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고른 향의 성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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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연(란다)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봄에는 블루벨, 여름에는 연못, 가을에는 오렌지, 겨울에는 낡은 종이인 것은 무엇일까? 제철 음식도, 지역별 축제명도 아니다. 내가 계절별로 주로 쓰는 향수의 향조다. 사람마다 향수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르다. 계절에 따라 바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날의 날씨나 온도에 맞춰 고르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자신과 잘 어울리는 향을 고르지만, 때로는 기존에 갖지 못한 이미지를 나타내고 싶어서 색다른 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목적이든, 향수는 개인이 자신만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도구가 된다. 내가 향수 탐험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성분들은 이런 향이 잘 어울려요. 요즘은 남성적인 향도 많이 찾으시긴 해요.”

향수를 시향하러 매장을 찾았는데 코 대신 귀가 따가웠다. 어려운 외국어로 표기된 향수의 향조를 알고 싶어 물어봤는데, 직원에게서 돌아온 답은 향의 성별이었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직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돌려 물었다. 저는 기존에 시도해 보지 않은 향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향의 성별 대신 어떤 원료가 주로 쓰였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중성적인 향 찾고 계시는 거예요? 요즘은 중성적인 향이 잘 나가죠!”

여자도 남자도 아니면 중성이 되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중성적인 향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전적 의미를 고려해 보자면 특정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향을 의미할 터였다. 바꿔 생각하면 애초에 향조마다 성별에 따른 기준이 전제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성적인 플로럴 향과 남성적인 우디 향을 밀어내고 떡하니 자리 잡은 중성적인 시트러스 향과 그린 향에서는 어쩐지 떨떠름한 냄새가 났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린 들판에 쓸쓸하게 서 있는 앙상한 나무 향 좋아하세요?”

결국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던 나를 붙잡은 곳이 있었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매장이었다. 향수 전문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진열된 향수가 있었기에 궁금해서 기웃거리던 내게 다가온 직원이 시향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성별 이분법적인 표현이 없는 설명 방식이었다. 심지어 향을 이루고 있는 원재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듣는 사람이 그 향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다듬어진 표현이어서, 감탄하며 물어봤다. 어떻게 전문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다양하게 준비할 수 있었는지를.

해당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제품을 안내하기 위한 교육을 할 때, 고객의 성별이나 나이 등을 언급하지 않고 해당 제품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대답하는 그에게서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적절한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일하는 일터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이에게서 보이는 보람찬 표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들렀던 향수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몇몇 곳은 공식 홈페이지에서조차 성별에 따라 제품을 나누어 뒀다. 상세 설명에도 ‘남성적인’ ‘여성적인’이라는 표현이 곳곳에 등장했다. 내가 매장에서 직원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불편함은 그의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성적’이라는 표현이 실은 누군가가 대안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쓰기 시작한 단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무사로서 노동 현장에서 차별적이거나 혐오 표현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대안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드물었다. 불과 얼마 전에 ‘모성보호제도’라는 단어의 적절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성차별적이니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정도에서 그쳐버린 것도 떠올랐다. 그 표현이 왜 적절하지 않은지, 어떤 방향으로 고민해야 좋을지 더 생각해 보자던 스스로의 다짐도 떠올랐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대안을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그 노력에는 한겨울의 향을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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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교실을 만드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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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교실의 공기가 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몸짓이 여성스럽거나 목소리 톤이 높으면 “게이 같다” “쟤는 (트랜스)젠더다” 같은 말들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조금 튀거나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는 가차 없이 멸칭이 붙었고, 그 거친 장난의 화살이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성소수자 정체성은 어느 날 완성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다듬어 가는 역동적인 여정이라고들 한다. 특히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사회와 첫 관계를 맺는 10대 시절에 학교와 또래로부터 지지와 수용을 받는 긍정적 경험은 안정된 자아를 형성하는 데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69.0%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통계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배재고 사태 등 교실 안팎에서 혐오 발언 사태가 이슈화되자, 교육부는 학교 현장의 표준적인 ‘혐오·차별 표현 예방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서의 초안을 활용했는데, 해당 초안에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모욕·비하를 금지하고, 아웃팅 예방과 학교의 2차 피해 방지 지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 가이드북 최종안에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통째로 도려내졌다. 검토위원 대다수가 “정부가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며 반발했지만, 교육부는 묵살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이유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비겁했다. “반대 민원 등으로 학교 배포가 부담스럽다는 시·도교육청 입장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 교사들이 마주하는 민원의 압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며 쏟아지는 악성 민원 앞에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립감은 이들의 노동을 위태롭게 만든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민원의 무게를, 국가가 취약한 학생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알리바이’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 민원이 쏟아진다고 해서 지침서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한 교육부의 행태는 최소한의 원칙조차 저버리는 것이며,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된다고 정부가 공식적인 승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육부의 비겁한 행태에 단호하게 맞서며, 성소수자 혐오 대응 지침이 온전히 가이드북에 담기도록 요구해야 한다. 혐오가 심각할수록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껄끄럽고 귀찮은 현실을 간단히 옆으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민원 앞에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가이드북 한 권으로 교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원칙과 기준이 버텨줄 때, 비로소 교실 안에서 부당함에 맞서는 교사와 학생들의 작지만 소중한 실천들이 싹틀 수 있다. 친구가 겪는 괴로움에 함께 분노하고, 멸칭에 같이 맞서 사과를 받아내며, 소수자 곁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 구체적인 연대의 경험. 그러한 일상의 경험들이 하나둘 쌓여갈 때 비로소 교실의 차가운 공기는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가 지워버린 가이드북을 되찾아오는 일은, 아이들이 더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을 지켜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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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시만, 안녕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봉인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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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별 퀴어동네 회원(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R이 퇴사했다. R의 직업은 아주 특별했다. 한국에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R이 유일했다. R의 직업은 퀴어아키비스트였다. 2009년 퀴어락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R은 퀴어락의 유일한 담당자였다. R의 퇴사와 함께 국내 유일의 퀴어 아카이브인 퀴어락은 잠시 ‘봉인’된다고 한다. 퀴어락이 휴업도 폐업도 아닌 ‘봉인’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가늠해 봤다. 휴업이라기에는 퀴어락이 언제 다시 운영을 재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퀴어락의 폐업만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R이 퀴어락 퇴사를 결심한 데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명료한 이유는 퀴어락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퀴어락을 품어 온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지속적인 재정 위기 속에서 상근활동가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고, R 역시 퀴어락과 재단을 지켜 내기 위해 퇴사를 택했다.

내가 R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었다. 한 대중강의 자리에서 만난 R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후 퀴어락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 R과 많이 가까워졌다. R은 나에게 퀴어락 자료의 디지타이징을 맡겼다. 오래된 스캐너로 자료를 스캔하는 일이었다. 자동급지 기능을 사용하거나 스캔 해상도를 낮춘다면 더 많은 자료를 더 빨리 스캔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자료 보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R은 느리더라도 한 장 한 장 선명하게 작업하자고 했다.

퀴어락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지켜본 R의 하루는 쉴 틈 없이 바빴다. R은 기증받거나 직접 발굴한 자료를 꼼꼼하게 살폈다. 사진은 한 장씩 확인하며 직접 모자이크 작업을 했다. 자료의 출처·기증자·생산 시기뿐만 아니라 해당 자료가 만들어진 사회적 맥락과 고유한 의미를 짚어 내고, 다른 기록물과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추적해 등록했다. 등록한 자료를 고유한 분류체계에 따라 라벨링하고, 필요한 경우 복본을 만들거나 디지털화해 백업본을 만들고 백업의 백업을 또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문객을 맞아 소장 기록물에 대해 설명했고, 틈틈이 문의 메일에 답변했다.

퀴어락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기록이 저절로 역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 기록을 모으는 사람, 기록의 의미를 찾는 사람,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또 다른 기록을 만드는 사람. 수많은 사람의 집요하고 애정 어린 노동이 켜켜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퀴어락이 성소수자의 어제와 오늘을 집요하게 기록하며 역사를 쌓아 왔다면,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편견 없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수많은 퀴어 연구와 창작, 소모임을 지원하면서 내일을 열어 왔다. 퀴어락이 지금까지 역사를 쌓아 올 수 있었던 것도 비온뒤무지개재단 덕분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 소중한 토양이 됐다.

하지만 공적 지원 없이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단체가 넉넉하기는 어렵다. 재정 위기는 결국 비온뒤무지개재단에 쉬이 가시지 않을 먹구름을 드리웠고, 퀴어락은 ‘봉인’이라는 절박한 선택을 했다.

하루빨리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먹구름이 걷히고, 그 이름대로 비 온 뒤 무지개가 뜨기를 바란다. 퀴어락의 봉인이 끝나 다시 살아 숨 쉬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비가 온 뒤 더 굳어지는 땅처럼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더 단단한 퀴어 인권운동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단단해진 토대 위에서 퀴어락의 봉인이 해제되고, 퀴어락 서재가 다시 바쁘게 돌아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9월5일 [2026 앨라이먼스 특별 프로그램] TEXT OUT에서 퀴어락 봉인전이 열립니다. 퀴어락의 봉인이 아쉬운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비온뒤무지개재단 누리집(https://rainbowfoundation.co.kr/posts/ZktaGxG)을 참고해 주세요.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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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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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그거 따지는 순간, 우리 비즈니스 못해.”

민서(가명)씨는 유럽산 자동차 회사인 ㄱ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전화 상담사로 일하는 하청노동자다. 어느 날 회사 이사와의 면담에서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 이사가 말하는 ‘그거’란 몇 달 전에 민서씨가 겪은 성추행을 말한다. 원청과 하는 회식자리에서 원청 직원 하나가 내내 추잡스럽게 굴다가 회식이 끝나고 나서도 민서씨를 계속 쫓아왔고 “호텔로 가자”며 거절하는 민서씨를 완력으로 이끌었다. 민서씨는 공포스러운 순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회사에 사실을 알렸다.

이 일로 원청 ㄱ자동차 회사의 임원이 직접 민서씨를 찾아왔다. 민서씨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가벼운’ 식사 자리니까 참석해 달라는 상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원청 임원은 추행 직원을 회사 내규로 확실하게 징계할 테니 경찰 신고만큼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석했던 상사는 “덕분에 맛있는 거 먹고 하니 좋다”며 원청 임원의 기분을 맞췄다. 민서씨는 그날 급체를 했고 집에 와 먹은 것을 전부 토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징계하겠다던 원청 임원의 약속만큼은 굳게 믿었다. 하청 상담사들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는 “내부감사팀이 직접 조사해서 징계한대” “외국계 큰 기업이라 역시 다르네”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원청 직원이 징계받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부서로 이동하라는 인사발령이 민서씨에게 내려졌다. 지금 있는 ㄱ자동차 부서보다 급여도 낮고 근무환경이 열악한 부서였다. 담당 이사는 면담에서 원청 ㄱ자동차가 민서씨를 콕 집어서 “업무에서 빼라”라고 했다는 것을 실토했다. 민서씨가 “원청에 부당하다고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더니 하청 이사에게서 돌아온 것은 “그거 따지는 순간, 비즈니스 망가진다” “왜 그걸 회사에서 따져줘야 하냐”는 말이었다.

원청과 하청은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폭력을 못 본 척하는 데 공모하며 끈끈한 비즈니스를 이어갔다. 원청 임원은 딸이 둘이나 있는 자기 직원이 ‘고작’ 하청 직원 때문에, 한 번의 ‘실수’로 경력을 망치는 게 안타까웠을 것이다. 하청 이사는 ‘이런 일’로 원청과의 ‘비즈니스’를 망치게 될까 봐 억울해했다. 대화 중에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라고 말한 사람은 놀랍게도 민서씨가 아니라 하청 이사였다. 민서씨는 결국 다른 부서로 쫓겨가야 했다.

원청과 하청은 민서씨를 자리에서 없애면 성추행이 없던 일이 될 거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상담사가 자신들이 정해놓은 매뉴얼 밖에서도 목소리를 낼 줄 알고, 부당함에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 같다. 민서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함을 호소했고, 심문회의에 나온 하청 이사는 불쾌해 죽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민서씨를 시야 밖으로 밀어낸 것은 원청과 하청만이 아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회사가 직접 사건을 조사하고 징계 등의 조치를 할 의무를 정하고 있지만, 하청 직원에게 행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직장갑질119는 올해 여성의날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직장내 성희롱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사각지대란 엄연히 존재하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공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폭력이 있지만 우리 법이 애써 보지 않는 공간을 말한다. 민서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들이 수시로 겪는 일이지만 ‘직장내 성희롱’이라는 언어를, 수단을 주고 있지 않은 게 아직 우리 법의 수준이다.

민서씨는 결국 원래의 부서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민서씨는 사건을 개인의 억울함으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 앞으로 다른 피해자들이 또 생기지 않게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기회가 되면 불러달라고 말했다.

약자의 말하기는 종종 무모해 보인다. 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말하기도 그냥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든 어디론가 가서 싹을 틔운다. 지금, 법이 애써 목소리를 주지 않는 곳에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제도의 변화는 늘 그런 무모한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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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이라는 선물, 자연은 퀴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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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리 퀴어동네 운영위원

최근에 둘째 강아지를 입양했다. 어떻게 보면 작은 도베르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다리가 긴 닥스훈트 같기도 하다. 흔히 도베르만은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닥스훈트는 애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강아지에게 ‘히로’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히로는 먹보, 오줌싸개, 주인바라기, 애교쟁이 등 특정 종의 속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히로는 견종의 모호성을 토대로 히로만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고, 이에 “히로는 퀴어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은 그의 저서 <자연은 퀴어하다>를 통해 “퀴어는 오늘날 문화에서 정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성 및 성별 범주를 가리키는 데 주로 쓰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탈인가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이 셋 이상인 균류, 까마귀의 동성 동반자 관계, 달팽이와 장어의 간성 몸을 토해 퀴어함을 끊임없이 발견한다. 이러한 다양성으로부터 소위 ‘모순’으로 평가되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참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고 엮여 있어 구별되지 않으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는 특정한 상자나 규정에 순응하라고 강요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특정한 상자나 규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으면 비정상으로 여기고, 틀린 것으로 취급된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라 함은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1일 최소 8시간의 노동을 할 수 있으며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비슷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옆을 둘러보자. 아니,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매일 아침 영양제를 때려 넣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로 출근하며 꾸역꾸역 8시간은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제서야 휴식과 자유를 누린다. 완벽한 노동자, 완벽한 여성, 완벽한 남성 등 특정 상자나 규정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긋나 있다.

이러한 어긋남과 모호성은 위로가 된다. 서로가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틀을 끊임없이 넘어 다니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쩌면 틀 밖에 있는 존재가 나 하나뿐이 아니라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덜 외롭다. 다른 존재들도 나처럼 본인이 완벽하게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불안과 욕망이 우리의 얽힘과 꼬임, 그리고 엮임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살 만해진다.

지난달 이 책으로 퀴어동네에서 책모임을 진행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모두가 이 책의 멋진 부분으로 뽑았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저자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자녀에게 보여준 성교육 영상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둘은 마주보고 서서 섬세한 눈자루로 서로를 탐색하다 첫 접촉에 움찔한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이 감각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 처음에는 멋쩍은 몸수색을 벌이지만 이내 대담하게 상대방의 몸을 더듬는다. 둘은 껍데기를 이용하여 똑바로 서서 하체를 딱 붙인 채 눈자루와 촉수로 서로 어루만진다. 모든 것이 부드럽고 모든 것이 탐색하고 모든 것이 느끼고 미끄러지고 쓰다듬는다. (…) 그는 파트너를 이렇게 대접하고 파트너에게 이렇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의하에, 느리게, 상호적으로, 반응하며, 민감하게. 나도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장면의 달팽이는 퀴어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느 쪽이 암컷이고 어느 쪽이 수컷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달팽이가 둘 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둘 다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탓에 달팽이의 행동은 더 유연하고 더 무궁무진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 달팽이는 닳아빠진 대본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미끌미끌한 새 악보를 본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그 자체로 완벽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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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에 맞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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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 퀴어동네 회원

한동안 출근길이 괴로웠다. 단순히 피곤해서는 아니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동성애는 죄악’이라 쓰여 있는 커다란 팻말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지하철 플랫폼을 누볐다. 그저 걸어 다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는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여기를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 중에도 분명 이 상황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텐데, 상처받거나 화가 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무엇을? 처음 생각한 해결책은 큰 소리로 되받아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랬다가 싸움이 붙는 건 아닐까? 나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은 그가 갑자기 화를 내며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를 도와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나도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기에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A를, B를, 그리고 C를 돌려봤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은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역무원에게 신고하면 되잖아! 그렇지만 그것도 꺼림칙했다. 제재를 한다면 무슨 이유로 하게 되는 거지? 혐오표현을 한다는 이유로? 혐오표현으로 보기는 할까? 아니면 큰 소리로 떠들어서? 사실 소리로는 그냥 커다란 말소리일 뿐인데. 지하철에서 피케팅이나 서명운동을 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활동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이 될 수 있을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 내용을 보면서였다. 누군가는 ‘가짜뉴스방지법’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입틀막법’이라 부르는 이 법은 ‘불법정보’와 ‘허위조작정보’의 온라인 유통을 제한하는 법으로, 네이버·카카오·디시인사이드·구글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응 의무를 지운다. 불법정보나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이 법과 관련된 논란의 중심은 ‘허위조작정보’지만,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왔다. 유통이 금지되는 ‘불법정보’의 개념에 ‘공공연하게 인종, 국가, 지역,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직접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가 추가된 것이다. 일종의 ‘온라인 혐오표현금지법’이다. 물론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같은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다.

지인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매우 아쉬워했다. 포함되지 않은 것 자체가 이 사회의 자의적인 기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도 문제라 느끼지만, 그렇다고 포함됐다고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별을 선동하는 불법정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플랫폼, 민간 팩트체크 기구, 그리고 법원이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과 같은 관점에서 판단할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들이 차단될 가능성도 높다. 소수의견은 주류 의견에 도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보가 되는 반면, 온갖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지만 사회의 상식처럼 유통되는 내용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쉽다. 페이스북이 페미니즘이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내리는 일이 있었고, 네이버가 동성애 커뮤니티를 ‘이상성애’로 분류하며 검색어에서 제외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차별과 혐오를 뚫고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단, 차별과 혐오를 함께 뚫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행동과 연대가 있다면. 법은 소수자의 편이 아닐 때가 대부분이고, 우리가 믿을 것은 변화를 염원하는 서로의 열망뿐이다. 법은 그런 열망과 행동을 보여줄 때에야 늘 뒤늦게 따라왔다. 만약 지하철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는 시나리오 D를 쓸 것이다. 그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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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몸으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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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소순) 퀴어동네 운영위원

출근길에 아랫배가 슬슬 아파 왔다.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이상하다 싶던 차에 생리주기 앱을 켜 보니 배란일 전날이었고, 아픈 건 배란통 때문이었다. 문득 매일 같은 일터에 출근하지만 매일 같은 몸으로 출근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생긴 배란통과 더불어 내 몸에는 생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생리 전 증후군으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생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는다. 생리 양은 많고 기간도 긴 와중에, 잇몸은 헐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계산해 보면 한 달 중 생리 영향권 밖에 있는 날은 길어야 열흘 남짓이다.

일정이 생길 때면 자연스레 생리주기 앱을 열어 몸의 시간표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 심문회의가 있는 날, 강의하는 날, 장거리 출장을 가는 날이면 그날 생리통이 심하지는 않을지, 생리 양이 많지는 않을지 따져본다. 제때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생리가 새는 참사가 일어날까 봐 어느 타이밍에 화장실에 들르면 좋을지도 고민해 본다. 진통제를 챙기고, 없으면 사고, 충분한 생리대를 챙기고, 생리가 새더라도 티 나지 않을 옷을 고르고, 때로는 여벌의 속옷을 챙기기도 한다. 몸의 시간표에 따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런 일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피 흘리며 노동하기 위한 노동’이라고.

그나마 나는 대부분 곧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지만, 화장실을 제때 갈 수 없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아찔해진다. 2021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에서 본 인터뷰들이 떠오른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으니 대부분 대형이나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착용하고 근무한다는 건설노동자, 내리 6시간 운전을 마치자마자 생리혈이 쏟아졌다는 철도 운전사,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앉아 있던 방석에 생리혈이 새어 나와 묻었다는 학습지 교사. 피 흘리는 것은 지극히 보통의 경험인데, 일터에서는 마치 노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처럼 느껴진다.

일터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노동에만 집중할 뿐 그 노동을 수행하는 ‘몸’이 피 흘리며 매일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생리휴가는 원칙적으로 무급이고, 심지어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생리하는 몸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기에 우리는 피 흘리는 우리의 몸이 노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일터는 한 번도 피 흘려본 적 없고,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 노동자’로 상정해 설계됐다. 이 때문에 생리를 비롯한 여성노동자의 신체적 특성은 늘 주류에서 배제되거나, 기껏해야 시혜적인 제도로 메워야 하는 ‘취약성’으로 취급되곤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몸은 규격화된 부품이 아니다. 노동하는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터는 필연적으로 특정 집단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할 뿐이다.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피 흘리는 몸이 일터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일터가 피 흘리는 몸도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생리대를 적절하게 교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생리휴가를 필요한 모두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당연히 마련돼야 한다.

가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칸에 탄 여성들 가운데도 누군가는 생리통을 참고 출근하고, 누군가는 생리혈이 새지 않을지 신경 쓰며 서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 모를 이들과 출근길의 고단함을 공유하고 응원하며, 더 이상 피 흘리며 노동하는 일이 숨겨야 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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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리 이장 선거 후일담: 영화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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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다 공인노무사(퀴어동네 회원)

‘이장’이란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정 구역의 단위인 ‘리(理)’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선출 방식은 지방자치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 마을마다 선출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곧 이장 선거를 앞둔 ‘이반리’도 마찬가지다. 이반리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특이한 예외 조항이 있는데, 이장 선거 출마 후보에게 ‘의무 거주 기간이 없다’라는 점이다.

이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각 마을의 행정 업무 외에도 동네 사람들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한다. 가령 이반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밤새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아침마다 돌아봐야 한다. 최근 주민이 고독사한 채 오래 방치된 사건이 있어 고령층 인구가 많은 이반리에서는 최대 근심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이장 철주씨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철주씨에 대해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대다수가 권한 남용 소식뿐이다. ‘저 자식 저거, 가만두면 안 되는데!’

누군가는 생각한다. 마을에 보탬이 되지 않는 현 이장 대신, 아침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새 이장이 필요하다고. 서울서 살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 이후 고향집으로 돌아온 만옥씨 말이다.

만옥씨는 마을 사람들을 잘 돌본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민원을 제기하고, 고쳐질 때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요리를 잘하는데 나눠 먹는 건 더 잘한다. 마을 사람들의 사정도 속속들이 안다. 이장 후보로서 직무 적합성이 높고, 지원동기도 확실하다. 새로운 이장으로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반리 이장 선거에서 화제가 된 것은 만옥씨의 개인 사정이었다. 세상에, 만옥씨가 그거란다. 동성연애자!

이반리 민심은 술렁인다. 이장 뽑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 그래도 ‘그거’는 안 된다는 사람이 맞선다. 금방이라도 철주씨를 밀어내고 만옥씨를 뽑을 것 같던 이반리 사람들이 슬그머니 만옥씨를 외면한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만옥씨가 아니다. 만옥씨는 평생을 그래왔듯, 눈 부릅뜨고 맞장 뜨기로 한다. 이반리 이장 선거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양상도 비슷했다. 교육감은 지자체 교육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방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고, 당연히 공약은 그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정작 선거에서 화제가 된 내용은 교육감 후보들의 동성애 찬반 여부와 동성애 교육(?)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의식 함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하겠다는 뜻인지 기대하며 공약집을 펼쳐봤지만, 대뜸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하길래 이게 대체 교육감과 무슨 상관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상식인이라면, 기존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니 우리 다 같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보자는 내용을 기대했을 것이다. 타인의 성 정체성을 함부로 재단하다 못해, 축제마저 있는 힘껏 망치겠다는 막말 대신에.

이반리 이장 선거의 결과는 영화 <이반리 장만옥>을 통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만옥씨는 과연 이장이 됐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결말을 예상할지 궁금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다. 대한민국 어딘가에 차별 없이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장 만옥씨가 있기를 바라다가도, 과연 동성애자 여성 만옥씨가 이성애자 남성 철주씨를 이길 수 있을지 내 안에서조차 견고한 차별에 한숨 쉬었다.

나는 영화의 결말과 별개로, 현실에서도 멋진 결말이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시작은 좋은 이장의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성 정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성소수자인 것이 왜 문제라고 느껴졌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자. 당신만의 이반리 이장 선거 후일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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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함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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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동네가 6월 13일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함께 행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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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나아갈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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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달 ‘HIV/AIDS인권행동 알’이 주최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HIV 감염인의 노동실태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첫 보고서였다. 소수자 내에서도 소수자인 감염인 노동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 고민의 출발점은 보고서가 담아낸 현실이었다.

보고서에서는 HIV 감염인의 노동 현실에 대해 세 가지 문제점을 꼽는다. 첫째, 감염인이 확진 초기에 스스로 직장과 꿈을 포기한다. 법적으로 취업이 제한된 직종은 군인·비행기 조종사·유흥업소 종사자 단 세 가지뿐이지만, 현실에서는 공무원·보건의료·요식업 등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걸어 잠근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내적 낙인이 되어 법이 금지하기 전에 먼저 문을 닫는 것이다. 둘째, 직장 내 감염 사실 노출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 8조의2와 7조는 검진 결과 요구를 금지하고 감염인 정보의 비밀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일괄 수집하는 것이 관행이고, 감염 사실 유포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우에 대한 직접적 제재 규정은 존재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셋째, 군 면제·의가사제대 감염인 노동자가 구직 과정에서 병역 정보를 통해 감염 사실을 간접 노출당하는 문제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상 표준 이력서에 병역 사항이 없는데도 많은 기업이 수집하고 있다. 이는 감염인에게 또 다른 차별의 통로가 된다.

근본적 해결책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지만 2007년 첫 발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에이즈예방법도 마찬가지다. 감염인의 비밀보장과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으나 고용에서의 차별을 직접 금지하지 않아, 채용 탈락·해고·괴롭힘을 당했을 때 실질적 구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전파매개행위죄처럼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조항을 품고 있고, 헌법소원마저 합헌 판결이 나는 등 갈 길이 요원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장 나아갈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는 법 개정 없이도 지금 당장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다. 현행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은 괴롭힘의 유형과 예시를 세분화해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노동부가 2024년 3월 배포한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는 처음으로 ‘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옷차림을 지적하는 발언의 예시(“옷이 게이 같다”)로 들어간 것이었지만, 성소수자가 직접적인 예시로 등장한 것 자체만으로 그러한 표현이 모욕적이라는 예시임과 동시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일터 안에서 가시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모범 단체협약안에 성소수자를 포함해 화제가 됐던 민주노총 사례처럼 단체협약에 HIV 감염인을 포함해 더욱 넓게 보호하는 협약을 체결하거나, 표준취업규칙에 차별적 괴롭힘 금지 조항을 반영하고,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 내용에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사례를 포함시키는 것도 같은 방향의 변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현재 진행 중인 HIV 감염인들의 법적 대안이다. 최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는 HIV 감염인이 장애인에 해당한다며 장애등록 반려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HIV 감염은 면역기능의 손상을 수반하는 만성질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에 해당할 수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 제도 밖에 방치된 감염인의 인권 회복을 위해 제기됐다. 만일 소송과 입법 과정을 통해 감염인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상 장해 유형으로 인정된다면, 감염인 노동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채용 거부, 해고, 승진 배제, 직장내 괴롭힘 등 고용 전 과정에서의 차별에 대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멀리 있다. 그러나 법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염인 노동자들은 오늘도 출근하고 일터에서 버텨내고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가이드라인의 예시 하나, 소송의 판결 하나, 단체협약의 조항 하나, 지금 우리 손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HIV 감염인 노동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의 출발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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