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회적 합의’ 변명이 비겁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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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18년간 11번.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숫자다. 본회의 상정조차 된 적이 없으니 폐기된 횟수와 같다. 그렇게 차별금지법이 마르고 닳도록 국회 문턱에서 좌절하는 동안,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중에, 그리고 사회적 합의.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인사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장면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 입장이었다. 그는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종교적 신념으로 차별금지법을 비판할 때 처벌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있다”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입법예고한 이후, 민주당이 18년간 그 사회적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별론으로 하고,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주장이다. 현재까지 폐기된 차별금지법 발의안 11건은 차별행위 그 자체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마치 직장내 괴롭힘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처럼, 차별행위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한 경우에만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즉, 처벌보다는 사회 전반의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차원에 가까운 법이다. 그런데도 김 총리는 “설교하다가 잡혀간다”는 종교계의 과장된 공포 선동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였던 강선우 민주당 의원 역시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회피했다. 소수자와 약자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의 리더 후보가 입장을 유보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마법의 방패 뒤로 숨는 것은 더욱 문제적이다. 갑질 이슈에 묻혔지만,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성평등’ 부서의 장관이 되기에 그의 자질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김민석과 강선우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과거 반동성애 종교현장에 얼굴을 비치며 의견을 피력하거나 함께했던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김 총리는 2023년 기독교 행사에서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에(동성애에) 접하거나 확산되는 것이 분명하므로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적 시도는 예방돼야 한다”고 주옥같은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강 의원은 2023년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 반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바 있다. 이 정도라면 사회적 합의는 겉치레이고 그들 자체가 적극적인 차별금지법 반대론자에 가깝다. 묻고 싶다. 사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갖는 건 자유지만, 정치인으로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신념을 정책 결정에 개입시키는 것이 정교분리 국가에서 적절한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종교적 신념을 빙자해 차별을 옹호할 권리가 우선하는가? 이들의 존재 자체가 차별금지법이 입법돼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부터 이미 성소수자 권리증진에는 의지 없음을 실토했다. 그는 지난 5월 TV토론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현안이 복잡해 새롭게 논쟁·갈등이 심화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는 “경중선후라는 게 있는데 저는 무겁고 급한 일부터 먼저 하자는 입장”이라며 차별금지법은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겨울, 시민들이 단지 민주당 정부를 세우려고 추위에 덜덜 떨며 광장에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태령의 긴 밤, 사회에서 소외 받는 많은 시민이 농민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들의 발언으로 여러 집회에 활력이 생겼다. 이들에게 빚졌다며 응원봉을 상찬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렇게 혐오자가 인선된 것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나? 민주당과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며, 이들에게 의존하기만 한다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혐오자들 그 자체거나, 혐오자들의 눈치만 보며 방치, 회피하는 제도 정치권만 바라보며 기도를 한다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는 않는다. 결국 이들을 압박하려면 혐오세력보다 훨씬 강력한 찬성여론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성소수자 운동의 힘은 물론이고 더 많은 지지자의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이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혐오에 도전하는 수많은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함께 만나 굳건한 행동으로 결집할 필요가 있다. 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누워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감을 따는 방법은 나무를 흔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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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냄과 숨기기, 경계를 넘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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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리 퀴어동네 운영위원

벽에 최대한 붙어있다. 마치 벽의 일부가 된 것처럼. 지하철이 들어오고,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순식간에 100명의 사람을 지나서 지하철 위에 올라탄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구석진 공간을 찾으려고 애쓴다. 모서리를 찾아 들어가 몸을 기댄다.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의 감각이다. 지하철의 속도는 내가 실제로 본 어떤 것보다 빨랐고, 역 안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눈을 돌릴 때마다 가득 찬 얼굴들과 두 눈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때문에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웠다.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소화하기 어려웠다. 무시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을 지우고, 표정을 지우고, 하루를 지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람들에게도 ‘난 지워지겠구나’ 싶어서 조금은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10대 때 꿈꿔왔던 도시의 자유로움이라는 건 결국 익명성에 기대어져 있구나 싶었다. 익명성 안에서 난 ‘덩어리’처럼 느껴지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출근길에 파트너와 손을 잡고 서로의 몸에 기대어 사랑을 속삭여도, 아무도 알아채지 않는다.

퇴근 후 파트너와 함께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봤다. 자주 가는 두부 가게 아저씨가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파트너를 향해 남자친구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난 “아뇨, 애인이에요.”라고 답했고, 파트너는 조용히 있었다. 어려웠다. ‘아뇨. 여자친구예요’라고 답했어야 했을까. 내 정체성뿐만 아니라 파트너의 정체성까지 알려지는 일인데 싶었다. 혼자 있었을 때 남성으로 패싱됐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파트너가 침묵하고 있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익명성. 어떤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확실한 자유로움이 있다. ‘레즈비언 걔’에서 ‘레즈비언 64316435’이 된다는 건 마치 움츠러들어 있던 몸을 크게 기지개를 펴는 일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익명성은 위험하고 불안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서로의 얼굴을, 표정을, 하루를 알아채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걔’로 돌아갈까봐 두렵다. 경멸과 혐오의 대상인 걔.

“커밍아웃과 아웃팅 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 즉 공간상에서 자신을 얼마만큼 드러내고(혹은 강제로 드러내지고) 또 감출 것인가(혹은 타의로 감춰질 것인가)의 전략은 성적 반체제자들의 일상생활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집, 거리, 학교, 직장, 화장실과 같은 여러 공간들에서 성적 반체제자들은 매순간 드러냄(드러내지기)과 감추기(감춰지기)의 경계 사이에 있다.”(김현철(2015) 성적 반체제자와 공공 공간: 2014 신촌/대구 퀴어퍼레이드를 중심으로, 서울대 교육학석사 학위논문)

누구에게 얼마나 드러낼(드러내질) 것인지에 대한 건 익명의 관계에서는 필요치 않게 느껴진다. 어차피 고유한 존재로 인식되지 않으니깐. 그런데 조금이라도 상대방을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면 그때부턴 늘 그 경계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두부가게 아저씨에게도 고민이 드는데, 하물며 매일매일 출근해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는? 아무리 ‘이 사람은 친구가 아니야’, ‘그냥 덩어리처럼 일하자’ 해도 누군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그 사람이 고유한 존재가 되는 순간, 자꾸만 나도 그 사람에게 고유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들려주고 싶고, 가닿고 싶다. 연결되고 싶다.

드러냄과 드러내지기. 그리고 숨기기. 이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익명의 존재로 있고 싶은 마음과 고유한 존재로 관계 맺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동시에,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참지 못하고 몸 밖으로 삐져나올 때도 있고, 아예 몸이 산산조각 나서 흩어져버리기도 한다. 조각을 모아 다시 몸을 이룬다. 새로 이어붙인 몸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옆자리에 있는 무지개 플래그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다시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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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이 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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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소순) 퀴어동네 운영위원

시골에 사는 우리 외할머니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동네 길고양이들 밥 주는 일이다. 할머니 집 근처에서 지내는, 가족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네댓 마리가 밥 손님이다. 커다란 화분 받침대를 물그릇으로, 딸기 사면서 온 플라스틱 대야를 밥그릇으로 삼아 챙겨주는데, 할머니에게 ‘밥’이란 곧 ‘쌀’을 의미하기에 주로 쌀밥을 준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 안 먹을 법도 하지만, 언제 또 배불리 먹을지 몰라서인지 곧잘 먹는다. 고양이들도 할머니를 잘 따른다. 할머니가 마당에 나오면 꼬리를 바짝 세우고 할머니 다리에 몸을 비비거나 바닥에 뒹굴며 애교를 부린다. 그게 예쁜지 얼마 전 할머니는 고양이들 먹인다며 장에서 ‘개 사료’를 한 포대 사기도 했다.

할머니가 원래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짐작하기로 할머니의 변화는 이모 가족이 입양한 강아지 ‘또또’ 덕분인 것 같다. 그동안 할머니와 살았던 동물은 소, 닭, 오리, 거위 같은 ‘가축’이 대부분이었고, 오래전 마당에 살던 개가 그나마 가까웠다. 팔십 평생 동물이란 밖에서 사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또또가 처음 왔을 때 할머니는 “개를 무슨 방에서 키우냐”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또를 안아주고, 놀아주고, 배변을 치워주고, 간식도 제일 많이 주며 극진히 모신다. 또또와 지내보니 지나가던 고양이에게도 관심이 생겼고, 눈에 들어오니 쫓아내지 않고 밥을 주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존재를 알아보고 자신의 공간에 들여 서툴지만 정성껏 대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여론조사 회사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6월 진행한 ‘2024 성소수자 인식조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변 지인 중 성소수자가 있는지가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응답자 1천 명 중 성소수자 지인이 있는 사람 중 43%가 성소수자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고, 성소수자 지인이 없는 사람은 13%만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적대적인 감정은 반대였다. 성소수자 지인이 있다면 26%가, 없다면 46%가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성소수자에게 호의적일 것이라 느껴 성소수자 당사자가 커밍아웃해 성소수자 지인을 두게 된 경우가 많겠으나, 어떤 경로로든 지인을 통해 성소수자 존재를 인지하고 선입견과 오해가 사라져 호의적으로 변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는 것부터 어렵다. 2023년 6월 퀴어노동권포럼에서 진행한 ‘커밍아웃의 조건 찾기 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 직장인 64.1%가 직장에서 커밍아웃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할머니네 고양이들에게서 ‘나’를 숨기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마당을 자유롭게 오가고 집 앞 밭 한가운데서 한가로이 장난도 치지만, 할머니가 보살피기 전까지 고양이들은 조그만 인기척에도 놀라 달아나기 바빴다.

커밍아웃할 수 없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동료들 사이에서 언제 다칠지 몰라 불안해하며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야 한다. 오해받고 험담을 들어도 아닌 척 거짓말하며 움츠러들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일터를 떠날 수 없기에, 있어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틴다.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은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 막연한 감정일 수 있다. 개는 방에 들어올 수 없다던 할머니 같은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여고 동급생끼리 연애하면 큰일 나고, 남성 간의 로맨스는 아이돌 팬픽에나 존재하는 환상이며, 거리를 걷는 저 이가 트렌스젠더일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실수를 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거쳐 경험의 폭이 넓어지며 생각도 달라졌다. 이상하거나 잘못된 사람은 없었고,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만이 보였다. 우리를 가로막는 건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없으리라’라는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같이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없다고 생각하면 쉽게 차별하게 된다. 있음을 인정하면 보이고, 보이면 어떻게 해야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성소수자 동료와 일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쌀밥과 개 사료를 챙겨주는 것처럼 곁을 내어줄 마음만 있다면 어설프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실수하고 배우며 같이 살자.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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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에 휘날린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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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준비에 한참이던 어느 날, 우리는 고공농성 투쟁3사인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금속노조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 및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와 연대하는 한 시민의 이메일을 받았다. 고공 3사 투쟁 사업장에는 500일 넘게 장기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가 있는데, 국민 청문회 개최를 위한 동의수가 부족해 노동자의 벗과 퀴어동네가 운영하는 부스에 국민동의청원 홍보 포스터를 붙일 수 있냐는 정중한 요청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수락하며 연대의 차원에서 퀴어동네의 깃발 역시 고공농성 투쟁3사 행진트럭인 1번 차량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해당 요청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며 기시감이 들어 곰곰히 생각해보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세종호텔지부의 해고자를 만난적이 있었던 것이다.

3년 전 수습노무사모임인 ‘노동자의 벗’ 이름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를 준비하며 우리는 하나의 참여 이벤트를 준비했다. “나는 퀴어친화적인 직장을 원하는 000 입니다”라는 피켓인데, 공란에 본인을 소개하는 자유로운 문구를 넣어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했다. 그 당시 찍은 수많은 인증샷 중에는 “나는 퀴어친화적인 직장을 원하는 (세종호텔 정리해고) 해고자 입니다”가 있었다.

2021년 12월9일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위기를 이유로 돌입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3년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아줬다. 2023년에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도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으로 연대하며 소소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 해고노동자들의 상황은 악화했다. 2024년 12월께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어 대법원 역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함에 따라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은 스스로를 고공으로 내몰았다. 호텔 경영은 흑자로 돌아섰지만, 해고노동자들은 3년 넘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세종호텔 해고자들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다시 만났다. 3년 전 노동자의 벗에서 퀴어동네로 모임을 발족한 뒤 다시 참여할 때까지 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사이 고공농성 중인 사업장은 3개로 늘어나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한 현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러나 3년 사이의 변화는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스 곳곳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청문회 개최를 위한 국민동의청원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서울퀴어문화축제 입구 한켠에서는 국민동의청원을 위한 홍보가 한창이었다. 축제의 메인인 퍼레이드에서는 고공 3사의 투쟁트럭이 선두에 섰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매해 가장 상징적인 단체의 차량이 퍼레이드 선두에 서는데, 올해는 그 자리에 “퀴어와 노동자의 연대”를 상징하는 고공 3사의 차량이 선 것이다.

퀴어퍼레이드의 행진 역시 생소하지만 뜻깊었다. 선두 트럭에서는 퀴어와 엘라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대중가요가 아닌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기원하는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퀴어퍼레이드 행렬에는 한화빌딩 앞에서 김형수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장이 춤으로 환영의 인사를, 세종호텔 앞에서는 약 3분간 정차해 고진수 지부장에게 연대의 뜻을 전했다. 퀴어와 해고노동자가 고공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에 힘입어 국민동의청원은 단 이틀 만에 1만 명 이상이 동참해 결국 지난 16일 국회 회부 기준인 5만명을 넘겼다. 광장에서의 연대가 고공 위의 삶을 흔든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더 이상 ‘퀴어’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깃발을 들 수 있는 정치적 광장이다. 해고노동자의 고공 위 외침과 퀴어퍼레이드가 교차하는 이 만남은 우리가 더 넓은 연대를 상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공의 깃발과 광장의 무지개가 함께 나부낄 때 변화는 시작된다. 고립된 싸움은 없다. 더 많은 이들이 서로의 광장에, 서로의 고공에 함께 한다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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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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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연(란다) 공인노무사

남해안에는 해파리를 제거하는 군집로봇 제로스가 있다고 한다. 해파리는 주로 여름 바닷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취수관을 막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다. 제로스는 해파리를 구석으로 몰아 빨아들인 다음 찢어발긴다. 해파리 조각들은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바다의 바닥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둠이 당연한 세상이다. 우주보다 더 멀고 더 새카만 곳이다. 그곳엔 잘린 해파리 조각이 쌓이고 1만년이 넘은 고래뼈가 네 번째 고래낙하를 하고 있다. 인간은 열수분출공이 뿜어내는 뜨거운 물과 가스를 피해 바닥에 빛을 비춘다. 인간은 어둠뿐인 줄 알았던 세상을 들여다보다 놀라고 만다.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여름이 거꾸로 펼쳐진다. 우리 모두가 삶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가 죽기를 거부한다.’

나는 제로스에게서 우리나라의 법과 정치를 본다. 제로스는 해파리가 왜 갑자기 남해안을 뒤덮었는지, 공존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할 뿐이다.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퀴어를 지워 버리고, 광장을 밤새 지킨 여성을 차별막 뒤로 미루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를 방치하듯이.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노키즈존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길에서 지우듯이. 그렇게 이 사회의 모든 차별과 혐오는 사라진다.

일단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눈앞에서 해파리가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다시 물놀이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찾은 바다는 언뜻 보기엔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빛은 바다로 깊이 스미지 못한다. 바다의 바닥엔 갈기갈기 찢긴 것들이 쌓이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희생자, 열사 등의 이름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슬픔으로 쌓인다.

‘빛은 무엇을 원할까? 더 많은 자기편? 맞다. 맞고, 또한 어둠을 뒤흔들고 싶다는 마음.’

수면의 빛은 심해 어디쯤 멈추지만, 끝내 바닥을 찾아 가는 빛이 있다. 지난 6개월간, 아니 그 이전부터 광장과 길바닥을 제집처럼 지켜야 했던 이들이 보낸 조그만 잠수정이 켜 놓은 빛이다. 그렇게 새카만 바다의 바닥에서, 해파리는 다시 태어난다.

모든 조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심과 애정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 같던 조각들에서조차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무도한 정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마음이 이어져 연대와 지지가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켰듯이, 장애인들을 경찰에게서 지키고, 내 안의 편견을 부수고 차별금지법을 외쳤듯이. 3년 만에 주어진 투표용지에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눌러 담았듯이.

6월3일, 눈을 뜨자마자 투표장으로 달려가 간절한 마음으로 한 표를 찍었다. 콩하고 찍는 동작이 경쾌하고 쉬워서, 마치 지난 6개월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가벼운 마음 같아서 잠시 멈춰서 투표용지를 바라봤다. 이전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일만 잘하는 정부이기 이전에, 소외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탄생한 정부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하기를 바랐다.

광장이 밝힌 빛은 어디까지 깊이 스밀 수 있는가. 빛이라곤 스미지 않던 바다의 바닥까지 관심과 애정이 드리울 수 있을까. 그리해 암흑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투쟁을 이어 오던 이들에게 마침내 일상을 돌려줄 수 있을까. 우리가 광장에서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고 바란다.

-인용문구 출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사브리나 임블러 지음, 김명남 옮김, 아르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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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내상과 상상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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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빛별) 노무사(퀴어동네 회원)

2025년 4월30일,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모모에서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씁쓸하게도 퀴어 행사에 장소 대관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아트하우스모모라는 것은 다소 놀라웠다. 아트하우스모모는 작년에도 한국퀴어영화제가 진행된 곳이고, 꼭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상업 영화관에서는 찾기 어려운 퀴어 영화를 자주 상영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영주체인 영화사 백두대간은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자신들의 대표업적으로 퀴어 영화인 <브로크백 마운틴> 수입·배급을 적고 있다(심지어 이를 ‘주옥같은 걸작’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모모는 한국퀴어영화제에 대관 취소를 통보했나.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

뻔하게도, 이번에도 보수 개신교의 이름으로 이뤄진 혐오세력의 항의와 민원이 핑계였다. 이들은 한국퀴어영화제가 이화여대의 창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기에 “어린 학생들의 교육공간”에 들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화여대는 이를 받아들였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한’ 민원으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혐오를 승인한 것이다.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를 승인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3년 고려대는 인권·법률청년단체 ‘두런두런’의 행사를 학부모 항의가 많다는 이유로 대관 취소했고, 서울여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4년에는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가 행사에 동성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대관을 취소했고, 2015년에는 서울시 산하 청소년수련관과 숭실대가 퀴어 행사 대관을 불허했다. 2017년에는 동대문시설관리공단이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의 대관을 승인했다가 며칠 뒤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취소했다. 전국의 퀴어문화축제는 축제 공간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의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많은 퀴어 관련 행사가 민원이라는 이름의 혐오에 막혀 공간 사용을 거절당해 왔다(이와 관련한 역사는 <퀴어한국사>를 참고).

혐오의 내상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정당한’ 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혐오를 승인하고 유통시키는 일이다. 그렇게 유통된 혐오는 개개인들의 몸에 스며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한 내상을 입힌다.

최근 스스로 꽤나 놀랐던 일화를 꺼내볼까 한다. 수습노무사들의 노동인권활동모임 ‘노동자의 벗(노벗)’에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노벗 안에서 내가 속한 퀴어노동권팀에 후원요청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노벗 활동을 응원하는 한 노무법인에서 노벗에 몇년째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는데, 퀴어노동권팀이 여기에 지원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나는 다른 팀에서 지원해보기를 권했다. 내심 두려웠다. ‘퀴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면 어떡하지, 그 반감으로 괜히 노벗에 대한 애정까지 식게 만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을 느끼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전까지 이런 식의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눈 앞에서 혐오세력의 폭언을 듣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당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두렵지는 않았다. 그 두려움은 혐오가 할퀸 자리에 스며든 내상이었다. 그 내상과 마주했을 때, 혐오가 통용된다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권리조차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혐오가 사회적으로 인정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였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상상력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지원금과 함께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것만으로 혐오의 내상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상 위에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새살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말 그대로 힘이다.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힘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다.

이번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취소에 있어서도, 학교쪽이 다른 상상력을 가졌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퀴어영화제에 대해 누군가는 민원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그것을 ‘정당한’ 민원이 아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인지했다면, 그래서 날것의 혐오를 맞닥뜨렸을 노동자와 학교 안팎의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편견과 혐오에 대응하는 것이 이화의 정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면 어땠을까. 혐오의 내상에 길들여지지 않을 더 많은 상상력을 원한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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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칼럼

▲ 손진 퀴어동네 회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가들이 보름간 진행한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이 얼마 전 끝났다. 지난 2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자립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천주교가 이에 대해 대대적인 입법 폐지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전국에 무려 175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립지원법이 탈시설이 불가피한 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장애인의 삶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시설 입소를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증장애인은 종종 지역사회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주시설에 보내지지만, 시설도 사람이 살기 매우 열악한 공간이다. 시설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여러 명이 한방에서 개인 공간 없이 살고, 사생활도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밥을 먹어야 한다. 뭘 먹을지도 선택할 수 없다. 종교도 시설 재단에 따라 정해지고, 마음대로 외출도 불가능하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저서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에서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은 인간다운 삶 자체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인은 자신보다 경증인 다른 장애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시설종사자에게 학대당하기도 한다. 최근 울산의 한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CCTV를 통해 한 달간 폭행 890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해자는 장애인의 머리를 때리고 발을 세게 찼으며, 장애인을 짐짝처럼 질질 끌었다.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거나 따귀를 연거푸 치기도 했다. 이 시설은 개원 이래 40년 가까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모든 시설이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시설 장애인은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장애인시설을 포함한 집단거주시설에서 사망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현재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그 말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달라진다면 이 말은 거짓이 된다. 박경석 대표의 말처럼 “주거공간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주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제공이 되고, 소득체계가 잘 갖춰지면 자립이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윤이 무엇보다도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이윤을 벌어들일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국가에 돈을 벌어다 줄 반도체산업을 뒷받침하는 데는 수조원씩 투자해도,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지금도 시설에서는 “어차피 돈도 못 벌어다 주는 장애인들 제일 값싸게 관리”하기 위해 적은 수의 노동자가 여러 명을 버겁게 돌보는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산다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온갖 시설과 체계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노동권도 제대로 보장해야만 한다.

지난 몇 달간 광장에서 다른 사회를 열자고 외쳤던 목소리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우리가 우리 삶과 이 사회의 주인인 사회는 장애인도 한 명 한 명의 주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가 한 번의 선거나 몇 개의 정책만으로 이뤄질 리는 없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수호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 사회를 바꿔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눈부신 연대뿐이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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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동네의 활동명 정하기

칼럼

▲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 서이 퀴어동네 운영위원

“여기는 퀴어단체인데 다들 실명을 쓰는게 독특하네요.”

퀴어동네의 새로운 회원 ㄱ이 무심결에 한 말이 퀴어동네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퀴어단체이지만 동시에 노동인권을 지향하는 법률활동가단체이기도 한 퀴어동네는 발족한 2022년 이래 꽤나 오랫동안 실명제를 유지하였다. 고놈이 고놈인 탓에, 또 서로를 잘 아는 탓에 서로의 이름이 꽤나 익숙했던 우리는 별도의 활동명(닉네임)을 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부 조직문화 논의와 맞물려 퀴어동네는 활동명을 쓰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왜 활동명을 쓰기로 결정했을까.

우선 노무사단체가 아니라 ‘퀴어단체’의 성격을 강화하고 싶었다. 노무사 외 법률활동가의 모임이라고 규정했지만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수습노무사 노동인권모임 ‘노동자의 벗(노벗)’출신인 탓에 직장 선·후배 혹은 기수제로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퀴어동네에 오면 나는 ‘서이’라는 별명을 가진 퀴어동네 회원이 된다. 닉네임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단순히 호칭을 변경시킨 것만으로도 다른 성격의 단체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또 퀴어동네에는 ‘엘라이’(Ally, 성소수자 인권지지자)도 있지만 퀴어 당사자도 존재한다. 때문에 퀴어동네 소속으로 활동하지만 퀴어동네 소속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회원들도 존재했다. 이름 석 자로 먹고사는 전문직의 특성상 단순 직장 내 아웃팅 문제를 떠나 직업의 영위, 혹은 사회적 평판 등에 있어 이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모든 회원들이 본인이 원하는 활동명을 사용함으로서 자연스레 퀴어동네 소속임을 밝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실명을 사용할 경우 언니나 형 등의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이 자연스레 붙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권고를 여러 번 받았지만 동방예의지국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예의 없는 동생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쉬이 말을 놓기 어려웠다. 그러나 퀴어동네 내의 상시적인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은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에 놓인 회원들에게 위화감을 들게 하거나 조직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었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 성 정체성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인 회원에게 실수로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을 했을 때 해당 회원에게 단순한 위화감을 넘어 젠더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출생시 지정된 자신의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증상)를 줄 염려 역시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활동명 제도이지만 사실 난관이 많았다. 우선 본인의 닉네임을 새롭게 짓는 것부터 다들 어색했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닉네임이 바로 매치 되지 않아 다시금 실명으로 부르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개인적으로는 초기에 “서이”라고 불렸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호칭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느낀 미묘한 어색함과 기시감은 퀴어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퀴어들은 직장생활을 할 때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일상적인 한담을 나눌 때 본인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을 가정하고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과 사람들이 지칭하는 호칭에서 차이가 발생하기에 일상적인 피로와 불쾌감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

그런 연유로 나는 30기 김수정 노무사에서 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퀴어동네 회원이 됐다.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단순한 호칭 정정 하나면 된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행위인가. 퀴어동네 내의 활동명 제도가 온전히 정착해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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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다

칼럼

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김자연(란다) 퀴어동네 회원

레드와 블루, 두 여성은 시간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레드와 블루는 서로의 가장 성가신 적이다. 때로는 이기고, 수없이 진다. 어느새 작전의 승부는 뒷전이 된다. 대체 너는 날 어떻게 패배시키는가. 레드와 블루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골몰한다.

레드와 블루의 사랑은 위험하다. 두 여성이 속한 집단인 에이전시와 가든은 시간선을 꼬고, 풀고, 땋는다. 시간을 쟁취해 이 세상을 철저히 굴복시키기 위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치밀한 지배와 통제, 엄격한 규율과 필요로 인해 만들어지고 자의로 인해 집행되는 법이 가득할 것이다. 엄격한 질서에 자유와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레드와 블루는 전쟁을 망쳐버린다. 죽음은 연인을 차지하지 못한다. 연인은 에이전시와 가든이 정해놓은 세계로 뛰어든다. 온 세상을 제멋대로, 제 뜻대로 결정하려던 그들의 계획을 망가트린다. 섬세하게 조직한 시간 선을 풀어헤치고, 과거에 미래를 심어둔다. 그들 중에 승자는 없다.

“시간과 죽음에 맞서서, 우리를 찍어누르려고 늘어서 있는 모든 권세 앞에서, 우리가 가진 건 사랑뿐이야. … 희망은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싸울 것이다. … 그들은 우리를 거느릴 자격이 없어. … ‘우리’는 모두를, 이 역겹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느라 모든 시간의 실에서 죽어가는 모든 유령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시간만이 아니다. 그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이는 사랑을 택한 연인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죽음만 꿈꾸는 지배자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무지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를 썼다. 우리 함께 사랑하자고. 아주 오랜 시간 우리를 옭아매던 것들을 집어던지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함께 차도 마시는 공간에서 꿈꾸어 보자고. 그러나 편지는 쉽게 오독된다.

그들은 편지를 조작한다. 무지개가 탄핵광장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차별금지법은 안 된다고. 혐오가 아니라 그네들이 예민한 것일 뿐이니, 무시하라고.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고. 그들은 또다시 무지개와 세상을 단절시키려 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술수에 넘어간다. 평등보단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오는데 익숙했던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해내자고.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무엇을 찾아왔는지 물었다. 정답은 없었다. 응답만이 있었다. 알아두겠다! 라고.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광장에서 우리가 꿈꿨던 차별 없는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길 속에 희미한 빛으로만 반짝인다. 어둠 속에서 허기를 느끼며,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꿈을 꾼다.

우리가 똑같이 용감해지기를. 우리가 서로의 편지를 읽기 위해 똑같은 것을 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잿빛으로 가득한 차별의 세상을 넘어, 색색깔이 터져 나갈듯한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너랑 나는,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이 글은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이 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읽고 썼다. 책을 읽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시라. 당신에게 쓴 편지가 숨어있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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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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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그를 만난 건 한겨울 어느 날이었다.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데 길을 못 찾겠다고 해, 설명을 거듭하다 안 되겠다 싶어 외투도 잊고 급히 나갔다. 사무실 앞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70대 여성 청소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같이 해고된 동료 두 분과 함께였다. 그들이 난생 처음 노무사를 만나러 온 이유는 남성 관리자의 ‘갑질’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남성 관리자의 고함에 기죽고 겁먹을 만도 한데, 끝까지 대항하다 잘리고 결국 노무사까지 만나러 오다니. 그들의 용기에 내심 감탄했다.

그즈음 나는 ‘아가씨 전화’ 때문에 한참 화가 나 있었다. ‘아가씨 전화’는 나와 상담 전화를 하던 상대방으로부터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이 등장하는 전화 통화를 부르는 나만의 말이다. 내가 ‘아가씨’라고 불리는 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가씨 말고 노무사를 바꾸라’라는 말에는 아가씨는 법률 조언을 할 수 없고, 전문적일 수 없으며, 능력이 의심스럽고, 못 미더운 존재고, 그러므로 아가씨는 제대로 된 노무사일 수 없다는 편견이 전제돼있다. 내가 신뢰할만한 전문가인지는 나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면 될 일인데, ‘아가씨’라는 이유 하나로 쉽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표현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조금 부끄럽게도 이들에게는 그러지 못했고, 어느샌가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님’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호칭이다. 어떤 여성을 ‘어머니’ 역할에 가두고, 결혼해 자식을 둔 것으로 획일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연령과 성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차별을 공유한다는 감각 때문에 공감과 친밀함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하고 싶었고, 그러다 나온 것이 ‘어머님’이었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 건 나의 한계다. 셋 중 나에게 전화해 길을 물었던 한 분만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가씨와 어머님은 한 팀이 됐다.

그는 사무실에 자주 찾아왔다. 그가 문자나 카카오톡을 나만큼 쉽게 사용하지 못하며,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기에 대면하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서면 초안을 인쇄해 한 문단씩 읽으며 고쳐나갔고, 가끔 화이트보드에 서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주 만나며 우리끼리 쓰는 말도 생겼다. ‘이리 와 아저씨’ ‘소리 지른 남자’ 같은, 그가 이름을 모르는 남성 관리자들을 부르는 별명이 많았다. 나는 그의 일과 일터를 배워나갔다. 직접 청소를 하는 노동자 다수가 고령 여성이지만 관리자는 모두 그보다 나이가 적은 남성이라는 것. 청소하지 않는 남성 관리자를 대접해서 잘 보여야 청소 일에서 잘리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다는 것. 여성 노동자는 나이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쓰였다.

한 번은 임금명세서를 찾으려고 그의 문자 목록을 대신 보다, 우연히 내 번호가 뭐라고 저장됐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무사’라고 저장돼 있었다. 노무사 앞에는 이름 석 자도 없었고, 뒤에는 아가씨도 없었다. 그 건조함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나의 쓰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기 싸움의 대상도 아니고, 당연히 친절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심받지 않아도 되고,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이름도 없이 덜렁 노무사라고 저장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게 고마웠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심문회의 날이 왔다. 긴 시간 끝에 원하는 조건으로 화해해 사건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며칠 후 그가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15개들이 두유, 어느 날은 사과 한 봉지, 어느 날은 1.8 리터 우유. 그날은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흰 봉투와 함께였다. 어떻게 받느냐는 나를 이기고 그는 기어코 봉투를 주고 갔다.

탄핵 선고를 기다리며 지루하고 지난한 날들이 이어지는 시점에 민주주의 회복에 관한 진중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탄핵까지도, 탄핵 이후에도 일상의 투쟁은 이어진다는 생각에 이런 투쟁을, 아가씨와 어머님의 연대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는 새 일터에서 계속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동료들도 좋다고 하고,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 마음이 놓인다. 그도 탄핵에 관심이 많은데, 파면이 결정되면 그가 계모임 할 때 간다는 역 앞 갈비집에서 함께 축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란범과 함께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무시도 같이 사라지면 좋겠다. 아가씨도 어머님도 당당한 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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