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몸으로 일한다는 것

칼럼

▲ 김세정(소순) 퀴어동네 운영위원

출근길에 아랫배가 슬슬 아파 왔다.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이상하다 싶던 차에 생리주기 앱을 켜 보니 배란일 전날이었고, 아픈 건 배란통 때문이었다. 문득 매일 같은 일터에 출근하지만 매일 같은 몸으로 출근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생긴 배란통과 더불어 내 몸에는 생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생리 전 증후군으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생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는다. 생리 양은 많고 기간도 긴 와중에, 잇몸은 헐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계산해 보면 한 달 중 생리 영향권 밖에 있는 날은 길어야 열흘 남짓이다.

일정이 생길 때면 자연스레 생리주기 앱을 열어 몸의 시간표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 심문회의가 있는 날, 강의하는 날, 장거리 출장을 가는 날이면 그날 생리통이 심하지는 않을지, 생리 양이 많지는 않을지 따져본다. 제때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생리가 새는 참사가 일어날까 봐 어느 타이밍에 화장실에 들르면 좋을지도 고민해 본다. 진통제를 챙기고, 없으면 사고, 충분한 생리대를 챙기고, 생리가 새더라도 티 나지 않을 옷을 고르고, 때로는 여벌의 속옷을 챙기기도 한다. 몸의 시간표에 따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런 일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피 흘리며 노동하기 위한 노동’이라고.

그나마 나는 대부분 곧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지만, 화장실을 제때 갈 수 없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2021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에서 본 인터뷰들이 떠오른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으니 대부분 대형이나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착용하고 근무한다는 건설노동자, 내리 6시간 운전을 마치자마자 생리혈이 쏟아졌다는 철도 운전사,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앉아 있던 방석에 생리혈이 새어 나와 묻었다는 학습지 교사. 피 흘리는 것은 지극히 보통의 경험인데, 일터에서는 마치 노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처럼 느껴진다.

일터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노동에만 집중할 뿐 그 노동을 수행하는 ‘몸’이 피 흘리며 매일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생리휴가는 원칙적으로 무급이고, 심지어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생리하는 몸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기에 우리는 피 흘리는 우리의 몸이 노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일터는 한 번도 피 흘려본 적 없고,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 노동자’로 상정해 설계됐다. 이 때문에 생리를 비롯한 여성노동자의 신체적 특성은 늘 주류에서 배제되거나, 기껏해야 시혜적인 제도로 메워야 하는 ‘취약성’으로 취급되곤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몸은 규격화된 부품이 아니다. 노동하는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터는 필연적으로 특정 집단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할 뿐이다.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피 흘리는 몸이 일터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일터가 피 흘리는 몸도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생리대를 적절하게 교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생리휴가를 필요한 모두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당연히 마련돼야 한다.

가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칸에 탄 여성들 가운데도 누군가는 생리통을 참고 출근하고, 누군가는 생리혈이 새지 않을지 신경 쓰며 서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 모를 이들과 출근길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응원하며, 더 이상 피 흘리며 노동하는 일이 숨겨야 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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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리 이장 선거 후일담: 영화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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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다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이장’이란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정 구역의 단위인 ‘리(理)’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선출 방식은 지방자치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 마을마다 선출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곧 이장 선거를 앞둔 ‘이반리’도 마찬가지다. 이반리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특이한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장 선거 출마 후보에게 ‘의무 거주 기간이 없다’라는 점이다.

이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각 마을의 행정 업무 외에도 동네 사람들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한다. 가령 이반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밤새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아침마다 돌아봐야 한다. 최근 주민이 고독사한 채 오래 방치된 사건이 있어 고령층 인구가 많은 이반리에서는 최대 근심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이장 철주씨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철주씨에 대해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대다수가 권한 남용 소식뿐이다. ‘저 자식 저거, 가만두면 안 되는데!’

누군가는 생각한다. 마을에 보탬이 되지 않는 현 이장 대신, 아침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새 이장이 필요하다고. 서울서 살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 이후 고향집으로 돌아온 만옥씨 말이다.

만옥씨는 마을 사람들을 잘 돌본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민원을 제기하고, 고쳐질 때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요리를 잘하는데 나눠 먹는 건 더 잘한다. 마을 사람들의 사정도 속속들이 안다. 이장 후보로서 직무 적합성이 높고, 지원동기도 확실하다. 새로운 이장으로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반리 이장 선거에서 화제가 된 것은 만옥씨의 개인 사정이었다. 세상에, 만옥씨가 그거란다. 동성연애자!

이반리 민심은 술렁인다. 이장 뽑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 그래도 ‘그거’는 안 된다는 사람이 맞선다. 금방이라도 철주씨를 밀어내고 만옥씨를 뽑을 것 같던 이반리 사람들이 슬그머니 만옥씨를 외면한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만옥씨가 아니다. 만옥씨는 평생을 그래왔듯, 눈 부릅뜨고 맞장 뜨기로 한다. 이반리 이장 선거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양상도 비슷했다. 교육감은 지자체 교육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방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고, 당연히 공약은 그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정작 선거에서 화제가 된 내용은 교육감 후보들의 동성애 찬반 여부와 동성애 교육(?)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의식 함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하겠다는 뜻인지 기대하며 공약집을 펼쳐봤지만, 대뜸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하길래 이게 대체 교육감과 무슨 상관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상식인이라면, 기존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니 우리 다 같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보자는 내용을 기대했을 것이다. 타인의 성 정체성을 함부로 재단하다 못해, 축제마저 있는 힘껏 망치겠다는 막말 대신에.

이반리 이장 선거의 결과는 영화 <이반리 장만옥>을 통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만옥씨는 과연 이장이 됐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결말을 예상할지 궁금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 차별 없이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장 만옥씨가 있기를 바라다가도, 과연 동성애자 여성 만옥씨가 이성애자 남성 철주씨를 이길 수 있을지 내 안에서조차 견고한 차별에 한숨 쉬었다.

나는 영화의 결말과 별개로, 현실에서도 멋진 결말이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시작은 좋은 이장의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성 정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성소수자인 것이 왜 문제라고 느껴졌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자. 당신만의 이반리 이장 선거 후일담의 시작이다.

칼럼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 하였습니다.

활동이야기

 

퀴어동네가 6월 13일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함께 행진하였습니다.

활동이야기

우리가 지금 나아갈 수 있는 것들

칼럼

▲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달 ‘HIV/AIDS인권행동 알’이 주최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HIV 감염인의 노동실태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첫 보고서였다. 소수자 내에서도 소수자인 감염인 노동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 고민의 출발점은 보고서가 담아낸 현실이었다.

보고서에서는 HIV 감염인의 노동 현실에 대해 세 가지 문제점을 꼽는다. 첫째, 감염인이 확진 초기에 스스로 직장과 꿈을 포기한다. 법적으로 취업이 제한된 직종은 군인·비행기 조종사·유흥업소 종사자 단 세 가지뿐이지만, 현실에서는 공무원·보건의료·요식업 등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걸어 잠근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내적 낙인이 되어 법이 금지하기 전에 먼저 문을 닫는 것이다. 둘째, 직장 내 감염 사실 노출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 8조의2와 7조는 검진 결과 요구를 금지하고 감염인 정보의 비밀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일괄 수집하는 것이 관행이고, 감염 사실 유포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우에 대한 직접적 제재 규정은 존재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셋째, 군 면제·의가사제대 감염인 노동자가 구직 과정에서 병역 정보를 통해 감염 사실을 간접 노출당하는 문제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상 표준 이력서에 병역 사항이 없는데도 많은 기업이 수집하고 있다. 이는 감염인에게 또 다른 차별의 통로가 된다.

근본적 해결책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지만 2007년 첫 발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에이즈예방법도 마찬가지다. 감염인의 비밀보장과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으나 고용에서의 차별을 직접 금지하지 않아, 채용 탈락·해고·괴롭힘을 당했을 때 실질적 구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전파매개행위죄처럼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조항을 품고 있고, 헌법소원마저 합헌 판결이 나는 등 갈 길이 요원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장 나아갈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는 법 개정 없이도 지금 당장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다. 현행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은 괴롭힘의 유형과 예시를 세분화해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노동부가 2024년 3월 배포한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는 처음으로 ‘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옷차림을 지적하는 발언의 예시(“옷이 게이 같다”)로 들어간 것이었지만, 성소수자가 직접적인 예시로 등장한 것 자체만으로 그러한 표현이 모욕적이라는 예시임과 동시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일터 안에서 가시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모범 단체협약안에 성소수자를 포함해 화제가 됐던 민주노총 사례처럼 단체협약에 HIV 감염인을 포함해 더욱 넓게 보호하는 협약을 체결하거나, 표준취업규칙에 차별적 괴롭힘 금지 조항을 반영하고,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 내용에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사례를 포함시키는 것도 같은 방향의 변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현재 진행 중인 HIV 감염인들의 법적 대안이다. 최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는 HIV 감염인이 장애인에 해당한다며 장애등록 반려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HIV 감염은 면역기능의 손상을 수반하는 만성질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에 해당할 수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 제도 밖에 방치된 감염인의 인권 회복을 위해 제기됐다. 만일 소송과 입법 과정을 통해 감염인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상 장해 유형으로 인정된다면, 감염인 노동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채용 거부, 해고, 승진 배제, 직장내 괴롭힘 등 고용 전 과정에서의 차별에 대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멀리 있다. 그러나 법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염인 노동자들은 오늘도 출근하고 일터에서 버텨내고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가이드라인의 예시 하나, 소송의 판결 하나, 단체협약의 조항 하나, 지금 우리 손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HIV 감염인 노동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의 출발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칼럼

퀴어 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with 행성인

활동이야기

퀴어동네는 2026년 5월 29일, 행성인의 5월 정기회원모임 <노동절맞이 성소수자x노동 말하기 1회차 – 퀴어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with퀴어동네>를 진행했습니다.

1부는 50분간 임금체불과 직장내괴롭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2부는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퀴어 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with 퀴어동네에서 강의하는 스티

 

이날 강의를 맡은 스티는 “강의에 참여해 주신 분들이 현장 경험을 나눠주시고 함께 고민해볼 질문도 던져주셔서, 단순한 강의를 넘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되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활동이야기

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회

활동이야기

2026.05.21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 퀴어동네의 서이가 토론자로 참여하였습니다.

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서 발표중인 발제자들의 모습

 

서이는 ‘지금 당장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차별적 괴롭힘의 직장 내 규율, hiv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권리구제할 수 있는 대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토론회를 마친 서이는 “hiv감염인은 소수자 내에서도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노동실태조사가 나비효과가 되어 우리의 일상에도 hiv감염인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및 토론자료집 다운로드

 

 

활동이야기

우리 같이 수영 잘하는 할머니가 되면 좋겠어

칼럼

▲ 빛별 퀴어동네 회원(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요즘 수영을 다니고 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수영 잘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레일에서 함께 배우는 분들 중에는 부부가 꽤 많다. 그들을 볼 때 나 역시 애인과 함께 수영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물에 둥둥 떠 있는 이 기분을 같이 나누고, 잘 안 되는 자세를 서로 봐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애인이 데이트를 할 때 선택지로 고려되지 못하는 장소들이 있다. 수영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찜질방이나 스파, 워터파크와 ‘빠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공간들의 공통점은 탈의실과 샤워실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성별이분법적인 공간을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들이다. ‘통과’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지나쳐 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기준이나 조건을 충족해 허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시스젠더인 나에게는 전자의 의미로 쉽게 통과하는 공간이, 트랜스젠더인 내 애인에게는 후자의 의미가 된다.

10년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 내가 애인과 함께 수영장에 간 횟수는 한 손에 꼽는다. 탈의실과 샤워실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수영장. 결국 호텔 수영장뿐이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체육센터 수영장의 일일 이용권은 비회원 기준 1만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비수기라도 2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수영장은 비싼 비용을 내면 잠시 기분이라도 낼 수 있지만, 찜질방이나 워터파크는 그런 선택지조차 없다. 물론 내 애인은 찜질방이나 워터파크를 특별히 좋아할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선호하지 않아 가지 않는 것과, 애초에 선택지에서 배제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얼마 전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수오서재가 함께 진행한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 북토크에 다녀왔다. 책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스포츠였다. 패널로 참여한 루인은 “트랜스는 4년에 한 번 등장한다. 올림픽 때 말이다”라는 농담을 했다. 웃기지만 또한 서글픈 말이다.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늘 ‘논란’의 형태로만 호출된다. 대표적으로 2022년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선수권 대회 500야드 자유형에서 우승한 리아 토마스가 있다. 리아는 당시 규정에 따른 호르몬 기준을 충족해 여성 경기에 출전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보다 트랜스젠더라는 점에만 집중했다. 리아가 우승하지 못한 경기들에서는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이 리아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성기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자극적인 정보는 대서특필 되면서도, 성별정정수술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긴 회복 기간, 신체적 위험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트랜스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리아의 소속 대학인 펜실베니아 대학은 리아의 기록을 삭제했고 사과했다.

메달이나 기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보이지 않는 문지기들이 있다. 성별이분법적인 공간은 그것이 당연하고 안전한 질서인 것처럼 존재하며, 그에 맞지 않는 존재를 불온하다고 낙인찍는다.

잘못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다. 시스젠더라 해서 남·여로만 구분된 탈의실이나 샤워실이 그다지 편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몸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개별 샤워룸과 개별 탈의실이 있다면 어떨까? 무더위에 지칠 때 애인과 함께 워터파크도 가고, 날이 추워지면 찜질방에서 등을 지지며 함께 식혜를 나눠 마실 수도 있겠지. 호텔 수영장이 아니라 체육센터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배우면서, 나중에는 수영 잘하는 할머니들이 되면 참 좋겠다. 이 모든 게 상상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다.

칼럼

2026 성소수자 평등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활동이야기

성소수자 평등의날 집회에서 휘날리는 퀴어동네 깃발

 

퀴어동네가 2026.5.16.에 열린 2026 성소수자 평등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아래는 이번 평등대회 선언문입니다.

 

[517성소수자평등의날 기념 2026 성소수자 평등대회 선언문]

민주주의의 심장에서 다시 외치는 함성, 혐오를 넘어 평등을 쟁취하자!

불과 1년 전,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들은 이곳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무지개가 넘실대던 그 광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들려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은 성소수자라고, 여성이고, 장애인이며, 홈리스이자, 이주민이고, HIV 감염인이며, 학교 밖 청소년이고,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사회 가장자리로 떠밀려난 이들이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우리는 잠시 서로가 되어보았다.

우리는 윤석열 퇴진만을 외치지 않았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광장의 함성이자 시대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또다시 우리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싸운 시민”이었던 성소수자는 또다시 ‘표 떨어지는’ 문제, 나중으로 미뤄질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면 그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준이 보인다.

우리 곁에 화장실 사용을 피하려고 학교에서는 물 한 방울 마시지 않는 학생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 가족에게 쫓겨나 주거위기에 내몰리는 청소년이, 주민등록번호와 외모가 달라 일의 세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인의 혐오표현에 괴로워하는 유권자가, 평생 함께한 배우자가 죽거나 다쳐도 아무런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부부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오늘날 극우의 뿌리가 된 성소수자 차별선동 세력, 그리고 그에 굴복한 비겁한 정치를 기억한다.

서울시가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를 지우려 할 때, 군대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위협하고, 인권변호사 출신 대선후보가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를 말하며 우리를 짓밟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혐오에 맞서 싸웠고,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평등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그 과정은 어려웠지만 우리를 더욱 굳건히 서게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에, 역사의 큰 관점에서 한국사회는 느리지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보험부터 동성 부부의 권리가 인정받기 시작했고, 더 많은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 국가 통계에 성소수자의 삶이 기록되기 시작했고, 혐오에 맞서 트랜스젠더 시민의 곁에 서겠다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이 곳 광장을 가득 채운 무지갯빛 함성은, 성소수자의 평등이 우리 시대의 핵심적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어떻게 성소수자의 삶을 외면하는가. 평등을 말하면서 어떻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하는가. 빛의 혁명을 말하면서 어떻게 그곳을 가득 채웠던 우리의 목소리를 끝끝내 못 들은 체 하는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올해부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517성소수자평등의날’로 새롭게 기념한다. 혐오·차별에 맞서 싸우며 성장한 우리는, 이제 더 큰 목소리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겠다. 단순히 혐오·차별받지 않을 권리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온전한 평등과 권리를 쟁취하겠다.

이러한 각오를 담아,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동지들의 뜻을 모아 우리는 함께 외친다.

평등사회 실현하는 차별금지법 쟁취하자!

결혼제도 차별없게 혼인평등 실현하자!

신체침해 강요없는 성별인정법 제정하자!

성소수자의 권리와 평등, 우리가 쟁취하자!

혐오를 넘어 차별을 깨고, 평등으로 나아가자!

 

2026년 5월 16일 517[오일칠]성소수자평등의날 기념

2026[이천이십육] 성소수자 평등대회 참가자 일동

활동이야기

퀴어동네가 노동절 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활동이야기

퀴어동네가 2026년 5월 1일 노동절에 함께 했습니다. 투쟁!

퀴어동네 회원들이 노동절 집회 현장에서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활동이야기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칼럼

▲ ○○ 퀴어동네 운영위원

“선생님, 법으로 인정되든 인정되지 않든 선생님의 경험, 감정은 다 진짜예요. 그게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에요. 법은 진실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증거에 따라 누구 말이 더 그럴듯한지를 판단하는 거예요. 그리고 법은 보수적이잖아요.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를 탓하지는 마세요.”

누군가의 사건을 대리할 때면 늘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건네기 위함이고, 앞으로 진행될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물론 말뿐이다. 법이 왜 이따위냐고, 억울하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사람 앞에선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도 이해가 안 돼요.’ ‘법을 함께 바꿔요.’ 여러 문장이 떠오르지만 결국 입 밖으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나온다.

“그러니깐 제가 원하는 건 걔가 제 삶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그거면 돼요.”

얼마 전 예전 애인의 스토킹으로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 변호사님은 친절했고, 전문적이었다. ‘너무 안타깝지만’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못 하게 하거나 어떤 장소에 못 오게 할 수는 없고,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장소에 나타났을 때 조치할 수는 있다고 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려면 피해자의 개인정보, 그러니깐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가해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 한계지만’ 아웃팅을 하겠다고 미리 이야기하면 협박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지만, 이미 아웃팅을 해버렸다면 아무런 법적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웃음이었는지, 한숨이었는지 모르겠다. 입 밖으로 큰 숨이 나왔다. ‘아 맞다. 법은 이런 거였지.’

법이 진실과 무관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법의 판단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억울했다. 무력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고, 법에서조차 괜찮다는데 나 혼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처럼 울었다.

법이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법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병가제도가 없는 점, 기간제 노동자도 매달 개근해야 하루의 휴가가 생긴다는 점 등 현행 노동법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들이 있다. 아픈데 개인 연차를 쓰는 건 너무 부당기하다는 말에, 기간제 노동자는 가족여행도 못 가는 게 말이 되냐는 질문에 나 역시도 부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부당함과 억울함은 누가 뭐래도 정당하다.

게다가 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평등한 방향으로, 공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투쟁을 해왔고, 근로기준법상 병가제도 도입에 대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언젠가 차별금지법은 제정될 것이고, 병가제도도 만들어질 것이며, 노동자의 휴가는 폭넓게 보장될 것이다. 중요한 건 ‘언제’다. 그리고 ‘그때’가 올 때까지 부재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짊어지고 있느냐다. 법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자들은 이 부재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오롯이 법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아마 본인이 직접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법의 부재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막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정말 간절하게 필요로 할 때, 부재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아웃팅을 규제할 법이 없다는 변호사의 답변을 들었을 때, 타인의 자유를 무한히 제한할 순 없지 않냐는 법률 답변을 들었을 때, 실감났다. 차별금지법의 부재가. 처음엔 그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재가 확실해지면, 본인의 감각과 경험을 의심하게 된다. 마치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 같고,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과정은 우리를 천천히 으스러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결국은 침묵하게 한다. 너무 너무 화가 난다. 더 시끄럽게 떠들고 싶다. 이 부당함이 정당하게 들릴 때까지. 그래서 지금 당장, 법이 바뀔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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