였다. 파티 제목은 ‘OO이의 보석함 개봉 파티’로, 유튜브 예능 ‘홍석천의 보석함’에서 영감을 받은 듯 싶었다. 파티는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과 함께 친구가 만나온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서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 제목에 맞춰 친구의 보석들은 반짝이는 옷과 소품을 두르고 왔고, 친구가 야심 차게 준비한 각종 게임을 하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후반부 코너 중에는 ‘보석함 성토대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한 사람씩 제시된 여러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순서였다. 어떤 보석은 ‘일탈’을 주제로 고등학생 때 강변에 텐트를 치고 며칠 살았던 일을 이야기했고, 어떤 보석은 ‘K-딸로 받은 차별’을 주제로 아버지만 은수저를 사용하고 무조건 아버지 밥을 제일 먼저 퍼담는 집 문화를 들려줬다. 내가 고른 주제는 ‘나만의 소심한 세상 바꾸는 방법’이었다. 나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대신 ‘애인’이라는 표현 쓰기, ‘여직원’이라는 단어 쓰지 않기 같은 말하기 습관을 소개했고, 보석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세상을 조금 더 ‘퀴어롭게’ 만드는 사소한 방법으로, 나는 가끔 이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다. 커밍아웃을 들은 대부분은 그런 말을 굳이 왜 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성애자 커밍아웃이 낯선 일이기는 하다. 누군가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말하는 장면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 어디선가 ‘올바른 혀의 위치’ 같은 걸 보고 나면 괜히 입 안에 든 혀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성애자라는 커밍아웃을 듣고 나면 ‘이성애’라는 것을 괜히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이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성애도 여러 성적 지향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애는 기본값이다. 이성애자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러한 것 따라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마주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이가 존재한다는 건 상상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성애자 커밍아웃 정도가 있어야 이성애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잠깐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거리낌 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는 건 내가 이성애자이기 때문일 거라고. 만약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나의 커밍아웃이 다른 이의 커밍아웃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성애자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아직 벽장을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과 동지들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이야기 중에 ‘크리킨디’라는 새 이야기가 있다. 크리킨디는 작은 벌새다. 숲에 불이 나 동물들이 앞다퉈 도망가는데, 크리킨디는 도망가지 않고 물을 머금어와 불길에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동물들은 “그런다고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고 비웃었다. 크리킨디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저는 이성애자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겠냐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세상이 이성애라는 하나의 색에서 무지개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계속 이성애자 커밍아웃을 해보려고 한다. 크리킨디의 물 한 방울 같은 사소한 방법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다양한 성적 지향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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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호주 시드니를 다녀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다 보니 그 무렵이 되었을 뿐이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한 여행지가 시드니였을 뿐이다. 그렇게 도착한 시드니에서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뜻밖에도 무지개였다. 호주 퀴어 축제인 마디그라 기간이었던 것이다.
최근 새롭게 생긴 취미 중 하나는 세계 곳곳의 퀴어바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한국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들의 퀴어바는 여전히 골목 깊숙이 숨어 있다. 성소수자에 친화적이지 않을수록, 폐쇄적일수록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퀴어바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닿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런데 시드니는 달랐다. 구글 지도에 검색하는 족족 퀴어바가 나왔고, 우리가 묵은 옥스퍼드 스트리트 일대는 그 자체로 거대한 퀴어바 같았다. “너의 사랑을 응원해”라는 문구를 적은 바틀샵, 무지개가 칠해진 호텔, 무지개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성소수자 친화적인 광고들. 특별한 장소를 찾아 들어가지 않아도 거리에서 이미 안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굳이 ‘퀴어바‘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무지개 깃발이 달린 평범한 식당에서 토스트를 먹고, 놀이공원 직원의 모자에 달린 작은 무지개 배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도시 전체가 “당신은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퀴어바를 찾기 시작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나와 같은 성소수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우연히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성소수자 친구와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인적 드문 곳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퀴어바는 나와 같은 이상한(Queer)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말을 돌리거나 관계를 바꿔 부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하면 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하루 대부분은 그곳이 아니라 일터에서 흘러간다. 그리고 많은 성소수자는 일터에서 침묵을 선택한다. 커밍아웃은 개인의 용기 문제로 말해지지만, 정말 그럴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을 받아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조직의 문제는 아닐까.
퀴어동네는 퀴어노동권포럼을 통해 ‘직장 내 커밍아웃 조건찾기’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직장생활 중인 성소수자 4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4.1%는 “일터에서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친한 동료 몇 명에게만 밝혔다는 응답은 25.3%였다. 직장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곳인지, 숫자가 말해준다.
무엇이 달라지면 우리는 덜 숨게 될까. 조사에서 가장 많이 꼽힌 조건은 ‘소수자 친화적 직장 분위기’였다. 이어 동성 배우자와의 결혼식·신혼여행 휴가 보장,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명시된 사내규정 등이 뒤를 이었다. 거창한 특혜가 아니다. 다만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나의 관계를 관계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정,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였다.
결국 조건은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거리 곳곳에서 나를 환대했던 무지개처럼 “당신을 환영한다”는 작은 표시 하나면 된다. 취업규칙 한 줄, 사내 게시판의 문구,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무지개 깃발. 그것이 모든 차별을 단번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침묵만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라는 신호는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신호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시드니에서 내가 본 것은 화려한 축제가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무지개였다. 직장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제도 변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환대의 표시는 지금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누군가의 침묵을 멈추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를 만든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을 지우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굳이 ‘안전한 곳’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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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꽤 되는 거 같은데, 결혼은 하셨나요?”
어쩌다보니 요즘 나의 관심사는 결혼이다. 결혼을 앞두고 고민이 많던 친구와 나눴던 대화 때문이기도 하고, 면접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격앙된 목소리로 걸려 왔던 상담 사례도 있다.
“면접에서 자꾸 결혼했는지 물어봐요. 이거 법 위반 아니에요?”
나는 씩씩대는 여성의 목소리를 일단 가만히 들어주었다. 공인노무사에게 법적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걸려 온 전화에, 같은 여성으로서 같이 열받아서 소리 질러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 역시 뜨끈뜨끈해지고 있었다.
면접자가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결혼 여부를 물어볼 수는 있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4조의3에서는 상시근로자 30명 이상 사업장인 경우로 한정해, 구직자가 제출하는 기초심사자료에 구직자의 혼인 여부를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류 심사 단계가 아닌 면접 자리에서 해당 정보를 확인한다고 해 법 위반이라고 하긴 어려운 것이다. 물론 물어볼 수 있다는 말이 물어보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직무와 관련 없는 사적인 정보를 묻는 사실 자체부터가 차별로 일어질 수 있기에 지양되고 있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결혼이 무엇이길래, 다들 묻고 또 물을까. 그 질문에 이어지는 답은 또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렇게 결혼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내게 결혼이란 ‘상대방’의 문제였다가 ‘적성’의 문제가 된 것이었다. 어릴 때는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고 싶어질 거야’라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사회통념상 정상가족을 모범적으로 이룬, 덤으로 행복하기까지 한 가정을 이룬 이들이 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다. 결혼은 사랑의 마땅한 엔딩 같았다. 자라면서 생각은 좀 바뀌었다.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듯이, 결혼 역시 나의 성향에 맞는지 열심히 따져보아야 할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점들은 많다. 당장 넷플릭스 흥행 시리즈 브리저튼은 가상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 8남매를 내세워 바로 그런 고민을 풀어나가는 드라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장벽은 성격, 신분, 경제적 능력,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치적 사상 등 다양하다. 각 시즌의 주인공이 그 시대에 금기시된 사유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관건인데, 대다수 시청자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브리저튼 가 사람이라면 장벽은 무조건 뛰어넘을테니 말이다.
드라마 주인공과 달리 대한민국의 주인공 중 일부는 아직 장벽을 뛰어넘기에 버거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장벽으로 취급되는 이유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인데, 바로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이야기다. 현행법상 이에 대해 명시적인 금지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 간의 결합을 결혼으로 보는 법 해석에 따라 동성 간의 결혼은 행정상 수리처리 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결혼한 이성 부부에 비해 동성 부부는 합법적이기 어려워 제도적 혜택이나 사회적 시선 등에서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작은 희망을 심어보지만, 아직 그 싹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내가 너처럼 살았으면 결혼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안 하는 게 속은 편했겠지? 근데 네 아빠 만난 거 후회는 안 해. 한 번쯤 해 봐, 심심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혼은 어쩌면 장벽까지 필요 없는 간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심심하면 해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 정도로 충분할지도. 따라서 누군가 결혼하고 싶을 때 ‘당신은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적어도 듣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 내가 얻은 작은 결론이다. 면접에서 결혼을 했는지 꼭 해야 할 질문은 아닌 것 같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그날 상담에서는 여러모로 조심스러워 속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어 마음이 쓰였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저 사람좋은 척 웃어넘기기엔 부당한 질문이 맞다고, 나 역시 화가 많이 났다고 꼭 전하고 싶다.
2026.2.8. 퀴어동네 2026년 정기총회가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퀴어동네의 25년을 돌아보고 26년을 어떻게 꾸려갈지 계획해보는 이번 총회에서 회원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올 한 해 퀴어동네의 활동이 어떻게 펼쳐질지 많이 지켜봐주세요!

*이 글에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야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같은 경험으로 아픔이 남아 있는 분들께서는 읽기를 잠시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보리가 아프다. 끈 놀이를 좋아하고, 집에서 제일 높은 책장에 올라가 앉아있기를 좋아하던 장난기와 애교 많은 고양이다. 보리를 처음 만난 건 2017년이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인간에게도 짧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보리에게는 인간인 내가 체감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 사이 막내였던 보리는 맏이가 됐다. 장난기 많던 모습보다 조용하고 담담해진 모습이 더 익숙해진 지도 꽤 된 것 같다.
수술을 받고 퇴원한 보리는 많이 지쳤는지 울지도 않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밥도 물도 잘 안 먹고 습식사료만 조금 먹고 있다. 인간이 없어도 잘 지내던 친구들이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인간이 곁을 지켜야만 한다. 애인은 재택근무를 신청했고, 조정할 수 없는 일정이 있는 날에는 내가 연차와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일을 하면서도 보리를 돌볼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임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보리는 바람과 함께 컸다. 보리와 바람은 모두 애인과 함께 살던 고양이들이다. 나는 애인과 함께 지내며 처음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동물들을 아주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길에서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작은 강아지만 봐도 거리를 두고 갈 정도였다. 애인과 애인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양이 카페를 가고 친해지는 방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나도 그들의 가족으로 스며들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보리와 달리 바람은 처음부터 내게 곁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바람이 먼저 내 곁으로 다가와준 것은 시간이 꽤 지난 뒤였다. 바람은 놀라울 만큼 부드러운 털을 가졌다. 바람을 쓰다듬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데 바람은 너무 갑작스럽게 떠났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질환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예민하고 숨기 좋아하던 바람이었기에 나는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애인은 바람을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겠다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걸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바람이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었던 애인은 이상을 감지했다. 그렇지만 끝내 바람은 그날 이후 제 발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바람이 떠난 뒤에 보리의 성격이 급격히 달라졌다. 바람이 떠나서 보리가 우울증에 걸린 걸까 걱정이 됐다. 늘 싫다는 바람 옆을 비집고 함께 앉으려 했던 보리였기에 혼자 두기가 걱정됐다. 그렇게 우리는 구조된 길냥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고양이 합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에서 구조된 아기고양이는 전염성 피부병이 있어 격리가 필요했다. 에너지 넘치는 아기고양이 격리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 정도면 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계속해서 펜스를 넘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 아기고양이들을 막내였던 보리는 맏이가 돼 바라봤다.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리는 바람과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동생들 곁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됐다.
보리가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짐을 챙겨서 애인 집으로 향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나는 애인과 따로 지냈다. 원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나는 애인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내왔다. 거짓말로 둘러댄 거취를 들키지 않으려고 여러 방법을 썼다. 거짓말은 나에게 불안의 원천이었다. 그러다가 원가족이 의심하기 어려운 집을 운 좋게 구하게 돼 그곳으로 거취를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보리가 있는 (애인이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니 그걸 깨달았다. 아픈 보리와, 아픈 보리를 돌보면서 아파하는 애인을 돌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재촉하면서 귀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서 자야지, 가서 쉬어야지가 아니라 그저 ‘어서 가야지’라는 감각. 그것이 콘크리트로 이뤄진 집이 아닌 가족이라는 감각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난 바람과 달리 보리는 우리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려나 보다. 지치고 힘든 기색이 역력하지만 나를 빤히 바라봐주는 보리의 눈을 보면 ‘괜찮아’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인간이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보리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털 알러지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알러지 약을 먹는 내 애인과, 인간 외의 모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무서워하던 나와, 자기 영역이 중요한 세 마리의 고양이와, 그리고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것만 같은 바람과, 나는 만나본 적 없는 바람의 엄마 리카와. 어쩌면 함께 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울 우리는 서로를 내어주고 물들여가며 함께한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은 아닐지 몰라도. 불온전한 우리는 함께하기에 진정으로 온전함을 느끼며 서로를 돌본다. 가족관계증명서로는 증명되지 않을 퀴어한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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