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영을 다니고 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수영 잘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레일에서 함께 배우는 분들 중에는 부부가 꽤 많다. 그들을 볼 때 나 역시 애인과 함께 수영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물에 둥둥 떠 있는 이 기분을 같이 나누고, 잘 안 되는 자세를 서로 봐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애인이 데이트를 할 때 선택지로 고려되지 못하는 장소들이 있다. 수영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찜질방이나 스파, 워터파크와 ‘빠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공간들의 공통점은 탈의실과 샤워실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성별이분법적인 공간을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들이다. ‘통과’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지나쳐 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기준이나 조건을 충족해 허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시스젠더인 나에게는 전자의 의미로 쉽게 통과하는 공간이, 트랜스젠더인 내 애인에게는 후자의 의미가 된다.
10년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 내가 애인과 함께 수영장에 간 횟수는 한 손에 꼽는다. 탈의실과 샤워실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수영장. 결국 호텔 수영장뿐이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체육센터 수영장의 일일 이용권은 비회원 기준 1만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비수기라도 2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수영장은 비싼 비용을 내면 잠시 기분이라도 낼 수 있지만, 찜질방이나 워터파크는 그런 선택지조차 없다. 물론 내 애인은 찜질방이나 워터파크를 특별히 좋아할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선호하지 않아 가지 않는 것과, 애초에 선택지에서 배제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얼마 전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수오서재가 함께 진행한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 북토크에 다녀왔다. 책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스포츠였다. 패널로 참여한 루인은 “트랜스는 4년에 한 번 등장한다. 올림픽 때 말이다”라는 농담을 했다. 웃기지만 또한 서글픈 말이다.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늘 ‘논란’의 형태로만 호출된다. 대표적으로 2022년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선수권 대회 500야드 자유형에서 우승한 리아 토마스가 있다. 리아는 당시 규정에 따른 호르몬 기준을 충족해 여성 경기에 출전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보다 트랜스젠더라는 점에만 집중했다. 리아가 우승하지 못한 경기들에서는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이 리아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성기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자극적인 정보는 대서특필 되면서도, 성별정정수술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긴 회복 기간, 신체적 위험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트랜스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리아의 소속 대학인 펜실베니아 대학은 리아의 기록을 삭제했고 사과했다.
메달이나 기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보이지 않는 문지기들이 있다. 성별이분법적인 공간은 그것이 당연하고 안전한 질서인 것처럼 존재하며, 그에 맞지 않는 존재를 불온하다고 낙인찍는다.
잘못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다. 시스젠더라 해서 남·여로만 구분된 탈의실이나 샤워실이 그다지 편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몸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개별 샤워룸과 개별 탈의실이 있다면 어떨까? 무더위에 지칠 때 애인과 함께 워터파크도 가고, 날이 추워지면 찜질방에서 등을 지지며 함께 식혜를 나눠 마실 수도 있겠지. 호텔 수영장이 아니라 체육센터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배우면서, 나중에는 수영 잘하는 할머니들이 되면 참 좋겠다. 이 모든 게 상상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다.
무지개가 넘실대던 그 광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들려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은 성소수자라고, 여성이고, 장애인이며, 홈리스이자, 이주민이고, HIV 감염인이며, 학교 밖 청소년이고,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사회 가장자리로 떠밀려난 이들이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우리는 잠시 서로가 되어보았다.
우리는 윤석열 퇴진만을 외치지 않았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광장의 함성이자 시대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또다시 우리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싸운 시민”이었던 성소수자는 또다시 ‘표 떨어지는’ 문제, 나중으로 미뤄질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면 그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준이 보인다.
우리 곁에 화장실 사용을 피하려고 학교에서는 물 한 방울 마시지 않는 학생이 있다, 커밍아웃 이후 가족에게 쫓겨나 주거위기에 내몰리는 청소년이, 주민등록번호와 외모가 달라 일의 세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인의 혐오표현에 괴로워하는 유권자가, 평생 함께한 배우자가 죽거나 다쳐도 아무런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부부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오늘날 극우의 뿌리가 된 성소수자 차별선동 세력, 그리고 그에 굴복한 비겁한 정치를 기억한다.
서울시가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를 지우려 할 때, 군대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위협하고, 인권변호사 출신 대선후보가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를 말하며 우리를 짓밟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혐오에 맞서 싸웠고,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평등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그 과정은 어려웠지만 우리를 더욱 굳건히 서게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에, 역사의 큰 관점에서 한국사회는 느리지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보험부터 동성 부부의 권리가 인정받기 시작했고, 더 많은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다. 국가 통계에 성소수자의 삶이 기록되기 시작했고, 혐오에 맞서 트랜스젠더 시민의 곁에 서겠다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이 곳 광장을 가득 채운 무지갯빛 함성은, 성소수자의 평등이 우리 시대의 핵심적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어떻게 성소수자의 삶을 외면하는가. 평등을 말하면서 어떻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하는가. 빛의 혁명을 말하면서 어떻게 그곳을 가득 채웠던 우리의 목소리를 끝끝내 못 들은 체 하는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올해부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517성소수자평등의날’로 새롭게 기념한다. 혐오·차별에 맞서 싸우며 성장한 우리는, 이제 더 큰 목소리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겠다. 단순히 혐오·차별받지 않을 권리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온전한 평등과 권리를 쟁취하겠다.
“선생님, 법으로 인정되든 인정되지 않든 선생님의 경험, 감정은 다 진짜예요. 그게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에요. 법은 진실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증거에 따라 누구 말이 더 그럴듯한지를 판단하는 거예요. 그리고 법은 보수적이잖아요.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를 탓하지는 마세요.”
누군가의 사건을 대리할 때면 늘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건네기 위함이고, 앞으로 진행될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물론 말뿐이다. 법이 왜 이따위냐고, 억울하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사람 앞에선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도 이해가 안 돼요.’ ‘법을 함께 바꿔요.’ 여러 문장이 떠오르지만 결국 입 밖으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나온다.
“그러니깐 제가 원하는 건 걔가 제 삶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그거면 돼요.”
얼마 전 예전 애인의 스토킹으로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 변호사님은 친절했고, 전문적이었다. ‘너무 안타깝지만’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못 하게 하거나 어떤 장소에 못 오게 할 수는 없고,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장소에 나타났을 때 조치할 수는 있다고 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려면 피해자의 개인정보, 그러니깐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가해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 한계지만’ 아웃팅을 하겠다고 미리 이야기하면 협박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지만, 이미 아웃팅을 해버렸다면 아무런 법적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웃음이었는지, 한숨이었는지 모르겠다. 입 밖으로 큰 숨이 나왔다. ‘아 맞다. 법은 이런 거였지.’
법이 진실과 무관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법의 판단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억울했다. 무력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고, 법에서조차 괜찮다는데 나 혼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처럼 울었다.
법이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법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병가제도가 없는 점, 기간제 노동자도 매달 개근해야 하루의 휴가가 생긴다는 점 등 현행 노동법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들이 있다. 아픈데 개인 연차를 쓰는 건 너무 부당기하다는 말에, 기간제 노동자는 가족여행도 못 가는 게 말이 되냐는 질문에 나 역시도 부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부당함과 억울함은 누가 뭐래도 정당하다.
게다가 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평등한 방향으로, 공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투쟁을 해왔고, 근로기준법상 병가제도 도입에 대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언젠가 차별금지법은 제정될 것이고, 병가제도도 만들어질 것이며, 노동자의 휴가는 폭넓게 보장될 것이다. 중요한 건 ‘언제’다. 그리고 ‘그때’가 올 때까지 부재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짊어지고 있느냐다. 법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자들은 이 부재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오롯이 법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아마 본인이 직접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법의 부재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막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정말 간절하게 필요로 할 때, 부재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아웃팅을 규제할 법이 없다는 변호사의 답변을 들었을 때, 타인의 자유를 무한히 제한할 순 없지 않냐는 법률 답변을 들었을 때, 실감났다. 차별금지법의 부재가. 처음엔 그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재가 확실해지면, 본인의 감각과 경험을 의심하게 된다. 마치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 같고,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과정은 우리를 천천히 으스러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결국은 침묵하게 한다. 너무 너무 화가 난다. 더 시끄럽게 떠들고 싶다. 이 부당함이 정당하게 들릴 때까지. 그래서 지금 당장, 법이 바뀔 때까지.
해삼은 나와 15년을 살았던 고양이다. 작고 약하게 태어나 어미에게 버려졌지만 동네 가게의 봉지 빵을 훔쳐먹으며 버티다 구조됐고, 묘생(猫生)으로는 스무 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해삼과 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5인 3묘의 대가족이었고, 시간이 흐르며 2인 2묘, 그리고 지금은 2인 1묘 가족이 되었다.
해삼은 작고 동그랗지만 용맹했다. 어느 날은 열린 현관문으로 길고양이가 집 안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고양이들이 혼비백산해 몸을 숨기는 동안 혼자 맞서 싸워 내쫓았다. 하지만 노환에는 장사가 없어서, 마지막 몇 년은 아침저녁으로 수액을 맞고, 사람이 억지로 먹이는 많은 약을 견디며 지냈다. 말년의 해삼은 몸이 아파서인지, 갓난아기처럼 품에 안고 얼러주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해삼의 병세가 깊어진 재작년 어느 여름 오후,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종일 해삼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일정을 바꿔 연차를 냈다. 거실에 있던 해삼 자리를 들어 침대로 옮기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가냘픈 몸을 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이 되어 여느 때처럼 동거인이 퇴근해 돌아왔고, 함께 저녁을 먹은 뒤에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침대 가운데 해삼을 두고 양옆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해삼은 우리 사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불과 몇 분 전에야 알아챘다. 해삼이 덜 무서워하도록 안아주고 계속 쓰다듬으며, 한 사람씩 작별의 말을 건넸다. 소식을 듣고 해삼을 함께 키웠던 동생들이 달려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해삼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좀 더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말고는 더 바랄 것이 없는 마지막이었다.
나의 마지막 순간도 해삼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같이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병원이 아닌 우리 집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그러나 해삼이 가고 비혈연 2인 1묘 가족이 된 우리가 서로를 마지막까지 무사히 돌보고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의 저자 캔디는, 10년을 함께한 동성 파트너의 말기암 소식을 듣는다. 지금 의료체계 안에서 돌볼 권리, 마지막을 함께할 권리는 혈연과 혼인으로 구성된 ‘법적 가족’에게만 허용된다. 그는 파트너의 돌봄과 임종, 장례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다행히 캔디는 파트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지만, 파트너 어머니와 간호사의 ‘호의’ 덕분이었으며 “행복했고 사랑한다”는 작별 인사는 어머니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가족의 ‘보호자가 되지 못할까 봐’ ‘내가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모든 ‘법 밖의 가족’들이 가지는 불안의 언어다. 동성 동반자뿐 아니라 동거, 독거, 비혼 등 다양한 비혈연 가족들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한 일은 그저 옆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바로 그 ‘옆에 있음’을 위해 제도 밖에서 다른 길을 찾고, 설득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불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픈 파트너를 돌보는 저자를 친구들이 돌아가며 돌본다. 장례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주변을 설득하고, 새로운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법이 인정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지탱한다. 이때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새로운 돌봄의 방법을 만들어 내는 진취적인 질문으로 바뀐다.
이미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혈연이나 입양, 혼인으로만 제한해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아 가족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늙어도 익숙한 환경에서 돌봄을 받는 것, 즉 ‘내 집에서 나이 들기’ 조건을 위해 다양한 생활동반자 제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선은 비혈연 생활동반자에게 의료법상 보호자 개념을 적용하고, 장례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직장에서 돌봄 휴가의 범위를 넓혀보는 방안을 제시했다. 누구나 아프고 죽는다.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가족형태와 돌봄이 차별 없이 받아들여지기를, 그 방법을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후 오랜만에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결과지를 읽어보던 중 정신건강 관련 데이터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성소수자 2천495명 중 우울증상 유병률(45.5%)은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상 일반 인구(11.3%)의 4배에 달하고(20대의 경우 7.6배), 자살 생각(39.1%) 및 시도(5.1%) 비율은 일반 인구의 각각 8.5배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수치다. 이 끔찍한 집단적 고통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흔히 ‘정신질환’을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하루 7시간 이상의 숙면, ‘탄단지’가 고루 균형 잡힌 식단, 주 3회 이상 숨이 찰 정도의 운동, 스트레스받지 않기, 정신과 치료 등 일상 속 개인적 관리 방안이 많이 이야기된다. 특히 최근에는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세요” 같은 말을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낙인이 두려워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겁내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취지로 이해한다. 여전히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낙인이 살아 있다는 뜻이지만, 공공연히 치료를 권장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과의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정신과에서 F코드(정신 및 행동장애 포괄)로 치료받은 환자는 282만명(치매 제외)이었다. 2018년 같은 통계에서는 186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똑같이 치료의 문이 열려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 인권위 조사의 다른 질문에서는 최근 5년간 의료기관에 방문한 성소수자 2천283명 중에서 373명(16.3%)이 부적절한 질문, 진료 거부, 모욕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고, 그중 147명(41.8%)은 정신과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밝혔을 때 이를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교정하려고 하거나 부모에게 ‘아웃팅’하는 의료진이 있었다는 응답들이 나왔다.
병원이나 의사 성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정신질환의 치료 방식은 담당 의사와의 심리 상담이 동반된다. 물론 상담 그 자체가 주목적이라기보다는 주로 적절한 약물 처방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질병과 달리 의사와의 원활한 관계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원가족, 또래집단, 학교, 직장에서의 혐오와 차별에 숨 쉬듯 노출된 채 살아가고, 이러한 삶의 역사는 개인의 정신적 이슈에 촘촘히 반영된다. 과연 정체성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고민을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의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사 역시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당사자는 언급을 회피하고 약물 처방을 받거나 아예 정신과 방문을 단념하는 것이 편하다. 이처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정신과의 문턱은 유달리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회가 된다면 애초 정신과에 갈 필요 자체가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2024년 10만명당 29.1명, OECD 평균 2배 이상)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정도의 높은 수치라면 자살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마당에 정신질환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위에서 말한 식단, 운동 등의 개인적 관리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린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애초 그러한 개인적 실천들이 지속 가능하게 효과를 보려면 장시간 노동, 직주근접이 불가한 집값과 서울중심주의 문제, 바닥을 치는 노동권 지수 등 삶의 주요 조건을 이루는 문제들이 개선돼야 하고, 이는 현 체제의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일이기에 우아하고 정제된 방식으로는 ‘그냥’ 쟁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 속 ‘개인’으로 자신의 정신적 고통 문제를 다스리자는 것은 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성소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맞닿아 있다면 근본적인 해결책도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와 학교에 가야 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체제 속 ‘정상인’으로 기능하려면 정신과 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한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4월 3일(금)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정책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후 10여년 만에 펴낸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성소수자들의 삶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연구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노동, 교육, 시설, 재화용역, 보건의료, 국가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성소수자의 차별실태를 분석하고 정책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이날 토론자로는 퀴어동네의 진돌(여수진)이 참여하여 노동영역에서 성소수자 차별 개선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돌은 이날, 지난 10여년간 성소수자를 위한 직장 제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하고, 당장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돌의 토론문을 비롯해 토론회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자료집을 참조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