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가 광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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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세계여성의 날(3월8일)에 열린 광화문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가던 길, “Stop the steal” 피켓을 들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대학교 동기의 모습을 우연히 봤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내가 방금 다녀온 집회와는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분명했다. 막역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오며 가며 살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었다. 주변 친구의 엄마 아빠 할아버지가 “태극기 집회에 다닌다” “말이 안 통한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가 광화문 광장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니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얼굴과 차림새를 한 젊은이가 정반대에 서서 나와 내 친구를 공격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18년 9월8일 동인천 북광장. 전국에서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대절해 몰려든 혐오세력은 축제를 무력으로 방해했다. 좀비 떼처럼 하나로 단결해 움직이는 그들의 조직력도 무서웠지만, 나를 더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은 그쪽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바람개비를 든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나온 단란한 가족, 세월호 배지가 달린 가방을 메고 온 중년 여성,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덩치 큰 중년 남성들, 그리고 말갛고 투명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포위한 채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는 동년배의 청년들. 일상에서 그들은 우리 옆의 평범한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겠지만, 교회 커뮤니티를 통해 조직돼 함께 행동에 나설 때는 혐오세력이 됐다.

위와 같은 성소수자 혐오집회를 조직하던 교회의 인물들은, 현재 탄핵 반대를 부르짖는 극우의 선봉이 됐다. 혐오세력의 대표주자 전광훈 목사는 광화문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면 사회가 무너진다”고 말한 손현보 목사는 여의도에서 각각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반대 집회의 규모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때때로 그 규모가 탄핵 집회를 앞서기도 했다. 실제로 1~2월 내내 집회 참석을 위해 광화문에 가면, 광장에 군집한 반대 집회 인파의 기세에 소름이 돋았다. 기세등등한 그들은 탄핵 집회가 열리는 동십자각 근처까지 몰려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확연히 줄어든 탄핵 집회의 인파를 확인하며, 본인들의 세계가 옳다는 자신감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내란옹호 세력은 단순히 거리에 모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을 행동에 옮기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1월19일,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을 수백 명이 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기자·민간인에게 무력을 행사한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이 발 딛고 선 극우적 세계관은 현 사회의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는 법원을 습격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청년들이 여러 대학 캠퍼스 내에서 탄핵 반대 행동을 이어가고, 심지어 2월26일 이화여대 캠퍼스에 다수가 진입해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무도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이런 움직임이 단순히 소수의 일탈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거대양당인 국민의힘이 내란옹호 세력의 손을 적극적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국의 탄핵 개입설에 힘을 싣거나, 전광훈·손현보 목사가 주도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사실 국민의힘은 탄핵 국면 초반, “그래도 계엄은 문제”라며 윤석열과 선을 긋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 집회의 힘이 세지자 이에 합류하며, 가짜뉴스와 반공·반동성애·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반한 극우적 세계관을 승인하고 재생산한다. 물론 기존에도 국민의힘은 여러 이슈에서 극우적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내란수괴가 5천만명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위협에 빠뜨린 상황에서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되지 않은 망상들을 추수하는 것은 극우가 주류화되는 길목에 서 있다는 징후이다.

극우적인 내란옹호 세력이 급격히 성장한 시점은 탄핵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낙관적 정서가 퍼지고 나서, 시민들의 집회 참여가 시들해진 시기와도 겹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와 같이 극우가 득세하는 상황은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다. 찬반이 맞부딪히는 격렬한 전선에서 양쪽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며,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누가 우세를 점하게 되는지에 따라 정세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극우세력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하거나, ‘정상’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소수라는 관점으로는 극우의 주류화를 막을 수 없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윤석열이 석방될 것이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탄핵 결정이 초읽기를 앞둔 상황에서는 더더욱 앞으로 벌어질 일을 확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극우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거리에 모여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감히 극우가 광장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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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광장의 연대와 저항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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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리 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고 회의장을 집단으로 이탈한 1주일 뒤였다. 그 시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집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함께 읽었다는 것이다. ‘집회 발언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재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등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전 집회에서는 선언된 적 없는 약속이었다. 본 집회에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외쳐 온 이야기가 드디어 청자를 만나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모인 10명 중 한 명이라도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겠다 싶어, 마음이 벅차올랐다.

12월22일, 남태령에 갔다. 전날 영하의 날씨에 밤을 새웠다는 친구의 말에, 사람들이 더 모여야 농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발 길이 향했다. 올해 1월15일,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다이인 시위에 참여했다. 새벽수업을 하고 가느라 늦었지만, 다행히 공간의 열기는 남아 있었다. 2월9일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 참여했다. 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퀴어페미니스트 공간 루땐’에서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어서 참여할 수 있었다. 2월14일에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진행한 대통령 탄핵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과 혼인평등 헌법소원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30대 비장애인 프리랜서 운동 강사이자, 퀴어 페미니스트인 나는 요즘 이곳저곳 바삐 다닌다. 내 삶과 무관해 보이는 일도 결국 모두 연결돼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연결’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인다.

박경석 대표는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끌려 나갔었는데 오늘은 시민들 덕에 끌려 나오지 않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그간 발언하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탄핵 국면을 맞이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발표한 자료에서 남태령 집회 참가자 찬달은 “저녁 6시에 한강진에서 시민들이 쫙 서 있고, 모세의 기적처럼 트랙터가 줄지어 들어오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돌 출퇴근길 같은 느낌, 트랙터 탄 농민들이 엄지를 치켜들고 들어오시는데 말도 다할 수 없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파면돼야 한다. 마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윤석열 파면은 투쟁의 결과이자, 시작이다. 성소수자가 일하면서 차별이나 혐오에 노출되지 않고, 마음껏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 사회를 꿈꾼다.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일하고, 뒤섞여 사는 세상을 상상한다. 자본보다 인권이 우선되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잠시 머물러 간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세상을 원한다. 이 모든 꿈이 내 안에 있다.

정체성 정치 담론은 1977년 미국 흑인 레즈비언 단체에 의해 도입된 이후로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의 차별철폐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정체성 정치는 주디스 버틀러가 지적한 것처럼 “권력에 대한 예속화”를 통해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로 머물게 하며, 사회구조의 변혁이 아니라 사회구조로 포섭되는 것으로 그치게 할 위험도 있다. 아사드 하이더 역시 그의 책 <오인된 정체성>에서 “우리는 분수를 약분하듯이 어느 인간 집단과 그들이 갖고 있는 다수성을 공통의 이해관계로 환원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에 관한 정의”에 불과한 추상적 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모두의 해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만의 경험, 정체성, 믿음을 넘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We are rebels in our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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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옹호자 된 인권위가 다시 제대로 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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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퀴어동네 운영위원, 공인노무사)

윤석열 정부 들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떤 자리에 앉을 자격이 가장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그 자리의 수장이 되는 것이었다. 품위·가치관·언변·주변인물 등 모든 면에서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고, 여성가족부가 소멸돼야 한다는 사람이 여성가족부 장관에, ‘불법파업에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면서 노동자 혐오를 일삼던 자가 노동부 장관에 앉았다. 나라를, 여성정책을, 노동정책을 후퇴시키러 온 장관 다음에는 인권을 후퇴시키러 온 인권위원장이 있었다.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에이즈가 확산된다’는 생각을 가진 안창호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인권에 대한 기본적 소양은 고사하고, 가짜뉴스 수준의 억지와 무지함에서 오는 신념을 보면 누구보다 반인권적인 인물로 보였다.

인권위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여당과 대통령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된 이충상, 김용원 위원의 임명부터가 위기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두 상임위원의 인권 침해적인 막말이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두 사람으로 화물연대 진정사건 진행이 막혔고,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표명이 기각됐으며 위원회 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나왔다. 동료 위원들에게 막말을 해대고 위원회를 수개월간 열지 않아 인권위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이충상 위원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심해지자 인권위가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혐오 표현 예방조치를 하라는 의견표명을 하기에 이른 것은 웃지 못할 비극이다.

인권위는 국가의 인권 침해 감시, 정책 조사, 제도에 대한 의견 표명, 구제 등의 역할을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이 나라에서 누가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어떠한 상황인지 외부에 알리며, 인권 침해가 있는 곳에 가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인권위가 ‘살색’이라는 색상 명칭이 차별적이라고 이야기하자 공식명칭이 ‘살구색’이 됐다. 고궁에 입장할 때, 법적 성별과 다른 성별의 한복을 입은 사람의 무료입장을 제한하는 것이 성별 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하자 문화재청이 입장을 바꾸었다. KTX 여승무원들의 불합리한 고용조건은 성차별이고, 노키즈존은 나이 차별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 트랜스젠더 성별을 정정에 수술을 요구하는 것 또한 차별이라고 말해왔다. 인권위 권고가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되는 이들의 상황을 듣고 살피고 의견을 내는 인권위의 존재는 기존의 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차별에 대해 최후의 보루였다. 노동상담을 하면서 어떤 이들에게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인권위를 안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인권위가 지난 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안건을 의결하며 기어이 내란 옹호자 되기를 자처했다.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부숴 흔적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용원 위원이 상정한 안건이었다.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기관이 내란범의 목소리 대변소로 침몰하는 과정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권은 흔히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배우지만 사실 그것은 하늘이나 신을 믿는 것과 같은 믿음에 의할 뿐이며 실상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지 모른다. 이 때문에 공론장에서 끊임없이 평등과 인권을 이야기하고 서로 확인해야 한다. 인권위의 중요한 역할이 그중 하나였다. 앞으로는 윤석열이 불러온 파시즘의 증식을 감시하고 막아야 할 책무가 더해질 것이다.

인권과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인권의 후퇴를 자처한 자들은 그들 우두머리와 함께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전에도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 교훈은 너무 뼈 아프다. 반인권적이고 정치적인 인사가 인권위를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면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부터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의 책무는 인권위가 바로 설 때까지 감시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광장에 나선 이들은 다양성과 평등이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임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인권위의 역할을 요구하고 기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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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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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지난해 말부터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한남동에서 집회가 열리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시민이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고,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 안팎으로 가장 주목받은 존재들은 단연코 20대, 30대 여성이다. 그럼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존재들은? 성소수자일 것이라 생각한다.(두 집단에는 당연하게도 교집합이 있다)

집회에서 모든 발언을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기는 하지만, 더 숨죽이고 집중해 듣는 대목이 있다. 자기소개다. 개인적으로 자기소개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가진 여러 모습 중 현재 앞에 있는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잘 선별해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은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인정을 받을 것 같아 일부러 꺼내놓기도 하고, 어떤 모습은 나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임에도 숨기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 상대방이 보일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 발언에서 인상적인 점은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이, 지역과 함께 ‘레즈비언,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에이섹슈얼’ 등이 나란히 언급된다.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머뭇거리다 용기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으로 이야기해보는 거라며 커밍아웃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자기소개를 듣다보면 약간은 울컥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집회 장소에서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으로 발언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소개에 환호로 화답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지개색 투쟁 머리띠를 매고 다니는 사람들, “여자도 남자도 좋아 한다”라는 말에, “괜찮다!” “문제없다!”고 화답한 사람들, 탄핵 이후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상에서는 이런 흐름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발견되지만, 최소한 광장은 야유와 혐오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성소수자를 잘 몰랐다는 사람들, 주위에 성소수자가 없었다는 사람들도 그 존재를 확인하고, 많이 배워간다며 고백하고 있다. 광장을 시작으로 사회는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할 때는, 동성혼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지형 위에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조금 더 바란다면 광장의 변화가 일터로, 학교로, 일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일터에 무지개가 있다면, 처음 용기를 내는 사람과 그에 화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터도 광장과 같은 해방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 전 이 지면에 처음 글을 쓰면서,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사회의 분위기도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열망하는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몇 백 명의, 몇 천 명의, 몇 만 명의 변희수 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그 목소리들을 모아 공고한 벽을 허물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서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새해를 맞아 새삼스레 또 소망해 본다”고 썼다. 어쩌다 마주한 정국 탓에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사회도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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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이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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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새해가 밝았다. 우주의 관점에서 아침과 밤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해 생기는 현상일 뿐이지만, 사람은 해가 뜨고 지는 어떤 날을 ‘새해’라고 부르며 축하한다. 세상이란 참 지독할 때도 있지만 이런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낭만적인 날에는 그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상상을 해야 한다. 저무는 2024년 마지막 해를 바라보며, 떠오를 2025년 첫해를 기다리며 새해에 바라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오늘 광장을 메운 약자의 목소리가 새로운 내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탄핵 정국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등장이 연일 조명됐다. 사실 광장에서의 여성과 소수자는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는 항상 광장에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새로웠던 건 그동안 우리의 자리가 한가운데가 아니었고, 가장자리에 있던 우리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광장에,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있다. 광장에 모인 우리는 탄핵 너머를 상상한다. 대통령을 바꾸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하지 못하던 결혼을 하게 되고, 장애인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지고, 돈보다 사람이 더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는다. 8년 전에도 경험했었다. 우리는 탄핵을 위한 광장에서도, 탄핵으로 여는 새로운 광장에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탄핵 이후 세상은 추운 광장을 지킨 이가 누구였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달은 분노가 치민 한 달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슬픈 한 달이기도 했다. 새해에는 부디 억울하게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사가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죽은 이와 다친 이의 숫자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만큼의 존재가, 역사가, 추억이, 내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슬픔은 애도에 머물러선 안 된다.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가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정확한 진상 규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참사는 이윤보다 생명을 가볍게 여긴 자본, 자본이 허락한 노동 소외, 거기서 이어진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너무나 아프게도 안전의 역사는 피로 쓰여 왔다. 누구의 것이든 피로 쓰이는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서로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하면 좋겠다. 혹독한 나날이 계속되니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투쟁을 지속하려면 지쳐서는 안 된다. 잘 싸우고 싶을수록 일상과 주변을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좌절과 마주쳤을 때 나를 살린 건 어떤 대단한 사건보다는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일, 자리를 양보하는 일, 우연히 마주쳐 반가워하는 일, 기분 좋게 취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는 일, 함께 외치고 노래하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 덕분에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무사히 넘어왔다.

달라서 즐겁고 같아서 기쁘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말이다. 달라서 짜증나고 틀린 말을 해대면 밉기도 하지만, 즐겁고 기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조금만 상냥할 수 있다면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적이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연설을 곱씹어본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2024년의 마지막과 2025년의 시작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차디찬 공기를 뜨거운 눈물로 가른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절망만 계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밟혀도 꿈틀거리며 삶은 계속된다. 해가 지면 또 새로운 해가 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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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가는 길, 탄핵 이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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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윤석열 비상계엄으로 우리는 역사책에서만 봤던 계엄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초래할 끔찍한 가능성을 상상하고 대비하게 됐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의 힘으로 계엄을 해제했고, 우리 삶을 핍박했던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고자 수없이 많은 거리의 행렬로 탄핵안 가결까지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탄핵이 완수된 윤석열 이후의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가 돼야 하는지.

윤석열을 끝장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남은 상황에서, 그 이후의 사회까지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최종적인 파면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가 헌법재판소를 압박해야 하고, 위헌적인 계엄 시도에 대해 윤석열과 계엄 잔당의 죄목을 낱낱이 밝혀 체포 및 처벌을 완수해야 한다. 그것에만 집중해도 벅찬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현 제도는 여러 장벽을 촘촘하게 세워놓아서 대통령이 시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려도, 그를 끌어내리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구조다. 헌법재판관 몇 명이 필요하고, 누구에게 그것을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 탄핵 요건에 부합하기 위해 ‘법적’으로, ‘절차적’으로 완비할 것은 무엇인지 거리에 나갔던 벅찬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차분한 척 챙겨야 한다. 다만 진공 속의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구절의 법이어도, 사회 분위기나 힘의 세력 관계, 상황에 따라 적용과 판단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더 많은 시민이 모여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결정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을 거리로 모아내기 위해서라도, 광장은 탄핵 이후의 사회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윤석열이 없어진다고 해서, 윤석열 정권이 탄압했던 평범한 노동자와 소수자의 삶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극단으로 비정상적인 특정 인물을 제거한다고 해서, 차별과 착취를 만드는 자본주의와 한국 사회의 병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시민이 거리로 나올 수 있던 것은 윤석열이 계엄을 시도했다는 예외적인 비상사태를 해소하려는 공감대 때문이지, 윤석열 이후 우리의 삶이 직접 나아지리라는 낙관과 기대감 때문은 아니라는 판단을 감히 해 본다. 국회에서 탄핵이 통과돼 일단 1차 목표가 달성된 마당에, 계엄에 대한 충격만으로 헌재 판결 시까지 그 큰 규모의 집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탄핵 외의 의제를 배제하거나,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수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윤석열이 사라진 한국에서 평범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원하는 바를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는 속 시원한 공간,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돼야 오히려 더 압도적인 힘으로 탄핵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졌나. 불경기에 물가는 폭등하고 주머니는 얇아지는데, 이미 돈 많은 부자의 주머니만 더 두꺼워졌다.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고자 투쟁하는 노조를 깔아뭉개고, 공안 탄압을 자행했다. 아무런 죄 없이 죽음을 맞은 이태원의 청춘들, 채 상병을 기억한다.

평일과 주말에 이어진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는 아주 많은 여성, 소수자들의 깃발과 참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 당장 직면한 의제인 탄핵을 계기로 여기에 모였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의 사람이 모인 집회 공간에서 퀴어 동지들은 무지개 깃발 아래 모여 존재를 가시화했다. ‘모두의 결혼’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등 우리의 이야기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탄핵 이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감정을 잠시나마 느꼈다. 탄핵 시국에 평범한 노동자와 소수자의 삶에 맞닿아 있는 의제들이 분출되기를,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로 거리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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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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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 퀴어동네 운영위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모든 차별이 금지됐으며 많은 소수자들의 삶이 조금 나아진 가까운 미래다. 산전수전 다 겪은 120세 주인공 여성이 ‘그녀’의 팬클럽 미팅에 갔다가 혐오세력이 일으킨 폭탄 테러에 휩쓸려 큰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지팡이를 잃어버리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간병로봇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주인공은 영상에 달린 4억개의 댓글 중에 테러범의 단서를 찾아내 결국 테러범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3년 만에 다시 열린 ‘그녀’의 팬클럽 미팅 현장, ‘그녀’는 보안정책을 위해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 낸 가상의 모습, 개개인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괴물의 형상을 보고, 누군가는 둥근 얼굴의 부드러운 여성을 본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그녀를 만나다>의 줄거리다. 소설, 특히 SF 소설을 좋아한다. 정보라 작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분홍색, 하늘색, 흰색 줄에 눈 감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표지였다. ‘트랜스 플래그와 비슷하네’라고 생각은 했지만, 퀴어가 등장하는 소설인 줄은 몰랐다. 단편 소설집은 늘 제목이 끌리는 순서로 읽곤 하는데, ‘그녀를 만나다’라는 제목이 끌려 먼저 읽기 시작했고, 눈물이 났다. ‘그녀’는 변희수였다.

2020년 1월, 한 군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강제전역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변희수 하사는 이에 불복해 전역 결정을 다시 심사해 달라고 육군에 인사소청을 제기한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를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비슷한 시기 한 여대에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논란이 됐고, 당사자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꿈을 응원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21년 2월, 변희수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무지개 행동에서는 지하철 2호선에서 성소수자 관련 책을 함께 읽는 추모 행동을 했다. 합정역에서 <퀴어이론 산책하기>라는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탔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내가 내는 소리였을지도. 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다> 중

올해 첫눈이 온다. ‘겨울이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때 들고 있었던 책의 무게, 손 시림, 지하철을 기다리던 조마조마함,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흐느낌, 슬픔, 분노, 무기력함, 기어이 살아내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뒤섞인 채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당시 퀴어동네 주민들과 함께 책모임을 진행하며 변희수 하사의 일에 분노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맥락은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감정은 생생하다. 2024년 11월25일, 도널드 트럼프는 미군 내에서 모든 트랜스젠더 군인을 추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같은해 11월16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ㄷ여대 학생들은 채용에서 걸러 내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존재하고, 이러한 차별은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위협적이다. “우리 모두 서로 힘내도록 합니다. 죽지 맙시다. 물론 저조차도 이게 매우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죽기에는 우리 둘 다 너무 어리잖아요?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변희수 하사와 숙대 합격생이 서로에게 쓴 손편지 전문, 한겨레, 2020. 3. 17.)

그녀를 만나고 싶다. 눈을 감고 120살이 된 날 상상한다. 잊지 않고 아등바등 살아내 세상이 바뀌는 걸 꼭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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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음악과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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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 여수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어릴 때 다니던 큰 교회는 매년 여름이 되면 수천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3박4일 수련회를 했다. 90년대 초반 그해의 주제는 바로 사탄의 음악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초중학생 수천명을 앞에 놓고 강연하던 그 목사의 요지는 이랬다. 사탄이 대중문화에 속속들이 침투해 청소년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탄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알려주겠다면서 대형 스피커로 노래를 차례로 틀어줬다. 한 곡 한 곡 소개될 때마다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매일 TV에서 듣고 따라 부르던 마가렛트 과자 광고 음악이 사탄의 음악이라고? 비틀스의 ‘옐로우 서브마린’이 마약을 상징하는 은어였다니! 메탈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클잭슨·조지윈스턴·퀸 등 웬만한 외국 노래 중 사탄을 찬양하는 음악이 아닌 게 없었다. 사실 음악에만 국한한 것도 아니었다. 외계인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도 사타니즘이고,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커스도 사타니즘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에게 인기 있을수록 더욱 강한 사탄인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추천 도서 <사탄은 마침내 대중음악을 택했습니다>를 탐독했다. 그 후로 더 이상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없게 됐다. 당시 얼굴이 뽀얗던 시절의 신해철에 빠져 있었는데, 사탄의 상징이라고 했던 피스마크 목걸이를 그의 앨범 표지에서 발견하고는 울면서 테이프를 휴지통에 처박았다. 독서실에서 라디오를 듣다 영어로 된 노래가 나오면 무서워서 껐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최고 아이돌이었지만 앨범을 거꾸로 돌리면 “피가 고파”가 나온다는 노래를 듣기에는 간이 작았다. 그래도 순진했던 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아 교회와는 곧 멀어졌고 대학에 들어가서 뒤늦게 록 음악에 빠졌다. 이 멋진 음악들을 몰랐던 사춘기가 진심으로 한스러웠다. 청소년기에 록 음악을 계속 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반항적이고 멋진 사람이 됐을 것만 같았다. 21세기 들어서도 개신교 혐오세력은 레이디 가가 콘서트 반대 기도회를 열어 물의를 일으키는 등 한동안 대중문화와 싸웠지만 지금은 시들해진 것 같다.

대신 ‘가정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무너뜨리는’ 공포의 대상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으로 옮겨갔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기에 ‘사탄에 물든 대중음악’처럼 거짓말로 쌓은 공포를 주입한다. 개신교 혐오론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독재법’이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동성애가 독재하게 되고, 학교에서는 동성 간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에이즈 치료 때문에 국가 의료재정이 파탄 나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회와 목사는 처벌받게 된다. 90년대는 대중문화에 대한 음모론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구체적인 존재들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해악이 더 커졌다. 차별금지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인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평등한 세상은 필히 지금보다 무서운 세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공포를 느껴야 하는 건, 매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추모해야 할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이다. 평생을 반려로 살아도 법률혼이 허락되지 않아 반려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죽음이 버젓이 있다는 것이다. 인종·성정체성·성적지향 등으로 직장에서 밀려나 삶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이동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는 것, 남녀로 나뉜 화장실을 가지 못하거나 휠체어로 이동이 힘들어서 집에 갇힌 사람들의 현실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못한 기간인 18년째 그대로라는 것. 이런 것들이 진정한 공포다. 평등으로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차별을 금지하면 차별이 줄어들고 동성혼을 법제화하면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식을 가진 사람만이 민주시민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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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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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어린 시절, 기독교인이 아니던 부모님이 그저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나를 유치원 대신 선교원에 보낸 이후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는 찬양팀도 하고, 청년부 회장도 하고, 유치부 선생님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장년부 예배에서 동성애 전환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충격에 휩싸여 목사님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저 ‘사회의 유해함에 물든’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주 청년부 예배의 설교 주제는 ‘다양성이라는 듣기 좋은 말에 흔들리는 믿음 없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나를 향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예배 내용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목사님의 설교를 고개를 끄덕이며 열중해 듣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혼자인 것만 같았다. 15년 넘게 다니며 나의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던 곳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에는 완전히 떠나왔다. 어쨌든 그곳은 나의 직장은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나 자아실현을 위해 꼭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다른 교회에 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으니까. 벌써 8년쯤 전의 일이다.

며칠 전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퀴어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출교된 이동환 목사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최근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결정을 했다는 참담한 소식을 전했다. 2년 전 감리회는 목사가 되려면 반동성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변화는 있었다. 2년 전에는 그러한 결정에 반대를 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2명의 목사가 반대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동환 목사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2년 뒤에는 2명이 목소리를 낸 것처럼, 다시 2년 뒤에는 20명이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2022년 교회재판에서 정직 2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3월에는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감리회에서 아예 나가라는 출교처분까지 받았다. 현재 법원에서는 두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법원은 출교무효확인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교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일단은 감리교 신자 자격을 회복하고 목사로 복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고,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는 점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8월 법원은 정직 처분에 대해서는 각하 판결을 했다. 정직 기간 2년이 이미 만료돼 소송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익이 없다는 점 외에도, 교단의 종교적 자율권 보장을 위해 교단 내부의 일이 사법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징계의 근거 규정인 감리교 재판법 3조8항(동성애 찬성·동조 행위 처벌규정)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종교적 집회·결사 자유의 실현을 위해 종교단체의 운영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종교가 사회에서 동떨어진 것일까.

이동환 목사는 “항소할 것이고, 기어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 했다. 정말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도, 연대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삶터이자 일터인 곳에서 쫓겨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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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장은 모두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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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정 공인노무사(퀴어동네 운영위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3~4명만이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해 6월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한국 사회가 여성·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안전한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37.6%만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성별에 따라 동의 비율이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의 ‘동의함’ 비율은 25.7%에 불과하지만, 남성은 49.4%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 것이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우리 사회를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비교적 강자일수록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사회 전반에서 직장으로 좁혀 보자. 최근 퀴어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장생활 경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수집할 기회가 있었다.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 경험을 물었을 때, 많은 수가 미세 차별(Microaggression, 먼지처럼 미세하고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은 경험했으나 “직접적인 차별은 당한 적 없다”라고 답했다. 다들 차별 없는 평등한 직장에 다니기 때문일까. 아니다.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임을 이유로 공격받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직종에 따른 차이는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려준 퀴어노동자 중 여럿은 지금 직장에서 커밍아웃할 수 없다고 했다. 성소수자 차별 발언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적극 나서지 못했다고 말한 이들도 꽤 있었는데, 아웃팅(성 정체성에 대해 본인 동의 없이 타인이 공개하는 행위)에 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지적하더라도 바뀔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가족이나 애인에 관해 대화할 때 동료들이 자신과는 대화하지 않는 경험을 풀어놓기도 했고, 어떤 이는 파트너와 결혼하더라도 축하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퀴어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한 점으로 모인다. 직장은 안전하지 않고, 그래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직 중 하나인 직장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애초에 사회가 안전하지 않기에, 직장도 안전하지 않다. 더해 직장에서는 위계가 작동하고, 직장과 생계가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안전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직장인지’를 물었을 때 동의 비율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과 차이를 보일까? 슬프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에서 통용되는 문화는 대부분 비-퀴어 중심적이고, 비-퀴어 당사자인 다수가 내 옆에 퀴어 동료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오가는 발언이나 제도에 대해 성차별을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 직장은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직장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일부는 직장을 선택할 때 특정 종교와 연관되거나, 남초 직장이라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근로조건보다 안전한 환경인지 따지는 게 더 우선이라는 뜻이다. 마치 여성들이 비교적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현관에 CCTV가 있고, 저층이 아니며, 밤 길이 너무 어둡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집을 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특정 종교나 남초 직장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직장이 너무 많은 바람에, 안전하지 않은 직장을 피하기 위해 오로지 불확실성에 기초한 개인의 판단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모든 직장이 안전하다면 안전한 직장을 거르기 위한 노력은 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사회적 약자일수록 자신이 속한 곳의 안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약자에게 안전한 곳은 모두에게 안전하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퀴어노동자에게 안전한 직장은 모두에게 안전한 직장이다.

이쯤에서 퀴어노동자에게 안전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짚어보자.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처우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만들거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하거나, 법·제도로 보장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것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게 제일 효과적일지, 어떤 걸 가장 먼저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방법은 몰라도 ‘여기 퀴어노동자인 내가 있음’을 인식하게 만드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와 내가 경험한 직장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곳인지 고민해 본다면, 그 결과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무엇이 안전을 위협하는지 돌이켜보면 좋겠다. 언젠가 그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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